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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수술하다간 망합니다

Epilogue 고통은 삶의 가장 정직한 언어였다

by 미리나



그렇게 함부로 수술하다간 망한다니까요?



주치의 선생님이 내게 던진 말이다.


그날, 나는 도저히 목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잠깐 나아지는 듯하던 통증은 금세 원점으로 돌아왔고, 희망은 짧았으며 고통은 길게 남았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삶의 질을 이 통증에 내어줄 수 없었다.


고통은 매일같이 반복됐고 ‘이렇게는 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져나갔다.


“이만큼 일어났으면 됐고, 이만큼 아팠으면 된 거지.”


이제는 정말 때가 된 것 같았다.


수술과 시술을 권유받을 때마다 두려워 도망치듯 피하던 내가, 이제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나는 충분히 아팠고, 충분히 버텼다. 계산했고, 정리했고 나름 신중했다.


그래서 마침내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이제는 놓아도 괜찮다.”


단호했지만 어딘가 슬펐고, 동시에 해방감이 들었다.








감정에 휘둘린 결심이거나 도피가 아니었다.


충분히 애썼기에, 이제는 그만두거나 새롭게 선택할 자격을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고통을 통과했고, 인내를 지켜냈다고 생각했다.




나는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보려 는 방식을 택하고자 했다.






수술을 결심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예상 밖의 진단과 감정의 균열!!



수술을 결심하고 병원을 찾은 날,


이제는 피할 수 없다!


주사도, 절개도, 회복도 뭐든 감수하자!!
머릿속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수없이 리허설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되겠어요.”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예고된 고통 앞에서 잔뜩 긴장하던 마음이

무장해제되듯 풀려버렸다.


수술하러 가겠다고 작정해 놓고, 막상 의사가 "안 해도 된다"라고 했을 때 안도한 게 아이러니했지만 전신마취, 회복 기간, 합병증 등 생각만 해도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잠재된 불안과 두려움을 단숨에 풀어주었다.


수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몸이 아직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통은 분명했다.

‘내 몸이 여기까지 버텨줬구나’

‘아직 덜 망가졌구나’ 하는 감사가 차올랐다.

수술을 결심한 건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긴 시간에 걸쳐 고통을 견디고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며 내린, 무거운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 판단이‘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는 걸 전문가가 확인해 주었을 때 안도했다.


"내가 잘 참고, 잘 견뎌냈구나"

수술은 의료적 처치를 넘어 삶의 중요한 기로 앞에 놓이는 일이다.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그 결정엔 책임감이 따라붙는다. 몸과 마음의 무게가 함께 실린다.


의사가 “안 해도 됩니다”라고 말해줄 때 결정의 무게를 전문가가 덜어주는 기분이 든다.



그 한마디가 주는 해방감은 눈물겹다.

두려움과 희망, 책임감과 해방감.


서로 어긋나듯 겹쳐 있는 이 복잡한 마음은 이렇게 말했다.


“아, 다행이다.”


나는 ‘수술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의 투항에 가까웠다.



“이쯤이면 받아들여야지." 하며 병원에 들어섰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돌아오다니.



그 한마디는 내가 감내하려 했던 고통이 불필요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마치 형 집행 직전, 극적으로 내려진 사면처럼.




벼랑 끝이라 여겼던 곳이
알고 보니 계단의 첫단이었다.




고통을 감당할 각오를 했기에 그 고통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는 생각보다 컸다.


나는 단지 ‘수술을 면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안에 켜켜이 쌓였던 두려움과 긴장을 해방시킨 사람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주사를 놓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져오신 MRI영상과 지금 상태는 다를 수 있어요.

만약의 경우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찍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한 달 정도 된 거라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만에 권유하는 건,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드문 일이다.


뭐, 내가 수술이야기를 꺼낸 까닭도 있을 것이다.




진료실에서처럼 단호하게 “수술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해줬다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수술하러 간 길이었다.



고통을 감내할 준비도 마쳤고, 그 고통 이후의 회복을 믿기로 했다. 그런데 “만약이라도 할 수도 있다”는 말은 결정을 다시 내 몫으로 되돌려놓았고 다시 판단의 무게 앞에 멈춰 섰지만 돌아섰다.




돌아선 건 겁이 나서가 아니다.

의사는 내 몸의 회복 가능성을 믿어주었다.


그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기로,

다시 내 몸을 믿어보기로,



그래서 돌아선 거다.







돌아간 이유, 믿는다는 표현



‘괜찮아요’라는 말도 안심이 되긴 했지만 내 고통이 충분히 전달됐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날의 진료 장면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불안한 감정, 어떻게든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수술병원에서의 진료 녹음을 주치의 선생님께 공유해도 될지 물었다.


“목소리만 공유해도 괜찮을까요?”


동의를 받은 뒤, 녹음 파일을 원장님께 전달했다.

신뢰의 표현이자 ‘다시 돌아왔어요’라는 마음의 메시지였다.


주치의 선생님은 나의 기준점이었다.


가장 오래 나를 지켜봐 주었고 이끌어준 분이었다.


내 말투, 표정, 호흡, 그리고 눈빛까지 조심스럽게 바라봐 주셨다.


“이제부터 진짜 함께 치료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의사가 나를 설득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납득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수술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싶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정말 수술이라도 해야 끝날 것 같았고 이 고통이, 이렇게까지 살아 있다는 느낌은 도려내야만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만 세상에 “수술해 주세요” 한다고 오케이, 그럼 해드릴게요” 하는 의사가 어디 있겠는가. ㅋㅋ



주치의 선생님은 기다렸을 것이다.


아니, 기다려주었다.



나의 마음이 꺾이지 않고 꺾여 돌아올 때까지.



그러니 내게 언젠가 다시 만날 때 자신도 더욱 성장하여 나의 남은 고통이 사라지기를, 지구별 소풍이 끝나는 날까지 여정을 응원하겠다고 하신 걸 테지.



그 말 안에 깃든 절박함을 듣고도 나보다 내 몸을 더 믿어주는 사람처럼 의사의 말이 나를 살게 했다.

그 믿음 하나가 오늘의 나를 다시 걷게 했다.



고통을 숫자나 진단명으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나를 온전히 봐준 나의 표정, 목소리, 망설임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봐 준 그분의 태도는 가장 큰 위로였다.



그래서 지금도 고맙고 앞으로도 영원히 고마울 것이다.




통증의 언어이 말해준 마음의 이야기


그날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며, 문득 생각에 멈춰 섰다.


“지금 이 통증은 정말 몸에서 온 걸까?
아니면 눌러둔 마음이 만들어낸 건 아닐까?”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나는 정작 내 마음이 얼마나 다쳤는지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참고 견뎌온 건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막막함이었다.





몸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장 아픈 곳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 통증은 한 점에 집중되어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듯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다 고통이 잦아들 무렵, 이제껏 무시해 온 다른 부위들이 하나둘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무시된 감정이 통증이 되고 말하지 못한 슬픔이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몸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 없었다. 내가 너무 오래 외면했을 뿐이다.”



고통은 견뎌야 할 무엇이 아니라 내 영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삶의 소란을 뚫고 다가온 그 목소리는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부름이었다.



“치유는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시 연결되는 아주 신성한 귀환이구나.”




치유 이후의 삶, 고통을 지나 다시 빛나는 일상으로



통증이 멀어지고 내 몸의 경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을 때 아픔은 그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 내 안의 그림자로 살지 않게 되었다.



한 번 아팠던 곳이 다시 움직이거나 그곳이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돌아올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제, 내가 나아갈 길은 예전처럼 지나치게 달려가는 것도, 급히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의 나를 그대로 존중하고 다음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어떤 순간보다 더 고맙고, 복잡하지만 눈부신 일상 속에 살아 있다.


나를 붙잡은 건, 그 온화하던 얼굴에 드물게 비친 어그러진 표정, ‘수술’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멈칫하던 내 마음을 말려주던 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한 생명을 위한 결심에 가까웠다.



나는, 스스로를 내려놓으려 했던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는 걸 애석하게도 뒤늦게 알았다.

이 '손'은 물리적인 손길이 아니었다.


"당신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듣고 있습니다."


말 없는 손길에는 존중과 연대감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아플 준비까지 마쳐둔 상태였다.


고통의 끝자락에서, 그렇게라도 살아보려는 마지막 마음을 꺼내 들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마음을 꺾었고, 접었고, 이제는 견딜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의사 선생님의 “고쳐주겠다”는 말은 통증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듯 다가왔다.



벅차도록 안도했다. 의학보다 선물 같은 위로였다.



“이제는 그만 아파도 돼요.”
“이만하면 충분히 잘했어요.”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몸이 놓이자, 마음도 놓였다.
나는, 그렇게 놓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설명을 다 했고 수술이 불필요하다는 의학적 판단도 전했지만 환자는 수술을 택했다.


그 선택에 담긴 불안, 조급함, 혹은 고통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지금 이 사람이 무언가를 감내하려는 상태라는 걸 의사는 알아주는 듯했다.



의사도 이때 생각이 많아졌을 것이다.


환자의 심리적 압박이 큰가?


고통이 해석되지 않았나?


아니면 자신이 뭔가를 놓친 건 아닐까?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정서 사이에서 얼마나 부담이고 무거웠을까.


다시 돌아온 나를 보며 원장님은 꼭 고쳐 주겠다고 했다.


나는 괜스레 민망해 수술 안 할게요! 이제 수술 생각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수술 그렇게 함부로 하다가 망한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 참 특이한 특별한 사람이라고.



"(경추사진을 가리키며) 이곳은 디스크가 잘 생기지 않는 부위인데 아주 특별합니다."라고 하셨다.


질환이 병으로 보이지 않고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들떴다.


그 사이에 있는 건 ‘치료’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우린 누구나 특별하길 원하니까.


그 뒤로 나는 특이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정정해 주었다.


“특별해요.”


기분이 좋았다.

나를 특별하게 여긴다는 그 말이.



그래서 타인들도 좋은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


모두들 특이보다 특별이 더 듣기 좋다며 하나같이 좋아했다.








"지금 보시면요, 경추 C3-C4 신경근 압박 소견도 동반되고 있습니다. 특히 C5-C6 부위는 디스크 탈출 정도가 좀 심해서요, 이대로 두면 신경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자세가 나빠서..."



예를 들면 몇몇 의사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무미건조한 말투, 어려운 용어들은 설명이라기보단 경고 같았다.


낫는다는 희망이 들리지 않았다.

더 아파질 거라는 "예고" 같았다.




물론, 나의 주치의 선생님도 꼭 필요한 정보는 반드시 전하신다.


하지만 큰 문제가 아니라면 겁을 주지 않는다.



“관리만 잘하면 괜찮아질 수 있어요.

치료 잘 받으면 좋아질 수 있어요.

제가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설명은 의학적이지만 마음은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 차이가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살아가게 했다.



그분에게는 후퇴는 없다. 전진만 있을 뿐이다.




환자의 고통보다는 의사라는 권위 아래 환자를 숫자처럼 대하는 이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수술해 달라”는 내 절박한 말에 곧장 수술대 위로 올렸을지도 모른다.


수술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과정을 지나야 마땅한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판단이 안 섰다.



하지만 내 앞에 있었던 그분은 달랐다.



흥분에 휩싸인 나의 말들을 담담히 받아주고 두려움과 고통을 읽어내 주었다.



그리고 치료의 순서, 수술의 기준, 지금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논리적이면서도 따뜻하게 설명해 주셨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감정에 휘청이는 이야기들이 난무하던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는 내 감정에 휩쓸려
억지 표정을 짓거나, 감정을 감추려 애써 무심한 척하지 않으셨다.


그 자리를 지키며 한 사람의 불안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질 수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던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고 나를 책망한다거나 무턱대고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이치가 이러하니 따라야 한다”는 식의 냉정한 언어 대신, 나의 아픔이 지나가는 길목에 함께 서주었다.



무너진 나를 향해 ‘괜찮다’고, ‘당신은 소중하다’고 말없이 건네는 존중이자 신뢰였다.




한 생명을 ‘환자’로만 대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으려는 존재로 그렇게 나를 지켜봐 준
그 따뜻한 인내가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이 따뜻한 삶 안에 남아 있다.



흔들리는 말 사이에서도 진심을 들여다보았고 불안한 마음을 함께 붙들어준 그분을 통해,


‘사람을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그때 진료실 한가운데서 자주 배웠다.




내 심장은 ‘뚝’ 하고 멈춘 것 같았다.

이런 불안의 파편들이 그것도 나한테 왜 이렇게 돌아올까.


수술 병원 의사선생님은 차분하게 말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 말속에 담긴 무언가 그것이 내게 불안을 가져온 건 아닐까.



‘괜찮아요’라는 말도 안도지만 사실 내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모두 다 얘기해 줄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말에 잠시 안심할 수 있었고 '그래, 괜찮을 거야'라는 한마디로 날 놓아줬다.




통증의 언어와 몸이 말해준 마음의 이야기


옛날에 초진 때도, 작년에도 안절부절못하던 나에게 주치의 선생님은 MRI는 참고 자료일 뿐, 통증만 사라지게 해 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신 적이 있다.


"***님은 지금 찍을 상태가 아닌데..."


굳이 왜 또 찍었냐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이셨다.

이번엔 나 역시도 그마저도 괜한 일이라 여겨질까 봐 선택하지 못했다.




사실 수술 병원에서 주사를 맞은 후에도 목뼈를 누르는 듯한 통증과 욱신거림은 며칠이나 이어졌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 여전했고 잔잔한 통증이 아니라 제법 강하고 깊은 통증이었다.

그날 병원에 함께 가준 친구가 "기록 좋아하잖아" 하며 내 모습을 찍었다.



나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겨우 자세를 잡고 있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통증과 무력감,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던 친구의 말 없는 배려가 뒤섞여 묘하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며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순간을 남겼다.



문득,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 아픈 건, 과연 몸일까?
아니면 그보다 오래 묵힌 마음일까?





그 녹음 파일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흔들렸지만, 다시 돌아왔어요.”

“이제 다시 당신을 믿고 치료 잘 받을게요.”


"아팠어요, 수술까지 생각했어요, 그만큼 힘들었어요!

저, 이 정도로 절박했어요.”


“원장님 말이 맞았어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수술은 아니래요.”


“그동안 말씀하신 보존 치료가 옳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어요.”


“그렇죠, 다행이죠?”



그런 말들이 전부 압축되어 있었다.



나를 오래 지켜봐 준 사람, 지금까지 가장 나를 잘 이끌어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알아주면 내가 잘 못된 길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 안에는 책임감도, 배려도 있었다.







치료의 연속성, 정서적인 유대, 무엇보다 내 몸 상태를 빠짐없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


흔들리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나를 붙잡아 줄 중심이 필요했다.



수술까지 생각했지만 막상 병원에서는 “수술까지는 아닙니다”라는 말을 들었고 그러자 곧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하는 혼란이 밀려왔다.



나는, 다시 원장님의 진단이 나를 중심으로 되돌려 놓아 주리라 믿었다.



“ 다시 제 치료의 중심으로 돌아와 주세요.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선을 다해 치료받을 테니 좀 도와주세요."



그 모든 마음과 말들을 ‘음성 녹음’과 메시지로 실어 보냈다.




나는 더 이상 수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차분할 때 다시 읽어보니 재활전문병원의 개입이 되어있는 걸로 보아선 수술을 재고하라는 기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장수술이 급한데 재활병원을 보내는 의사가 어디 있겠는가.



인스타에 치료 기록을 한참 남겼었다.


통증은 내 몸을 제멋대로 끌고 다녔고 나는 수술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료실 문 앞에 앉아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제 끝장을 보자. 수술이라도 하자.’


그런데 수술은 할 필요가 없다니...


‘뭐지? 이렇게 아픈데 수술이 필요 없다고?’

당황, 허탈, 혼란, 억울함, 안도감이라는 감정이 겹겹이 밀려들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찾아온 건데 그 결심이 허공에 붕 떠버린 기분이었다.

의사에게 그 말을 다시 전할 때“수술 필요 없대요.”
그때의 나의 감정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은 잠시였고 그보다도 먼저 이 고통을 어떻게 다시 견뎌야 하냐는 막막함이 있었다.


누구도 내 몸을 대신 아파주지 않는데, 왜 모든 결정은 이렇게 모호하고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일까.


그날 알았다.


아픈 건 "몸"이지만, 복잡해지는 건 늘 "마음"이라는 걸...


통증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고통 그 자체보다 더 아프기도 했다.





나는 지금 통증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아픔이 진짜라는 걸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만큼 일어났으면 됐고 이만큼 아팠으면 된 거지."


그리고 이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그날 이후, 원장님의 시선과 말투, 그리고 작디작은 몸짓 하나까지...





나를 향한 그 모든 것이 더 세심하고 조심스러워졌다는 걸 더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숨소리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깊이 있게 나를 살피고 계셨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진심에 나는 더욱 안도하게 되었다.


분명 ‘조금 더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확실했다.




통증의 언어




처음 찾아오는 통증은 늘 가장 아픈 곳에서 시작됐다.


가장 극적인 지점, 말 그대로 고통의 핵심.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이 이 한 점에 집중되는 듯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전까지 그 자체를 감당하는 데 모든 감각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또한 나를 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한 번에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이 잦아들기 시작하면 그동안 덜 아프던 부위들이 차례로 얼굴을 드러냈다.

한동안 방치되었던 작은 통증은 더 큰 통증이 가라앉은 뒤에야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가려져 있던 것들이 또렷하게 떠올랐고 더 깊어졌다.




통증에도 서열이 있고
자기들만의 질서가 있다



몸의 가장 끝자락에서 밀려오는 통증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종착지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그것이 몸이 보내는 가장 명확한 시그널일지도 모른다.



만약, 통증이 그저 견뎌야 할 고통이라면 무조건 피하고만 싶었을 것이다.



“여기가 무너졌어. 이제 돌봐야 해. 너무 오래 무시했잖아.” 몸은 말없이 나를 위해 그렇게 속삭인다.


그동안 나는 꽤 외면했다.
버텨야 한다는 이유로, 사소한 일이라며 넘기고, 언제부
턴가 아프다는 것을 무디게 흘려보냈다.



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것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외면하면 경고가 되고 들여다보면 기회가 된다.



통증의 의미는 나의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외면은 무너짐으로 이어졌다.


감정을 외면하니 마음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감정이 무너지자, 통증은 그 틈을 비집고 더 거세게 밀려왔다.


상처 입은 마음은 몸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고, 몸의 고통은 다시 마음을 조이듯 압박했다.


그렇게 감정과 통증은 서로를 증폭시키며
끝없이 서로를 부추기는 순환 속에 나를 가둬두었다.



정작 내 안에서 벌어진 일은 무시된 감정이 통증이 되고 말하지 못한 슬픔이 몸을 잠식했던 것이다.

고통은 늘 가장 억눌린 감정의 마지막 언어로 의식의 가장자리에서 몸을 두드린다.



무시당한 마음, 잊힌 감정은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내가 돌봐야 했던 것은 겉으로 드러난 통증이 아니라

통증을 부른 내면의 묵은 침묵이었다.


육체의 아픔은 마음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그 결핍은 말하지 못한 진실이 되고,

진실은 증상이 되어 몸을 통해 삶을 멈춰 세운다.




언제나 몸을 고치면 삶이 회복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진짜 회복은 내면의 침전된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에 책임을 지는 태도였다.


그 깨달음은 수술보다 더 근본적인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나의 통증은 마치 복잡한 교향곡처럼 다가왔다.


서로 다른 음들이 모여, 삶의 가장 정직한 언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 교향곡은 내면의 무언가를 매만졌다.


걸음을 멈추고 그 떨림에 천천히 귀를 기울였다.


음처럼, 숨처럼... 그렇게.


고통은 나를 정밀하게 조율했다.


불균형일수록, 나는 나를 더 깊이 이해했다.

그것은 나를 찢지 않았다.



매 순간, 마음의 균형을 다시 맞추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고통의 교향곡을 온몸으로 듣고 나면 나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


내 안에서 울리는 가장 미세한 진동에도 더 귀 기울이며 살아가리라.


그 어떤 소리도 나를 지나치게 두지 않으리라.



도망치지 않겠다.
들어주겠다. 온전히.




그리고 사랑하겠다.

끝까지.




Epilogue



“그렇게 함부로 수술하다간 망합니다.”


그 말 한마디를 하고 보낸 의사 선생님은,
그 후로도 병원에 갈 때마다 잊지 않도록 몇 번이고 다시 되짚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확신을 가지고 갔지만 마음 한켠에는 수술이 두렵고 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수술을 결심한 건 통증과 불편이 너무 오래되었거나 더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땐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내가 느끼는 통증의 현실을 인정받으면서도

내 몸이 아직 회복 가능하다는 걸 들었을 때,


“아, 이렇게 힘든데도 수술까지는 안 가도 되는구나.”
“내가 버텨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런 감정들이 뒤섞이며 안도가 되었다.

그 무게가 툭,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수술은 인생의 큰 결단일 수도 있다.




결정의 짐을 가장 크게 덜어준 건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수술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다녀온 내게,


다시 한번
“안 해도 된다”는 말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고통과 치료를 통해 내가 배운 치유는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다.


치유는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 치유의 본질은 아니다.


진짜 치유는 끊어졌던 몸과 마음, 영혼의 고리를 다시 잇는 데 있다.


고통은 단절에서 비롯되고 회복은 그 단절을 다시 이어 붙이는 실마리에서 시작된다.


치유는 고통을 이해하고 품어야 감정이 회복될 수 있다.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왜 아픈지, 그 고통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이며 겉으로 드러난 증상보다 눌려 있던 감정(두려움, 외로움, 무력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몸의 회복’이라기보다 ‘마음의 회복’이 몸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아픔을 경험한 후에도 내가 다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용기!! 그 자체가 치유가 아닐까?


통증이 사라진다고 삶이 회복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고통은 치유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다.


치유를 이끄는 길이다.



고통이 말을 걸 때, 그 말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것이 치유다.



고통은 견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보내는 가장 정직하고 진실된 목소리였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와 나’


2023년 9월부터 2024년 2월까지의 치료 과정을 담은 연재를 마칩니다.


5개월간의 이야기를 줄여 쓴다는 게 저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요.

장황한 글이었음에도 공감해 주시고 함께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2부도 잘 엮어보겠습니다.




지금 저는 종합병원의 ‘행보칸 환자’ 답게,

심각하지 않은 또 다른 질환으로 잠시 입원해 있습니다.



글 속에 함께하던 주치의 선생님과 다시 마주하며

틈틈이,여전히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답니당!



25년 5월 6일 입원 첫날 아침 7 시대 회진 오신 친근한 주치의 슨생님


엘베 샷

뷰가 끝내준당


고압 산소 치료


병원 밥 실화입니까?


CT 촬영중! 꼬리뼈가 오른쪽으로 돌출되었다고 한다.ㅠㅠ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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