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리고 싶은 할머니

by 붙박이별

할머니 한 분이 절뚝거리며 진료실로 들어온다.

의사는 목례를 간단히 하고 할머니의 검사기록을 살펴본다.

"오늘 여러 가지 검사를 하셨네요. 힘드셨겠어요"

인사 차 말을 건네본다.


"예, 암인지 알라카믄 해야 되는 게 많타 카데예."

"예. 고생하셨어요."

"그래서 암인교, 아인교?"

할머니가 급하게 묻는다.

"잠시만요. 제가 검사하신 거 결과를 좀 볼게요"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동안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이 느껴졌다. 의사는 순간 마음속으로 아무 일이 없길 빌었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할머니,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네요. 검사 결과는 깨끗합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암이 아이라꼬요? 확실합니꺼?"

"네. 아무 문제없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이고, 그라믄 안되는데."

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신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라믄... 선생님요, 우야믄 암에 걸리는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암에 걸려요?"

"그게요... 아이고 참말로. 그게,,,"


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 얘기하셨다.

"선생님요, 내가 보험이 있는데, 그게 암에 걸리면 돈을 받을 수 있거든예."

"할머니, 암에 안 걸리고 보험금을 안 받는 게 좋은 거죠."

의사는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한숨을 깊이 내쉰 할머니는 아무 표정 없이 말했다.


" 선생님요, 어차피 쪼매 있으면 죽는데, 자식들한테 남겨줄 게 암것도 없어예. 죽으믄 그냥 죽습니꺼, 장례식장도 돈 내고, 화장도 돈 내고... 다 돈 아입니꺼. 자식들이 얼매나 부담스럽겠습니꺼.

근데 이왕 늙어가 죽을 거, 암걸리가 죽으믄 돈이라도 나온다 아입니꺼.

나는예, 지금 젤 큰 소원이 죽기 전에 암 걸리는 겁니더. 내가 우리 아들한테 해 준게 없어갖고,

그거라도 해주고 가면 속이 쪼매 편할까 싶습니더. "

"어머니... 건강 하게 오래 사시는 게 자식들이 바라는 걸 거예요."

할머니는 웃는 것 같았지만 얼굴 표정이 애매해졌다.


"맞지예. 그라겠지예.

근데 생각봤는데예. 우리 아들이 들어놨다 카는 보험이 암이랑... 뇌졸중이랑 치매라 카든데예.

내가 암만 생각해봐도 암이 젤 고생 안 하고 빨리 갈 거 같드라고예. 아들도 고생 안하고예. 꼭 암이 아니라도

다른 병 말고 꼭 그 세 개 중에 하나 걸려가 죽어야 될낀데... 그래도 암이 빨리 죽고 자슥들이 고생을 덜 하겠지예? "


"어머니,.. 지금은 다 괜찮으시니까 건강 유지하세요. 아직은 하늘 가실 때 아닙니다."

"아이고마, 내가 바쁜 의사 선생님한테 주책 떨었네예. 죄송합니데이."

할머니는 급히 일어서서 나가셨다.

의사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입안이 썼다.


그리고 문 밖에서 아들인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뭐라카드노? 암아이라카나? 배에 덩어리 같은 거 잡힌다매? 에이, 괜히 검사비만 날맀네. 앞으로는 확실하면 말을 해라. 괜히 헛 돈 쓰게 하지 말고."


의사는 씁쓸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