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더 놀다 들어갈걸 그랬어
공무원이 되고 싶어?
3년 동안 잘 놀고먹던 대학생은 4학년이 되자 마침내 조급해졌고 이번 학기는 도서관 죽순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취업난 속에서도 과선배들은 하나 둘 공무원이 되었고 미래를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공시생이 되었다. 공무원이 왜 되고 싶냐고 물으면 '되기 싫은 이유가 딱히 없어서'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개강과 동시에 휴학했던 동기들이 복학하고 봄꽃 낭만 가득한 캠퍼스를 즐기고 있을 때, 도서관 열람실에서 재정국어와 정석한국사, 공무원영단어와 사투를 벌였다. 종종 후배들이 부르면 도서관에서 뛰쳐나와 인문대 잔디밭에서 양념치킨을 뜯었고 구깃구깃한 만 원짜리 몇 장을 후배들에게 내밀며 4학년 선배의 짬바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쉽게도 4학년 언니의 자유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새해가 되었으니 본격 공시생모드에 들어가기 위해 거처를 도서관에서 집 근처 독서실로 바꾸고 6개월간 매일 10시간씩 칸막이 책상에 머리를 파묻었다. 밥은 엄마 식당에서 해결했고 종종 식사 후 독서실로 가다가 발길을 돌려 식당 위층 피시방에서 공시생의 고독함을 달랬는데, 이 고독한 공시생에게도 위기가 왔다. 어느 날 피시방 구석자리에서 포트리스 미사일을 쏘다가 그만 모니터에 비친 앞치마 한 엄마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공포 그 그 자체였다. 스물세 살 어른은 그 뒤로 창피해서 피시방을 갈 수 없었다.
두 번째 위기는 mp3 때문이었다. 엄마는 시험이 코앞인데 음악이나 듣고 있는 취준생의 나태함을 이해할 수 없었고 언쟁이 오가던 중 엄마 손에 들려있던 양상추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패대기 쳐졌다. 샐러드 만들어주신다고 준비한 양상추는 엄마의 사랑이 닿기도 전에 으스러졌고 상황은 심각했지만 우습기도 해서 화난 엄마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엄마의 불신은 7월 합격자발표로 말끔하게 사라졌는데 양상추를 보면 아직도 그날이 떠오른다.
신규공무원이 알아야 할 것
그 해 가을, 연고하나 없는 00군으로 발령이 났고 신규공무원의 절반은 아버지가 이장이던가 그곳이 고향인 사람들이었다. 비주류로써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난 승진에 관심 없는 9급 공무원이므로 일단 오늘의 할 일을 해내다 보면 내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 하기에는 너무나 지역사회 그 자체였기 때문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고향이 발전되다면 일할 맛 나겠지.
신규공무원 열두 명의 선서식이 끝나고 제일 연장자 같던 한 분이 모임을 주선했는데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 동기들은 자주 모여 회사 가십거리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고 만날 때마다 각자 힘든 상황을 공유하면서 더 각별해졌다. 열두 명은 남녀 6:6으로 위험한 비율이었는데 그렇게 자주 모이더니만 3쌍의 부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도 포함된다.
신규공무원이 알아 둘 것
지금 카풀 상대가 미래의 아이 아빠가 될 확률 77%
동기 중에 남편이 있을 확률 66%
공무원이 일상적인 업무만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디어를 내고 도시의 미래를 계획하고 예산을 따내고 발전을 위한 세부기획을 하며 때로는 새로운 분야의 공부도 필요하다. 기획과 예산, 복지와 건설, 경제와 민원, 농업 등 모든 분야를 창의적으로 접근한다면 보수적인 이 집단에서 상위 5%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위 5%라 함은 일복을 말한다. 야망이 있다면 움직여라. 일도 승진도 그대가 해라.
2005년 가을, 공무원이 된 김주무관은 19년 차가 될 때까지 소처럼 일만 하게 되는데......
- 다음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