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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May 14. 2024

이방인이 독일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요?

You can do it if you sincerely want, But

You can do it if you sincerely want.

But you have to do in again and again. Then finally you can do it.

만약 너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너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넌 계속 반복해서 해야만 해. 그래야 넌 마침내 이룰 수 있어.


<인어공주> 中


제목이 던진 질문에 <인어공주>가 대신 답합니다. 맞습니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계속, 기꺼이 어려움에 부딪혀야 합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에 적응될 때쯤, 마침내 이방인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러나 이걸 읽는 당신이 아시안이라면 상황이 좀 다를 지도 모릅니다. 언어 장벽도 더 견고할 거고요. 흑인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보다 더 숨 막히는 혐오를 숨 쉬듯 마주해야 하거든요. 자연스레 배제되고 지워지는 상황도 기꺼이 견뎌내야 하고요. 제가 느낀 바로는 그렇습니다.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하네요. 서방의 아시안 인식, 그리고 이방인의 삶에 대해서요. 여러분이 남겨준 피드백 덕에 이번 주에도 무사히 레터가 발행됩니다. 많은 질문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독일에서 '6개월 때깔 좋게 쉬고' 돌아가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그런데 해가 뜨겁게 내리쬐던 어느 날, 트램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다 확신했습니다. 훗날 석사 학위를 원하게 된다면 그걸 취득하는 곳은 독일이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흑인 인어공주’ 이야기로 뜨겁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방인의 삶과 디즈니 인어공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Erfrut Krämerbrücke (에어푸르트 상인의 다리)


제가 다니고 있는 ‘Erfrut of Universität’은 공립대학입니다. 대학원 기준, 사립 대학에 비해 공립 대학은 영어 수업이 많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교환학생 입장에서는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영어 능력 자격증만 제출한 저는 이곳에서 영어 수업만 들을 수 있습니다. 독일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들었는데 운 좋게도 독일에서 만난 사람 10명 중 7명은 영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대도시 상황은 더 나을 겁니다.


그러나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온갖 군데 영어를 다 써두는 나라는 아닙니다. 자국 언어를 향한 자부심이 느껴지면서도 참 불친절하다 싶더군요. 요약하면, 학위 취득을 위해서는 영어만 할 줄 알아도 됩니다. 그러나 독일에서 일상생활을 수월히 해내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변 친구들을 보니 독일어 수준을 B1 정도로 끌어올리면 체류자로서 살아가는 데에는 큰 문제는 없어보였습니다.


흑인 인어공주 논란과 이방인으로 사는 삶은 엇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방인이 된 순간, 혹은 '흑인' 인어공주로 불리는 순간, 개인의 능력, 잠재력, 살아온 환경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진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또, 겉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인종과 국적이 내 전부가 되어버리는 점도 그렇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어공주 이야기가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인 건 맞는 듯해요. 여기에서도 관련 질문을 슬쩍 던졌을 때, 그 자리의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꼈거든요.


인어공주 피부색은 정말 “상관없지만”, 머리 색깔은 red여야 한다는 친구도 있었고요. (공교롭게 백인이었습니다) 디즈니가 흑인 인어공주 실사화를 결정한 건 Cool하고 nice한 선택이었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비백인이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저는 이곳에서 모든 순간마다 “레터에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그래서 “인어공주는 한국에서 뜨거운 주제인 만큼, 길게 이야기를 끌어가야지” 생각했어요. 근데 다들 큰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기 보다는, 그렇게 오래 이야기할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 하는 스몰토크 중 하나에 불과했던 거죠.


ⓒDisney UK


친구들을 만나 대화한 이후, 흑인 인어공주를 향한 분노가 제일 강한 나라는 어쩌면 한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하기 전에는 “디즈니 <인어공주>의 여자주인공인 할리 베일리 개인 vlog를 찾아 한국인이 악성 댓글을 달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 의심부터 했습니다. 설마 싶어서요. 그런데 어제쯤 가서 확인했더니 정말 악성 댓글을 다는 건 한국인 뿐이었습니다. 한국어 닉네임을 가진 분 중 한 명은 “hairs look like shit”이라는 댓글을, 마찬가지로 한국어 닉네임을 가진 또 다른 한 분은 “She is ❌ mermaid, she is (fish 이모티콘) woman”이라고 댓글을 남겼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한국어로 “이딴 게 인어공주??”라고 달아놨는데 그 댓글에 찍힌 좋아요는 10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에 반해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계정은 “예뻐요”, “목소리가 사랑스러워요”, “당신의 스킨케어 방법이 궁금해요”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사실 디즈니가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향한 비판은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된 게 ‘흑인’ 인어공주라는 사실은 조금 웃음이 나오게 합니다. 이런 표현도 우습지만, 이곳에서 아시안은 백인에게 “흑인보다 못한” 존재 같거든요. 못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아시안은 지워지고, 차별받으며 때론 배제되고 소외됩니다. 저는 이곳에 온 뒤 더이상 인어공주 논란에 화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유럽이나 아메리카로 발을 내딛는 순간 (어쩌면 은연중 자신이 혐오하고 멸시하던) 흑인에게 조롱당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거든요. 이 사태의 중심에 있는 ‘오만함’은 단일 민족 구성원으로, 일종의 기득권으로서 평생 살 수 있던 사람이 누리는 행운이자 끔찍한 저주로 느껴집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백인은 흑인을 ‘자신들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체제를 전복할지 모르는 위험군’, ‘내 자리를 빼앗을지 모르는 사람들’ 정도로요. 그런데… 백인과 흑인 사이 복잡한 관계성 같은 것에 아시안은 낄 수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여러 방면에서) 아시안을 고려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이거든요. 그래서 아시안을 향한 조롱과 혐오는 참 1차원적입니다. 모든 아시안의 인삿말을 '니하오'로 통일해버리는 게 대표적인 예시죠.


요약하자면 흑인 인어공주가 어떻다더라, 저렇다더라 말하는 이 순간에도 백인과 흑인들은 아시안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아시안을 향한 혐오는 원색적이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습니다. 이건 그들이 아시안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아시안을 “투명 인간” 취급합니다. “세계적으로 중국인 이미지는 안 좋고 일본인, 한국인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저 문장 자체는 사실이지만, 애초에 백인과 흑인들은 아시안을 나라로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시안이 유럽에 떨어지는 순간, 내 나라의 인사말이 ‘안녕’이든, ‘곤니치와’든, 그냥 니하오로 통하는 거죠. 그것도 조롱의 방식으로요. 저는 이런 상황에서 아시안이 '흑인' 인어공주에 분노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겠답시고 내 추억을 훼손했다”라거나 “얼굴색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색, 공주답지 않은 외모가 문제다”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저는 영화에 대해 잘 모르고 당장 인어공주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말을 아끼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칼럼 하나를 소개하고 메인 레터를 마무리할게요. “인어공주는 원래 PC의 산물이다”라는, 신동아에 실린 칼럼입니다.


이 칼럼은 1989년,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을 공개할 당시에도 지금과 똑같은 논란(예컨대 PC, 원작 훼손 등)에 휩싸였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논란은 문화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면서요. 인어공주라는 작품이 탄생한 이후, “인어공주는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았던 적이 없다”고 말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흑인 인어공주가 내 추억을 훼손해 진심으로 슬프다면, 혹은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칼럼을 읽게 해주세요. 그 친구의 슬픔을 가라앉히기엔 충분한 칼럼입니다. 칼럼 일부분을 인용하며 메인 레터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감사합니다.


2023년 작 ‘인어공주’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추억 속의 소중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망쳤다는 비판을 보고 있노라면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추억 속 디즈니 ‘인어공주’ 그 자체가 이미 정치적 올바름의 산물이며, 안데르센 동화의 비극성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추억과 동심을 파괴하는 작품이었다.

<‘인어공주’는 원래 정치적 올바름(PC)의 산물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 이 글은 <독일의 달>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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