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Jan 29. 2024

간호사 면허를 반품합니다. -중-

따라 나오라며 협박하던 보호자

 이미 수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날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돋았던 소름은 잊혀지지 않는다.


 평범한 토요일 오후였다. 언제나처럼 부산했던 응급실은 신규 간호사 교육과 동시에 환자 처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규 간호사에게 업무를 가르치면서 처방을 진행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다는 건 늘 가슴 벅찬 일이었고, 힘들지만 뿌듯했기에 친절한 선배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S-car에 누운 채 가슴을 움켜쥐고 119 대원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를 보자마자 기계적으로 바이탈 사인, 주증상, 히스토리를 확인하고 심전도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심전도 검사는 정상적이었지만 환자의 기왕력에 심장 관련 질환이 확인되었다. 관련 시술을 받은 병원으로 이송해서 evaluation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은 후 사설 구급차를 부르는 중이었다.


 전원 준비를 하는 동안 환자의 둘째 아들이라는 보호자가 내원했다. 환자와 이미 와있던 보호자에게 상태에 대해서 설명을 다 했으므로, 둘째 아들이라는 보호자에게는 앞서 설명 들은 내용을 전달받으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다짜고짜 화를 낸다. "우리 형이 보호자 역할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한테 설명을 해줘 놓고. 설명해 줬으니까 전해 들어라고요? XX, 너 이름 뭐야?" 이름을 알려드리며 -컴플레인을 넣으시려는 거 같았고, 가끔 있는 일이었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환자분과 함께 내원하셨던 보호자분이 장애가 있는지 몰랐다고 말씀드리며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드리려고 하자, "우리 형 얼굴 보면 보르냐고!"라는 어이없는 악다구니가 돌아왔다. 의료진 중에 그 누구도 그분의 형이 지적장애가 있다고 예상하지 못했다.


 한 차례 고성이 끝난 후에야 둘째 아들이라는 보호자분께 환자의 상태에 대해 전달을 드릴 수 있었고, 불러둔 사설 구급차도 도착했다. 침대를 이동하기 위해 주렁주렁 달고 있는 수액을 정리하고 모니터에 연결된 선들을 휴대용 모니터로 옮겼다. 평소였다면 무표정하게 진행했을 일이지만 신규간호사에게 자세하게 과정을 설명해 주고, 수액에 섞인 약물 각각의 용법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으며 미소를 띤 게 문제였다. -더 정확하게는 신규 간호사가 본인 때문에 수액 라인이 꼬였다며 멋쩍게 웃기에 나도 따라 가볍게 미소 지어준 게 다였다.-


 환자의 둘째 아들은 우리 엄마가 아픈 게 웃기냐며 괴성 섞인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해하셨다면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그런 이유로 웃은 게 아니라고 설명드렸지만 흥분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본인 형의 처지와 본인 스스로의 상황에 -나는 저분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비웃을 이유도 없지만, 내가 본인의 삶 자체를 비웃는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싶다.- 대해 비천하게 표현하며 앞으로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살기 흐르는 목소리로 병원 밖으로 따라 나오라고 고함지르며 부르르 떠는 주먹을 보여줬다. -응급실 내에는 의료진의 안전을 위한 CCTV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러한 협박을 당하는 와중에도 환자의 안위를 위해서 전원과정은 매끄럽게 진행돼야 했고,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뒤로한 채 환자를 위한 모든 절차를 끝냈다. 전원을 가는 그 순간까지 환자의 둘째 아들은 나를 향한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내가 교육해 주던 신규 간호사는 연신 나를 향해 사과했지만, 사실 신규 간호사도 나도 잘못한 게 없었다.


 함께 저 일을 겪은 신규 간호사는 몇 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우리 병원을 퇴사했다. -수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공공기관 필기 시험장에서 만났는데, 이후로 병원에서 근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날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간호사 면허를 반품합니다. -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