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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 Jan 04. 2024

"네가 친절하면 다른 공무원이 불편해져"

작은 친절 큰 감동, 그 뒷이야기



 어느 날 옆자리 사수가 조언하듯 불편한 말을 했다. 민원인에게 네가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면 다른 공무원들이 피해볼 수 있다는 얘기. 2년 차가 되어 민원인을 대하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나름 성취감을 느끼던 시기였는데 불쑥 들어온 한마디에 모니터를 주시하던 내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그 말이 한 번에 이해되지가 않았다. 민원인에게 친절하지 말라니 무슨 말인지 직접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어떤 점이 불편했을지 생각해 봤다.

 

 첫번째, 민원상담 시 내가 담당한 업무, 그 밖의 일까지 알아봐 주는 것. 여러 개 부서가 연계될 경우 민원인이 직접 여러 부서를 오가며 알아봐야 하니 타부서일이라도 법의 규제를 받는지, 다음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알려주었는데, 그분은 이것을 오지랖이라고 판단했다. 10명 중 9명은 상담에 만족해하며 돌아가지만 잘못 안내하는 경우 그 책임은 누가 떠안을 것이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남의 일까지 알아봐 주는 건 '선 넘었다'라는 말이다. 이게 맞을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에서 대답한 것인데 아직 신규공무원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군청을 찾은 민원인이 상황 설명을 하고 대답을 기다리는데, "그건 도시과에 가셔서 알아보세요"라든가 "담당자가 출장 중이니 다음에 오세요"라는 말이 잘 안 나왔던 건 사실이다. 오래전 <개그콘서트>에서 공무원의 업무패스(핑퐁)를 풍자했던 코너가 있었는데 공감되지만 씁쓸함도 동시에 오더라.



 

 두번째, 민원인에게 살갑고 자신만만한 말투. 같은 종류의 민원을 상담하다 보면 내용을 반복하면서 일정한 억양이 생기는데 상담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완전히 내 일'이 되었을 때에는 자신감이 말투에 드러났다. 마치 고객센터 상담원처럼 약간은 기계적인 말투가 되기도 했지만 친절한 태도와 경청은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민원인이 오해하거나 엉뚱한 말을 해도 일단 끝까지 들었고 살가운 말투로 응대했다. 왜 과하단 말인가? 응대방식이 달라서일까? 사수는 좋게 말해서 담백한 사람인데 옆자리에서 행해지는 신규공무원의 과잉 친절을 날마다 목격했을 테고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공무원은 맡은 일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안내하면 될 일인데 그 이상을 해버리면 민원인의 기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분의 기준에는 과잉이 맞았다.


 세번째, 점심시간에 민원 전화를 받고 메모를 전달하던 것. 점심을 일찍 먹고 들어온 날, 다른 자리에 전화벨이 울리면 일단 땡겨받아 담당자에게 메모를 전달하고 민원인은 전화를 기다린다. 하지만 12시부터 1시까지 모든 공무원은 '무급'이다. 사수가 말해주기 전까지 나의 친절이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후 점심시간에 벨이 울리면 내 자리에 온 전화만 받고 있다.




 사수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걸까? 7급 공무원은 왜 방어적으로 일하게 되었나.


 불편했을 일을 생각해 보니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정도가 떠오르지만, 누구의 생각이 틀린 건지 알 수 없다. 내 방식이 100% 맞다고 할 수도 없다. 공무원이 방어적으로 일하게 된 계기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봉사행정: 과거의 권력적, 지배적, 주도적, 규제적 행정에서 벗어나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고 주민 경제를 지원하고 협조하며 봉사하는 역할을 추구하는 행정.


 '봉사행정'의 실천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던 때, 대민업무의 최전선에 있던 우리 과는 과격한 민원인의 불편한 언사도 참아가며 버티고 있었다. 참을 인(忍) 자 세 개를 모니터에 붙여놓았던 팀장님이 생각난다. 관료주의와 규제적 행정에서 불통을 느끼던 민원인은 결국 과격해졌는데, 고객감동을 외치는 시대인 만큼 불통을 보상받으려는 자가 소리를 내면 불통의 원인을 파악하기 전에 일단 공무원의 응대를 문제 삼았다. 팀장님은 참을 인자를 마음에 새기고 방어적 태도를 선택했다. 언제부터 민원인이 '갑'이 되었는가. 누가 민원인을 '갑'으로 만드는가.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민원인이 납득되게 전달하는 일은 어렵다. 친절하게 거절하는 방법은 인생에서도 쉬운 게 아니지 않나.

 



 신규공무원으로 임용되었을 시기, 전국 관공서에는 '봉사행정', '고객감동' 슬로건을 내세워 자치단체 홍보를 했고 우리군도  <민원인을 맞이하는 나의 각오>를 매일 전 직원이 낭독하던 때가 있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민원인을 맞이하겠습니다.
말씨는 부드럽고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겠습니다.
나의 주장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겠습니다.
전화는 겸손하고 친절하게 받겠습니다.
안 되는 민원일수록 친절히 상담하겠습니다.
민원상담 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상담하겠습니다.

  

  과거에는 공무원이 참고 설득하고 버텨야 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민원인과 공무원이 존중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회사에 비치되어 있는 민원응대매뉴얼을 보면 ▲기본 응대요령 ▲방문민원 응대요령 ▲전화민원 응대요령 ▲특이민원 법적 대응요령 ▲녹화·녹음 요령 ▲민원공무원 보호 방법 등 공직자가 민원 업무를 추진하면서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있다.




 '네가 친절하면 다른 공무원이 불편해져'라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나의 친절이 부담이 되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고 해서 내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랬구나,라고 이해만 할 뿐이다.

 일선 공무원들이 존중받고 민원인과 원활히 소통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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