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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통 퍼레이드는 어디까지인가

치료는 나의 삶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다

by 미리나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는데도 나아지는 게 없어 보여도 어떤 치료나 행동을 했을 때 결과가 곧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겉으론 정적이지만
땅속에선 생존의 분투가 쉼 없이 이어진다.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표면으로 오리라 믿는다.

시간이라는 토양 안에 쌓이는 이 작은 움직임들이
어느 날, 흙을 밀어내고 고개를 내밀 거라는 걸.

다만 그 과정이 너무 고되고 오래 걸려서 사람을 지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많고 ‘소용없는 거 아닐까?’라는 의심도 들지만 그런 순간일수록 나는 더 믿는다.

진짜 회복은 숫자나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방향에서 오니까.






2024년 6월.


앞은 막히고 뒤로 돌아서면 또다시 길을 잃을까 두려운 상황.


고통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를 삼키려는 바다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바다의 깊이도, 끝도,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 속에 잠식돼 있었고 매일이 퍼레이드 같았다.


희망은 그 퍼레이드의 길목에 나타나기는커녕 고통이 앞서가며 퍼레이드의 선두에 서 있었다.



고통이 금빛 의상을 입고 당당히 앞장서서 몸 구석구석을 휘감고 지나갔다.


화려한 꽃밭에서 날카로운 가시처럼 찔러대며 그 흔적들을 그대로 밟았다.


희망은 뒷마당에서 멀리 떨어져 흔들리듯 희미한 불빛으로 나를 비추는 것 같았다.


퍼레이드는 끝이 없었다.


다시 시작하려 해도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있는 기시감만 남았다.


한 발짝 내딛는 듯했지만 고통은 늘 한 발 먼저 달려가 그 길을 선점해 버렸다.






원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맨발 걷기 행사로 서울에 오신단다.

가고 싶었다. 정말.



발열은 심심하면 소풍 가듯 찾아왔고, 열은 꼭 ‘별일 없던 날’에만 존재감을 뿜어댔다.


어디서 무엇이 나를 건드릴지 모르는 세상은 소란한 기류 속을 혼자 헤매는 듯한 곳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폭탄처럼 터지던 발열 상태나 숨길 수 없는 긴장감 같은 불안의 전조를 먼저 알아봐 주었다.



언제나 내 상태를 ‘괜찮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바꿔주는 분이셨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 평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발쯤 내디뎌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집에서 겨우 10분 거리였는데도 가지 못했다.

아니, 안 갔다.


마음은 움직였지만 몸은 아직 그걸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이때,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되기도 한다’는 걸 체감 중이었다.

고통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회복과 거리두기.

나의 변화나 관심사를 세상과 연결 짓고 싶었다.


그리고 세상을 다시 흥미롭게 느끼는 마음이 살아나, 삶을 다시 살아볼 마음을 얻었다.


위의 말은 "원장님, 제가 이제 살아보려고 해요"라는 재생의 메시지였다.

정신과 갈 생각이 1도 안 들어서 돈도, 시간도 벌었다니ㅋㅋ 농담처럼 보이지만 진심이었다.


내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준다.



삶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너그러워지고 관계에 대한 해석이 바뀌자, 약도 병원도 당장은 필요치 않을 만큼 편안해졌다.




매주 수요일마다
약속한 미션을 열심히 보내드렸다.



발열로 온몸이 타오르는 날이 평균 세 번 반복됐다.


태양이 하루에 세 번 뜨고 지는 것처럼.
몸속 작은 세계가 자전과 공전을 포기한 채,
시간의 법칙을 무시하고 불쑥불쑥 새로 태어났다.


내 마음의 우주가 무너졌다 다시 세워지길 반복되었다.


처음엔 봄볕 같은 열기라 참을 만했는데,

두 번째엔 두려움의 불길이라 숨이 막혔고,

세 번째엔 용광로 잿더미에 갇힌 듯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감정이 끓고 기억도 증발하고 정신이 나가는 고통의 환류.


하루에 세 번씩 무너지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왔다.

누가 보면 멀쩡 했겠지만 나는 세 번의 멸망과 재건을 겪었다.


나흘이면 인류사 한 바퀴를 돌았다.

이게 병이냐, 시간 왜곡이냐.


그런 증상이 최대 세 번까지 반복된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나를 제대로 고쳐줄 의사는 없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상처와 복잡한 증상들을 진심으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바쁜 의료현장에선 그런 게 당연하다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그 현실에 나를 맞추어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그 현실을 넘어설 방법이 있는지 생각하는 건, 상처를 입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내 고통이 단지 통증의 연대기만으로 끝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진심으로 들여다보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대구 행복한 H 병원 김정훈 병원장님.


암재활, 만성통증, 자율신경 실조증...

그분은 몸의 통증만 다스리는 의사가 아니다.


모든 고통의 깊이를 꿰뚫고 고통 뒤에 숨어 있는 삶의 무게까지 온전히 치료해 주신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감추고 살아왔는지 고백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의 이력과 아픔들을 털어놓는 동안 쉬운 고백으로 끝날 수 없었다.


과거의 나와 마주하고 그분이 쌓아온 전문성과 진심을 온전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고통의 경험들이 쌓여 언젠가는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주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어느 날은 내 감정을 정확하게 건드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휴지는 필수였다.


치료는 나의 삶을 다시 구성해 주는 작업이었다.


원장님은 그저 통증을 잡는 전문가뿐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과거와, 지금, 그리고 걸어갈 미래를 함께 치유하는 치유자가 되어주셨고 지금도 그러하신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약간의 발열과 꼬리뼈 통증이 다시 찾아와 3주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중, 일요일에도 빠짐없이 찾아오셔서 회진을 하시는 주치의 선생님을 보며 나는 문득 그동안 어떻게 그 많은 회진을 이어가셨을지 그 고단함을 어떻게 참으셨을지 궁금해졌다.


회진은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불시에 오신 적도 있다.


그날그날 어떤 마음으로 환자들의 삶을 들여다보셨을까.


함께 상처를 짊어지고 쉽게 잊을 수 없는 아픔에 귀 기울이시며 마음속으로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수습하셨을까.



그 어떤 환자도 숫자나 케이스로 남지 않음을 느끼며 나는 그 회진을 통해 어떻게 나와 마주하는지를 본다.


지나치게 반복되는 일상도, 그 작은 순간들이 모이면 소중한 이야기로 남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아픔을, 그 짧은 시간이지만 진심으로 들여다보려는 사람의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눈빛은 ‘의사’라는 직업 그 이상 또 다른 차원의 인간을 보여주었다.



암환우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고 하신다. 그 준비의 시간은 몇 달이 아니라,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이셨다고.


그런 사례는 드물기에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초환으로 찾아갔을 때 동네 의원에서 시작된 발자국들이 문전성시되어 마침내 병원으로 껑충 뛰어올랐으니.


그동안 꾸준히 이어온 신뢰와 헌신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보통은 그런 변화가 쉽지 않지만 그걸 이뤄내셨다.

작은 시작이 이렇게 큰 흐름을 만들어낸 걸 보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쭉쭉 뻗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그 모든 성공 뒤에는 환자 한 명 한 명의 삶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믿음과 노력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리라.



환자가 회복되고 웃어야 행복하다시는데 실은 의사가 먼저 웃어야 고통을 하나씩 나열할 수 있다.

표정이 굳은 얼굴 앞에서는 아픔이 머뭇거린다.

의사가 웃을 때 환자도 겨우 입을 뗄 수 있다는 걸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말하자면, 환자의 행복은 의사의 웃음에서 시작된다.

반복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증상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분은 달랐다.

"이런 것쯤이야!" 하는 듯, 최선을 다해 고쳐주겠다고 말하며 그 어떤 의사도 쉽게 손대지 않으려 했던 번거롭고 까다로운 증상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100% 믿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도 내 몸이 이렇게 되었을 때 내가 뭐 알았겠나.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갑자기 이런 고장이 나버리니 이제 와서 어쩌겠다고?


한 번 깨진 도자기를 다시 맞춘다고 해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리 없지 않겠나.


갈 곳도 없고 믿을 만한 곳도 없었으니까, 해결해 달라고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가득했지만

차라리 더 이상 손에 쥘 수 없는 먼지로 여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먼지는 나 손끝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기에 나 자신을 그냥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다면 남은 건 나를 점점 갉아먹을 수밖에 없는 그 괴물과 마주하는 것뿐이었다.


그 괴물은 날 삼키기 시작했다.


무수히 떨어지는 모래알처럼 내 손끝에서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손이 잡을 수 있었던 건 지나간 시간이었고 시간을 되돌린다고 그 모래알이 다시 손에 고일 리 없었다.

잃어버린 시간은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것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떠날 수 없는 저승길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 길을 걷는 동안 내 발목을 잡은 건 증상이라기보단 짐승의 얼굴을 마주하는 공포였다.


왜 그 두려움이, 아니 왜 그 불쾌한 짐승이 내게 와서 자리를 잡은 걸까?


뭐, 이건 머리 위에 무겁게 떠있는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

구름은 내가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더 무겁게 내리쬐고 그늘을 막고 한 치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길을 잃고 발을 들여놓은 상태에서 갈 곳을 찾는 것처럼 느껴졌다.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은 막히고 뒤로 돌아서면 또다시 길을 잃을까 두려운 상황.


나는 구름을 따라가며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참아야지. 아니면 보내야지.

아무리 힘든 여정이라도 끝을 찾으려면 가야지.






주치의 선생님도 감정의 무게를 홀로 지고 가셨을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다 쏟아내어도 그분의 고백할 수 없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을 테니.


끝없는 탐색을 하고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도전이라 여겼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결단을 내리며 그 길을 걸어가셨다.


누군가는 일찍 지나쳤을 사소한 것들, 반복적으로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내 작은 증상들도 그분의 눈과 귀에는 모두 담겼다.



이제 와서 감사를 표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치고 혼란스러웠던 순간, 그 고통이 얼마나 무게감 없고 비현실적으로 그분에게는 다가왔을까.


아무리 의사여도 팝콘처럼 매번 튀겨져 부풀어 오르는 “이 증상은 뭐가 문제지?” 하며 한 번쯤은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더 이상 ‘진료’나 ‘치료’라는 말로 설명될 수 없었다.


그것은 ‘완벽한 동행’이었다.


나의 통증뿐만 아니라, 좌절 앞에서 꺾일 뻔한 나를 붙잡아 준 손길이었다.



‘의사로서의 의무’와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그분은 후자를 택했다.


그런 그 마음을 내가 단숨에 알아챘다.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모든 것을 떠나, 나에게 기꺼이 동행해 주신 원장님께.


그분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게 해 준 나 자신에게.




통증 측정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질문이겠지?
기침을 하면 열을 재고 가슴이 아프면 심전도를 찍는다.


통증은?
말로만 증명해야 한다.

“몇 점 정도 아프세요?”
“그냥 계속 아파요. ”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그렇게 진단표 위에 주관적 숫자로 기입된다.

그 숫자에는 진실도, 피로도, 오랜 외로움도 담겨 있지만 보는 사람은 그것을 수치로만 해석한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통증 측정기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사라질까?



그 어떤 기계보다 복잡한 이 ‘몸과 마음’의 경보음을
객관적 수치로 보여줄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설명하느라 지치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는 더 이상 “환자가 너무 예민한 것 같다”라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넘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믿어주는 누군가 앞에서 내려놓을 수 있겠다고.


통증은 ‘몇 점짜리 아픔인가요?’라는 주관적 질문에 의존한다.

같은 5점의 아픔도 어떤 이에게는 견딜 만하고,
어떤 이에게는 삶 전체를 멈추게 하는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통증은 자주 의심받고 과소평가된다.

환자는 말해야 하고 의사는 추측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신뢰의 틈이 생긴다.


통증은 환자의 말과 표정, 그리고 의사의 감에 의존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어떤 통증은 믿어지지 않고,

어떤 환자는 의심받고,

어떤 고통은 오래 방치되었다.


그러나 나는 만났다.

그 모든 전제를 다르게 보는 사람을.



“이건 몇 번 신경에서 오는 거야. 이건 어느 근막에 문제가 생긴 거지,” 하고 아주 정확하게, 마치 내 몸의 숨겨진 언어를 읽어내듯 말한다.


그 모든 것이 미리 정해진 답안을 풀어내듯이.


그분의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그 깊은 통찰력은 ‘의사’라는 직업을 넘어 몸을 읽고 마음을 이해하는 언어로 보였다.


이 치료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분 앞에서는 고통을 포장하지 않아도 됐고,

눈치를 보며 증상을 축소하지 않아도 됐다.


통증을 숫자가 아닌 삶의 흔들림으로 봐주었고 말한 고통보다 내가 말하지 못한 고통을 더 알아주었다.



의사가 먼저 나를 믿어줄 때 나도 나의 고통을 믿을 수 있었다.






나에게 진료실은 고통의 외로움을 걷어내는 공간이었다.


"통증 측정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은 이제 접었다.ㅎㅎ


기계적인 수치로 내 아픔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의 고통을 다 표현할 수 없다.



기계는 없지만 그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수치나 그래프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의할 수 없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수술로 회복 중,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을 때도 가끔씩 안부를 물어주신 주치의 선생님 덕분에 나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목 디스크 수술이니 뭐니 나대지 말고, 이제 무조건 시키는 대로 다하자."


다짐을 하며 점차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다.



낫지 않으면 진료실에 누워 시위라도 할 참이었지만 시위는 하지 않았다. ^^



'기다림'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찾았다.




아픔을 공감하면서도 단정하지 않은 배려와 나를 ‘해결의 대상’이 아닌 존중해 주시는 마음이 감사했다.




"저 혼자 결정하기 두렵지만 지금은 몸이 더 힘들어요.

제가 느끼는 이 반응을 무시하고 싶지 않아요.
저 좀 도와주세요."


당시 나는, 항생제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나를 따라다녔다.


반복되는 치료와 그에 따른 부작용.


내가 겪고 있는 이 불편함과 고통에 대해 의사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갈등이 나를 계속 흔들었다.



의료적인 판단을 넘기기에는 너무 많은 불안감이 있었고 내 몸이 나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내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내 판단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내 판단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사의 결정을, 그 어떤 권위를 믿고 싶어 했다.


입원 중, 지속적인 항생제 투여로 몸은 파김치가 되어갔다. 겐타마이신 항생제는 정말 아프다.


그동안 치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만큼의 고통을 겪었고 이제는 그런 반복적인 치료들이 더 이상 해결책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손에 내 몸을 맡기기보다는 내가 조금이라도 더 선택하고, 내 목소리가 반영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내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지도 모르면서도 더 이상 반복되는 의존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내가 결정할 때 ‘이제 나도 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작은 승리의 감정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젠 내가 나를 지킬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다.


비록 두려움이 따라붙었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선택의 주체가 되고 싶었던 마음만큼은 분명했다.





결정은 당신의 몫이지만,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여기 있어요.



글이 처음 쓰였을 때의 내 마음과 지금 내가 그것을 읽을 때의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문장이, 같은 단어들이,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그때는 ‘눈앞의 현실’에 휘둘려 쓰인 말들이었고 지금은 그 말을 통해 과거의 나와 마주하면서 여전히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글은 변하지 않지만 느끼는 시간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읽히나 보다.


그때의 나는 너무 조급하고, 불안정하고,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던 시절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모든 것이 막연하고 결론을 빨리 내고 싶어서 더 큰 기대나 실망을 마음속에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내 기대가 기다림이었음을, 더 나아가 ‘그때의 나’가 얼마나 서툴고 지쳐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그때의 메시지는 큰 위안이 된다.



환자가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현실적인 기대치를 조율해 주시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훨씬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때는 그냥 의사의 말이라 여겼는데 이제는 '진정한 위로'로 느껴지는 것이다.


당시 내 마음은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고 싶었던 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을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된 걸지도 모른다.



글은 시간을 관통하는 작은 통로처럼 나의 변화를 담아내고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주는 것 같다.


글자가 이렇게나 신기한 것이구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내가 지나온 시간은, 내가 겪은 고통은, 내가 느꼈던 위로는 어느새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나에게 말을 건다.




“네가 잘못된 것도,
이게 이상한 상황도 아니야.”



정직하면서도 비판적이지 않은 말 그대로 위로의 언어였다.


나는 의도하지 않은 고통을 벗어날 방법을 몰랐고 그만큼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그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큰 버팀목이었는지 모른다.



"이게 이상한 상황도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순간, 내가 느꼈던 그 모든 '잘못된 것'과 '어긋난 것'이 사실은 모두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불안이 제대로 된 곳에 놓였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해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해가 나에게 ‘기다려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


그렇게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차근히 살펴보게 되었다.


강요하지 않는 말, 그러면서도 대학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진지한 설득은 내게 이 시간의 가치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디딤돌이었다.



환자의 이동 여건을 세심하게 고려해 주는 그분의 태도는 이 시간이 내 삶에서 결코 '헛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수술 전, 혼자가 아니라고 확신시켜 준 그 말은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너는 이 길을 홀로 가는 것이 아니니 조금 더 담담하게 걸어가라는 메시지였다.


그렇다면!! 이 시간도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피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고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으니.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평소엔 참 식상하게 들린다.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진심을 담아 하는 말도, 자주 들으면 익숙해지고 그 의미가 묻힐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말이 정말 와닿을 때가 있다.


내가 정말로 혼자라고 느낄 때 끝까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세상에서 고립된 기분이 들 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를 붙잡아 준다.


그때의 나는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도 내 아픔을 알아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말은 내 고립감을 덜어주고 마음을 조금씩 풀어 주었다.

그때 내가 그 말의 진심을 실감했던 것이다.



이제는 나도 그런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힘든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해주고 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 얼마나 무게 있게 다가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그 말을 들은 누군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면 살짝 난감해지기도 한다.


내가 그 말 한마디로 그들의 아픔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말을 꺼내면서 진정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더 무겁다.


그래도 그들은 울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도 운다.


한때는 그 말이 너무 흔하고 너무 쉽게 들려서 입에 담을 용기가 없었지만 진심이 실린 말은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진심을 담아 말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란 것을 잊지 마세요.!!"




억울함과 받아들임

나는 3일도 아니고,
고작 3시간에 만족해야 했다.



"몇 시간이 나아졌다고 그걸 좋은 징조라고 받아들여야 해?"


입에서 불만이 툭 튀어나왔다.


불만이라기보다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감정적 피로가 쌓였다.


뭔가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생각할 때마다 정말로 '좋은 징조'라고 믿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물음표가 떠오르곤 했다.


이럴 때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과는 다른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회복의 속도.


그렇게 비교하면서 지쳐갔다.


그래도, 그럴수록 주치의 선생님의 메시지를 보며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을 의식적으로 조정하는 것뿐이었다.


억지로 긍정하려는 마음이 작동했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마음의 방향을 계속 돌려야 했다.


그렇게라도 나를 다잡아야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이성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생존 전략을 택했다.


열이 나는 건 몸의 반응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내 몫이라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그때의 나를 다잡는 일은, 어떤 치료보다도 더 어려웠다.






언제나 만개웃음을 지으시며,


"좋은 징조입니다"

"잘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라고 먼저 말해주시는 주치의 선생님 앞에서는 더 이상 일렁이는 울분을 내뱉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더 나아질 수 없는 걸까?"라는 괴로움도, 그분의 말 한마디에 잦아들었다.


그 말을 되새기다 보면 상처의 가장자리가 무뎌졌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억지로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웃음 뒤에서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진짜 마음.
그 마음이 바로 나였던 것 같다.


다행히도 내 고통의 진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봐 준 사람 덕분에 억눌린 마음이 잠재워졌다.




겉으로는 차분하게 말했지만 마음속에선 견딜 수 있는 한도만큼의 숫자를 계산해 두고 있었다.


감정은 최대치 직전까지만 허용했고 그 이상은 들키지 않게 잘라냈다.


의사 선생님께 보여주는 수치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이중성도 있었던 듯하다.


정말 감사한 것도 있지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외부의 냉정함이 주는 위축감이 들었다.

‘이제 가망이 없다’로 들렸다는 말은.


나는 다른 병원에 가는 걸 두려워했다.

당당하고 싶지만 갸우뚱하는 눈빛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의료적 조언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뭐가 이렇게 까다롭지?라는 듯한 반응.


애매하다는 표정이 고통보다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분의 말을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내 책임도 절반은 덜어지는 셈일 테니 결정은 의사가 하고 나는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ㅎㅎ


그렇게 하면 혹시 잘 안 되더라도 '내가 잘못한 건 아니야'라는 최소한의 마음의 안전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내가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치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신뢰한다는 최후의 마음으로 주치의 선생님만은 나를 이상하게 보시지 않는다는 믿음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회복되는 대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치료계획에 따르겠다는 생각과 "원장님은 나를 믿어주니 나도 믿고 따른다"는 정서적 약속을 마음으로 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의연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었다.


"아직 원장님만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죠"라는 호소였다.






내가 의사를 믿고 의사의 치료 방법을 따를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끝없는 치료의 여정.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도 나를 믿어야 한다.

치료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도 믿음을 잃지 않아야한다.


치료는 한 번의 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사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 스스로의 힘이 합쳐져야만 치료가 완성될 것이다.

치료는 나 자신을 믿고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의료 현장에서 치료의 책임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늘, 든다.




주치의 선생님의 인턴 시절의 글을 보다보면 한 편의 의학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https://brunch.co.kr/@nothing8/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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