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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Mar 30. 2024

우리 제발 평범하게 살자.

엄마, 내가 비누를 만들었어. 그런데...


그놈의 그런데가 문제다. 요즘 학교에서는 뭘 그렇게 자꾸 만들어 대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국에 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 그러는 건지, 학교는 '만들기 예산'이라는 게 따로 있는 건지 그동안 없던 만들기들이 매주 한 개씩 생겨 예쁜 쓰레기가 자꾸 늘어난다. (솔직히 예쁘지도 않다.) 오늘은 또 비누란다. 비누야 소모품이고, 필수품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비누 다 써가는데 잘되었네."

"그런데 이건 좀 특별한 비누야. 크크큭"

"엄마는 이렇게 동그란 비누 처음 봐. 그래서 특별한 거야?"

"그렇지? 나 발명가 해도 되겠지?"

"그러게. 왜 비누를 공모양으로 만들 생각을 했어?"

"그건 말이지... 사실은, 이 비누 안에 뾰족한 클립 같은데 들어있거든. 그래서 잘 숨기려고 내가 머리 좀 썼지."

"클립?"

"클립은 아니고 클립 같은 건데 좀 뾰족해."

"그걸 왜 넣었어?"

"비누 만들 때 준비물이거든. 다 굳었을 때 빼야 하는데, 나는 안 뺄 거라서 이렇게 했지.

엄마한테만 특별히 말해준 거니까 아빠나 형한테는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그러다 손 다치면 어떻게 해"

"에이~ 그 정도로 날카롭지 않아. 그냥 조금 따끔할 정도?"

"그래도 위험해서 안돼."

문제의 비누

 늘 이런 식이다. 무언가를 만들면 "그런데..."가 붙는다. 뭐 하나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대로 해오는 법이 없다. 본인은 항상 아이디어가 넘쳐나서 그런 거라는데, 내가 볼 때는 장난칠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 장난꾸러기는 언제쯤 철이 드는 걸까. 아니, 철이 들기는 하는 걸까? 아직도 똥, 방귀 소리에 자지러 지게 웃는 이 형제들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짱구 때문일까, 윔피 키드 탓일까. 아니면 개구쟁이 뽀로로? 비누라고 믿기지 않는 것이 세면대 위에 떡하니 있는 것을 보며 누구의 탓으로 돌릴지 수많은 캐릭터들을 떠올려본다.



 

 이에 질 수 없는지 오늘 저녁시간에는 1호도 1건을 했다. 저녁시간에는 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데, 가족이 함께 대화하는 유일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다쟁이 두 녀석 얘기 듣는 데에만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누가 남자들은 말이 없다고 했는가. 귀에서 피가난 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와서 우리 애들과 하루만 같이 놀다 가길 추천한다. 핏줄을 그렇게 중시하시는 아버님도 우리 아이들은 1시간 이상을 함께 못하시는 걸 보면, 평범 그 이상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로 평범하게 시작했다.


1호 : "오늘 가족소개했는데 나는 누구누구를 소개했게~?"

엄마 : "가족이니까 엄마랑 아빠, 그리고 2호겠지 뭐."

1호 : "땡! 틀렸어. 이제 그렇게 매년 하는 사람들로 하지 않아. 난 이제 6학년이니까."

2호 :"그럼 초코랑 파이?(반려견 이름들)"

1호 :"그 생각도 했는데... 그것보다 더 좋은 생각이 났지. 크크큭"

2호 : "누구? 누구 했는데? 형, 설마 나 썼어?"

1호 : "크크큭 너도 썼지~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

2호 :  "아~ 불안한데.. 또 나쁜 얘기 썼지?"

1호 :  "보여줄까? 다들 궁금해할 줄 알고 내가 파일에 안 넣고 가져왔지."

잠시 후...

아빠 : "야!! 아빠 별명이 뚱뚱보야?"

1호 :  "응. 내가 그렇게 정했어. 크크큭"

2호 : "아빠, 나는? 나는 뭐라고 썼어. 나도 좀 보여줘!"


남편은 종이를 패댕이치듯이 나에게 넘겨준다. 종이에는 표에 호칭, 별명, 잘하는 것, 좋아하는 음식과 특징을 가족과 친척의 이름을 넣어 완성할 수 있도록 표가 그려져 있었다. 아빠바라기라 예상대로 첫 번째에는 아빠가 적혀있다. 아빠의 별명은 갑자기 급조한 '뚱뚱보'. 평소 1호에게 '뚱돼지'라고 그렇게 놀리더니 오늘 제대로 당했다. 좋아하는 음식 '치킨' 그리고 특징에 '군것질을 좋아한다.' 너무 사실적으로 적어 읽는 내내 민망하기까지 하다. 다음은 누굴까? 서서히 두려워지기 시작해 일단 이름들부터 확인을 하고 내 이름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마음 편히 다음 사람의 별명과 특징을 읽는다.

'외삼촌. 별명 : 군인삼촌  잘하는 것 : 춤추기,  특징 : 집에서 팬티만 입고 있다.'

'외할머니. 별명 : 초코할머니  특징 : 하루종일 TV만 보신다.'

'동생. 좋아하는 음식 : 군것질, 특징 : TV만 보려고 한다.'

표를 해석해 보면, 우리 가족은 먹는 걸 좋아하고 (육식파) TV 보는 걸 좋아하는 내향형 인간들이다. 오늘 감사일기에는 이 표에 내가 없음과 올해 학교 상담기간이 사라져 담임선생님을 아직까지 뵙지 않음으로 적어야겠다. 이럴 때는 왜 친정식구들만 대동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우렁찬 목소리로 수영을 마치고 형제들이 나란히 들어온다.

"엄마, 나 오늘 수영 1번 자리에서 했다?"

"야, 그건 네가 꼼수 부려서 그런 거잖아. 엄마 얘가~"

"일단 신발부터 벗고, 가방 정리하고 얘기하면 안 될까?"

"알았어. 그럼 내 이야기부터 들어줘야 해. 2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부터 들을래? 1번? 2번?"

"1호야..?"

"알았어. 정리할게."

"어? 큰일 났다."

"왜?"

"나 수영복이 없어."

"아까 탈수기에 누가 수영복 있다고 했는데, 그게 니 거 아냐?"

"그런가 봐."

"하아.. 다시 신발 신어. 수영장 가게."

오늘도 평범한 하루는 글렀다. 언제쯤 우리 집도 남들처럼 무탈한 날이 오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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