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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Mar 27. 2024

엄마, 할아버지가 나한테 욕했어!!

"할아버지! 파란색 어때요, 괜찮죠?"

"어? 파란색? 할아버지 파란색 좋아하지. 근데 와그라노?"

"그럼 나중에 할아버지 집에 갈 때 소파 가지고 갈게요. 그게 파란색이거든요."

"소파를 샀어?"

"아니요. 집 앞에 누가 버리려고 내놨는데 아주 멀쩡하더라고요. 폭신폭신한 게 제 마음에 딱 들어요."

"그럼 니가 쓰면 되지, 왜 할아버지를 줘?"

"할아버지네 소파가 없잖아요. 제가 할아버지 집에 가서 TV 볼 때마다 아주 불편하다고요."

"어어어 대따, 가져오지 마."

"제가 필요해서 그래요."

"마! 그거 놓을 데도 없어."

"왜요~ 진짜 예쁘고 좋다니까요?"

"고마 닥치라"

"어어? 할아버지 또 욕했어요. 왜 자꾸 저한테 욕하세요?"

"내가? 언제 욕하드나?"

"금방 닥치라고 했잖아요."

"마! 그거 욕 아이다."


소파로 시작한 통화는 욕을 했네, 안 했네 실랑이로 바뀌어 말씨름을 하다 '밥 맛있게 무라'로 끝이 났다. 지금이야 아이가 제법 컸고, 할아버지와 대화가 익숙해져서 아이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지만 세상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하야디 하얀 천사였을 때에는 친가에 갈 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하나씩 만들어 오곤 했다.




 시댁식구들은 모두 부산사람들이다. 지금은 아버님과 아버님 남동생인 작은집이 서울로 오셔서 자리 잡으셨지만, 오랜 시간 부산에서 사셨고 여동생들과 친척, 지인 분들이 모두 부산에 있다 보니 아직도 부산사투리를 쓰신다. TV속에서나 들었던 사투리들을 현지인들에게 직접 들었던 첫날,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반가워요. 놀랠까 봐 미리 일러두는 건데.. 우리가 부산사람들이라 말이 좀 크고 세니까 놀라지 마요.

다른 사람들은 싸우는지 아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이해해요."

  아버님의 첫인사셨다. 그때는 긴장도 한 데다 예상외의 멘트라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5분도 안돼서 바로 이해가 되어 피식 웃었다.


영화 속 사투리는 순화버전이다. 네이티브들은 일단 목소리크기부터 다르다. 부산은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성악만 가르치는지 다들 울림통이 어마어마하다. 성량도 큰 데다 억양도 세고 말을 빠르게 많이 하는 게 내가 생각한 부산 사람들의 특징이다. (주관적인 판단이다.) 2명이 대화를 해도 지나가다 보이는 사람들이나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갑자기 생각나는 것도 바로 말해야 해서 대화 주제가 4~5개는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니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해야 한다. 노래방에서 2시간 동안 마이크를 놓지 않고 불러도, 운동회나 야구경기 보러 가서 소리 꽥꽥 지르며 응원을 해도 목소리 한 번 쉬어본 적 없는 나지만, 시댁식구들 앞에서는 세상 조용하고 얌전한 서울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잠시만 얘기해도 목이 아프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의도치 않게 말을 적게 하게 된다.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내가 그 정도인데, 어린아이는 처음에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명절에 시댁만 가면 말도 잘 못하는 아이가 엄마만 찾고 울던 이유를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하긴, 그때 알았어도 마땅히 해결책이 없었겠지만..)

"엄마, 똥강아지가 뭐야?"

"똥강아지? 땅 파고 다니는 걔가 똥강아지 아니야??"

"그건 땅강아지지."

"똥강아지? 그 말 어디서 들었는데?"

"할머니가 자꾸 나보고 똥강아지래."

"아~ 그건 2호가 귀여워서 그런 거야."

"아니야, 똥은 안 귀여워!"

4살 아이는 자신을 똥이라고, 개라고 부르는 게 너무 싫었는지 꾹꾹 참고 있다가 집에 가는 차에 타자마자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맞아,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자꾸 욕해서 싫어."

"뭐라고 욕하셨는데?"

"만날 때마다 똥강아지라고 그러고 아니면 똘마니들이라고 하고 그래."

"맞아, 할아버지도 '지 x 한다'라고 말하고, 맨날 우리한테 '얼라', '인마' 이렇게 불러."

"그건 할아버지, 할머니가 욕을 하신 게 아니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건 꽤나 어려웠다. 사실 '똘마니' 나 '지 x'이 욕에 가까운 비하하는 말이긴 한데, 의도는 그렇지 않다. 사투리의 특성상.... 머릿속으로는 대답이 문장화되고 있는데, 유치원 생에게 비하나 의도, 특성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없으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후, 기회를 엿보다 조심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를 넌지시 하며 언어 사용을 조심해 달라고 당부드렸지만 습관이 된 말투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다행히, 이젠 아이들이 제법 커서 아버님, 어머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반문하거나 부모에게 고자질하는 형태로 직접 표현하고 있어 덜 난감해졌다. 아이들도 이제 속 뜻은 알지만, 여전히 듣기는 거북한 모양이다.

"오늘 우리 반 A가 띠 맞았다?"

"띠?"

"응, 띠는 재시험 보는 거야. 에이랑 삐는 통과고, 씨랑 띠는 재시험 봐."

"1호야, '띠' 아니고 '디'"

"아~ 기야?"

"그건 충청도 사투리고. 하나만 해. 부산사투리를 하던지, 충청도 사투리를 하던지."

영어 노출이 이래서 중요한 건가? 무섭고 나쁜 말 같아서 싫다던 아이들은 10년 넘게 들어와서인지 이젠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대전에 살다 보니 충청도 사투리까지 섞어서라는 게 문제지만.


정답은 몇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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