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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담 Apr 30. 2024

도무지 진정할 줄 모르는 초록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김혜순 시인>

죽으면 미치게 되는 건가


                                        김혜순


잡초 밭에 바람 온다. 잡초는 이유 없이 울거나 이유 없이 웃어서 정말 시끄럽다. 우는 잡초88이 우는 잡초89에게 시끄러워! 하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다. 잡초들은 다 자신이 잡초1이라고 생각한다. 잡초는 죽은 사람들의 육체가 제1차로 윤회된 생물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 잡초가 되기가 제일 쉽기 때문이다. 잡초밭에 나가보라, 죽었기에 억울해죽겠다는 신입 영혼들이 울고 떠드는 목소리 시끄럽지 않은가. 우리 엄마 미싱이 기차 소리를 내며 지나간 다음, 뚝방의 구멍이란 구멍이 잡초로 메꿔지면, 잡초1들이 1, 1, 1, 1, 1, 1 우는 소리 참 시끄럽다. 겨우 발뒤꿈치에 머리칼이 묶인 모습의 생물. 이 우습게 생긴 것들이 이토록 시끄러울 수 있다니. 잡초밭에 하얀 속옷을 입은 여자가 쓰러져 있다. 너무 조용해서,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잡초들마저 궁금하다. 뱅글뱅글 도는 나날들에 갇혀 사는 주제에, 미싱 소리에 맞춰 겨우 땅이나 깁고, 겨우 일어났다 누웠다 그거 하면서도, 앞으로 간다고, 멀리 간다고 착각 중인 잡초들. 언젠가부터 이것들이 바람소리에 맞추어 이쪽으로 쓰러졌다, 저쪽으로 쓰러졌다, 여기 여자가 있다!, 여기 여자가 있다! 쉰 목구멍으로 소리치고 있다. 더구나 개미 같은 인생들이 잡초들의 발밑에 바글바글 모여 살고, 잡초들의 발밑에 빌딩도 많고, 자동차도 많으니 더욱 시끄럽다. 죽은 영혼들은 다 미치게 되는 건가, 도무지 진정을 할 줄 모르는 초록이다. 잡초들에게 입 다물어! 해봤자, 그건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오늘 아침엔 더 큰 합창 소리가 들려 이슬 맺힌 잡초밭에 발을 들여놓아봤다. 그랬더니 드디어 잡초로 태어나려고 땅속에서 씨앗으로 꿈틀거리는 신입 영혼들의 울음소리까지 들려서 나도 이제 미치게 되는 건가 생각했다. 아래로 시선을 향하니 내 신발 속에 내 두 발 대신 잡초가 소복이 심겨 올라오고 있으니, 이게 또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더구나 트럭을 타고 인부들이 이 잡초밭을 압류당한 카펫처럼 말아 가려고 달려온다는 소식마저 들리니 어쩌란 말인가.  




<출처 김혜순 시인의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문학과 지성 2022>




죽으면 미치는 건가,라는 시는 김혜순 시인의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의 거의 초반에 나오는 시다.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으니까 유독 엄마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집 제목의 지구는 엄마이고 달은 엄마를 바라보고 좋아하는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엄마를 가장 좋아하고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정말 엄마가 죽는다면 누구 곁을 맴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 시집의 제목은 가정법이고 이별 후의 상황을 염려하고 대책을 세우려는 듯 스스로에게 묻는 말 같다. 그리고 동시에 상실 후 찾아오는 무력함을 저 잔잔한 어투로 시집에서 이미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인데 사실 처음에 가장 눈에 띈 것은 '김혜순'이라는 이름 세 글자다. 왜냐하면 대학 시절에 내 친구가 김혜순 시인의 시를 되게 좋아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김혜순 시인 자체가 이미지를 잘 엮어서 친구가 좋아했고, 더 나아가 친구도 그런 시를 쓰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다음 눈에 띈 것은 제목이 아니라 시집의 두께였다. 나는 지금까지 시집을 좀 만나봤는데 저렇게 두툼한 것은 처음 본다. 마치 마트에서 일반적인 삼겹살을 사 먹다가 어느 유명한 식당에 갔더니 두꺼운 삼겹살 덩어리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은 느낌은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955년 생이지만 여전히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시를 많이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에 낸 새로 업데이트된 시집이란 점에서 그것을 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감동적이고 이쁜 시도 좋지만 저렇게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제목도 확 끌린다. 그리고 죽으면 미치는 건가도 말이 사실은 성립되지 않는다. 죽었고 장기가 모두 멈춘다면 어떻게 살아있는 것처럼 정신을 갖고 미칠 수 있겠는가. 말이 되지 않지만 말이 되게 하는 게 시인이 부리는 마법 같았다. 내가 어떤 이과생에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시집 제목을 얘기해줬다. 근데 그 사람은 이미 달은 지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내가 눈으로 읽을 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 타인에게 저 시집 제목을 읽어주려니까 괜히 오그라들고 힘들었다. 그래도 되게 상징적이고 의미 전달이 분명한 효과적인 제목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것처럼 죽었다와 미쳤다는 강렬한 동사끼리 만나서 아주 불닭 같은 시 제목이 만들어졌고, 나는 홀린 듯이 이 시를 고르게 되었다.



잡초 밭에 바람 온다. 잡초는 이유 없이 울거나 이유 없이 웃어서 정말 시끄럽다. 우는 잡초88이 우는 잡초89에게 시끄러워! 하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다. 잡초들은 다 자신이 잡초1이라고 생각한다. 잡초는 죽은 사람들의 육체가 제1차로 윤회된 생물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 잡초가 되기가 제일 쉽기 때문이다. 잡초밭에 나가보라, 죽었기에 억울해죽겠다는 신입 영혼들이 울고 떠드는 목소리 시끄럽지 않은가.


시작이 담담하고 좋다. 잡초 밭에 바람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사소한 말이지만 표현은 그렇지 않다. 잡초 밭에 바람이 분다가 아니라 바람이 손님처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우는 잡초88이 우는 잡초89에게 시끄러워! 하는 것은 정말 웃긴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드러누운 잡초가 운다고 하는 것도 웃기지만 뒤에 붙은 숫자가 88이고 89인 것을 보아 나이가 든 노모들의 대화가 아닐까 연상이 됐다. 나이 든 할머니들의 대화를 보면 80이 넘어가면 88인지 89인지는 무용지물이다. 그냥 다 같이 늙고 다 같이 떠드는 사이가 되는 깊은 전우애를 느끼게 된다. 그런 그들이 잡초1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만은 청춘이며 갓 태어난 아기 같단 게 아닐까. 사실 잡초란 말 뒤에 붙은 1은 원본과 가장 닮은 복제품이다.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본질에 가까운 것이 잡초1이기에 다들 그렇게 바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고 나서 가장 내가 감탄한 표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잡초는 죽은 사람들의 육체가 제1차로 윤회된 생물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 잡초가 되기가 제일 쉽기 때문이다. 잡초밭에 나가보라, 죽었기에 억울해죽겠다는 신입 영혼들이 울고 떠드는 목소리 시끄럽지 않은가.'라고 하고 있다. 나는 어려서 할아버지 산소를 많이 갔기 때문에 어쩐지 김혜순 시인의 표현이 공감도 되면서 동시에 멋지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히면 그 위에 잡초들이 수북이 자라난다. 사실 죽으면 영혼이 되어 떠돈다고는 생각해 봤지 잡초라는 실제 존재하는 생명으로 다시 윤회한다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잡초가 바람에 드러누운 것을 꼭 '죽었기에 억울해죽겠다는 신입 영혼들이 울고 떠드는 목소리 시끄럽지 않은가.'라고 하고 있다. 단순히 잡초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신입 영혼들이 울고 떠드는 목소리라는 표현이 너무  멋졌다.


김혜순 시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아주 멋지게 탈바꿈해서 표현한 것 같다. 잡초 하면 매년 아빠가 산소에서 뼈 빠지게 땀 흘려서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죽은 영혼이 새롭게 다시 태어난 작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애착 식물인 양파의 가느다란 뿌리도 떠오르고 해서 잡초가 잔망스럽게 여겨진다. 아무튼 김혜순 시인은 잡초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첫 부분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엄마 미싱이 기차 소리를 내며 지나간 다음, 뚝방의 구멍이란 구멍이 잡초로 메꿔지면, 잡초1들이 1, 1, 1, 1, 1, 1 우는 소리 참 시끄럽다. 겨우 발뒤꿈치에 머리칼이 묶인 모습의 생물. 이 우습게 생긴 것들이 이토록 시끄러울 수 있다니.


그리고 앞에서 죽은 영혼과 잡초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우리 엄마 미싱이 기차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니까 조금 혼란스러웠다. 나는 당연히 엄마가 죽은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엄마 미싱을 엄마가 해야 한다는 법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미싱 소리가 기차 소리라고 하고, 더 나아가 미싱 소리로 뚝방의 구멍이란 구멍을 잡초로 메꾼다고 하고 있다. 뚝방은 방죽의 충청도 사투리이고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둑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시 보니까 엄마 미싱 소리가 집에서 난다기보다 기차 소리를 뚝방 주변에서 엄마의 미싱을 떠올린 상황 같다. 그러니까 엄마 미싱이 기차 소리를 내며 지나간 다음 뚝방 구멍이란 구멍을 모조리 잡초로 메꿔지는 것은 엄마의 무덤에 잡초가 자라는 상황을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잡초를 보면 1과 닮아있는데 잡초가 우는 소리를 1, 1, 1, 1, 1, 1이라고 하는 것도 되게 신기했다. 근데 왜 꼭 6이었을까. 말줄임표도 7개이고 6개는 뭔가 진행 중인 느낌이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 6이라는 주사위의 숫자 6의 다 채워졌음을 의미하지도 않을까 싶었다. 뭐가 됐든 김혜순 시인은 잡초들을 밟는 상황을 '겨우 발뒤꿈치에 머리칼이 묶인 모습의 생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우습게 생긴 것들이 이토록 시끄러울 수 있다니.'라는 것은 우습고 재미있지만 동시에 시끄럽고 귀찮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니까 되게 싫지도 좋지도 않지만 어딘가 안쓰럽고 연민의 대상으로 현재 시인이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밭에 하얀 속옷을 입은 여자가 쓰러져 있다. 너무 조용해서,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잡초들마저 궁금하다. 뱅글뱅글 도는 나날들에 갇혀 사는 주제에, 미싱 소리에 맞춰 겨우 땅이나 깁고, 겨우 일어났다 누웠다 그거 하면서도, 앞으로 간다고, 멀리 간다고 착각 중인 잡초들. 언젠가부터 이것들이 바람소리에 맞춰 이쪽으로 쓰러졌다, 저쪽으로 쓰러졌다, 여기 여자가 있다!, 여기 여자가 있다! 쉰 목구멍으로 소리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잡초밭에 하얀 속옷을 입은 여자가 쓰러져 있다고 한다. 나는 하얀 속옷 입은 여자를 하얀 소복 입은 여자로 잘못 읽었다. 너무 조용해서,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잡초들마저 궁금하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여자가 하얀 속옷을 입고 저 잡초밭에 쓰러져 있을까. 나는 엄마의 딸이라고 생각했고 엄마의 죽음에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딸이라고 생각했다. '뱅글뱅글 도는 나나들에 갇혀 사는 주제에'라는 말을 보니까 어쩌면 죽어서 새로 잡초로 태어난 한낱 미물이지만 그런 주제에 딸을 걱정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딸 역시 죽은 엄마를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 '미싱 소리에 맞춰 겨우 땅이나 깁고, 겨우 일어났다 누웠다 그거 하면서도, 앞으로 간다고, 멀리 간다고 착각 중인 잡초들.'이란 말에서 하찮지만 꿈은 원대하고 아직도 부지런하고 활동하는 엄마의 모습을 딸이 상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것들이 바람소리에 맞춰 이쪽으로 쓰러졌다, 저쪽으로 쓰러졌다, 여기 여자가 있다!, 여기 여자가 있다! 쉰 목구멍으로 소리치고 있다.'라는 것을 보면 딸이 쓰러져서 우는 모습을 남들에게 알려 구조요청을 하고 싶은 잡초들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쩐지 마지막에 쉰 목구멍으로 소리친다는 말이 갑자기 슬프게 와닿는다.



더구나 개미 같은 인생들이 잡초들의 발밑에 바글바글 모여 살고, 잡초들의 발밑에 빌딩도 많고, 자동차도 많으니 더욱 시끄럽다. 죽은 영혼들은 다 미치게 되는 건가, 도무지 진정을 할 줄 모르는 초록이다. 잡초들에게 입 다물어! 해봤자, 그건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시가 구체적이고 어떤 서사가 있는데 묘하게 어떤 부분이 이해가 잘 안 된다. 개미 같은 인생들이 잡초들의 발밑에 바글바글 모여 사는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개미는 잡초 아래 땅속에 땅굴을 파니까 말이다. 그런데 잡초들의 발밑에 빌딩도 많고, 자동차도 많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원리로 적은 것인지 한참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은 무덤 속에 있는 관이 위라고 생각한다면 잡초는 결과물이고 뿌리이다. 그리고 그 아래 자동차도 빌딩도 있다고 역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하는 말이 '죽은 영혼들은 다 미치게 되는 것인가. 도무지 진정을 할 줄 모르는 초록이다.'라는 부분에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읽었다. 죽은 영혼들이 다 미쳤다는 말이 확 와닿지는 않지만 뭔가 있어 보인다. 죽은 영혼이 미쳤다는 말은 잡초가 하는 누웠다 일어났다 소란스럽게 하는 행동을 보고 하는 소리일까 싶다. 그리고 뒤에 '도무지 진정할 줄 모르는 초록이다.'라는 부분은 굉장히 진지하고 엄격한 판정처럼 보인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말은 초록이라는 색이름으로 말랑말랑한 느낌을 준다. 원래 초록색 자체가 평화롭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 앞에 전혀 언발란스한 수식어가 붙으니까 더 강렬하게 와닿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엔 더 큰 합창 소리가 들려 이슬 맺힌 잡초밭에 발을 들여놓아봤다. 그랬더니 드디어 잡초로 태어나려고 땅속에서 씨앗으로 꿈틀거리는 신입 영혼들의 울음소리까지 들려서 나도 이제 미치게 되는 건가 생각했다. 아래로 시선을 향하니 내 신발 속에 내 두 발 대신 잡초가 소복이 심겨져 올라오고 있으니, 이게 또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왜 합창 소리도 나는 또 합장 소리로 읽었을까. 한 번 죽음이라고 생각하니까 계속 모든 단어들을 그쪽으로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 같다. 합창 소리라고 하니까 되게 맑고 청명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다. 오늘 아침에 더 큰 합창 소리가 들려 시 속의 화자가 이슬 맺힌 잡초밭에 발을 들여놓아봤다고 말하고 있다. 내 생각에 잡초들이 떠드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서 노래가 되고 합창 소리가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랬더니 드디어 잡초로 태어나려고 땅속에서 씨앗으로 꿈틀거리는 신입 영혼들의 울음소리까지 들려서 나도 이제 미치게 된 건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표현을 보니까 정말 관심이 많고 오래 지켜보면 그 동물의 언어가 들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것처럼 시 속의 화자 역시 잡초에 관심이 많고 신입 영혼에 관심이 있어서 듣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아래로 시선을 향하니 내 신발 속에 내 두 발 대신 잡초가 소복이 심겨져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내 발을 가릴 만큼 잡초가 소복이 올라오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어쩐지 털이 가득 자란 강아지가 발아래에서 주인을 알아보고 치대는 듯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 와중에 시 속 화자는 당황해한다. 발로 차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거두지도 못하는 애매한 경계에 서있으면서 시 속 화자는 망설이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트럭을 타고 인부들이 이 잡초밭을 압류당한 카펫처럼 말아 가려고 달려온다는 소식마저 들리니 어쩌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나온 장면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 다시 보니까 묘에 수북이 자란 잡초를 밀러 온 인부들의 모습을 그렸단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압류당한 카펫처럼 말아 가려고 달려온다'라는 표현이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아마 시 속 화자인 딸은 엄마의 묘에 자란 잡초들이 엄마 생각하면서 정도 들었고 연민의 감정도 쌓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엄마 묘를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인부들을 불러 잡초를 밀려고도 한다. 그런 갈팡질팡한 감정이 마지막에 잘 드러나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새로 정 붙인 애착식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잡초 하니까 애니메이션 트롤에 나오는 트롤도 떠오른다. 그리고 죽으면 미치게 되는 건가, 하는 시의 제목처럼 진자 죽으면 미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는 이 시가 되게 참신하고 이야기 구성이 잘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무 무겁지 않아서 되게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같은 주제를 갖고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김혜순 시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흔하게 발에 치이는 잡초가 이렇게 시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오랜 시간 시를 써온 김혜순 시인의 연륜을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초반 시를 읽었으니 천천히 2부 3부도 읽어봐야겠다. 전에는 시 하면 짧고 간략해서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근데 지금 다시 보니까 시에 숨겨진 의미나 어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면서 읽다 보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은근히 담고 있는 정보도 많아서 후루룩 읽기는 힘들다. 내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이 시집은 거의 시 세계에서 대하소설 같은 느낌이다. 진짜 시집을 이것저것 보면서 시의 세계에서 내가 몰랐던 부분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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