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들 Jan 26. 2024

토지분쟁, 누가 살아남았을까?

토지분쟁 해결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썰


 

 토지 분쟁 지역을 대단위로 묶어 현장을 조사하고 소유자와 만나 경계 합의를 유도하며 새로운 경계를 공부에 등록하는 일. 내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말은 참 쉽고 간결해서 얄밉다. 개인 재산권을 다루는 것이 부담되고 잠 못 이루는 날이 자연스레 많아진다. 한 해에 한 지구씩 수백 명을 만나 분쟁의 역사를 경청하고 해결까지 해야 하니 감정소모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만난 사람들(토지분쟁 소유자)에 대해 쓰려고 했다. 그보다 일에 대한 설명이 먼저일 거라 생각해서 사례는 다음화로 미루고 이번 연재는 일에 대해 써보겠다.




 '지적(地籍)'은 땅의 주민등록이라 할 수 있다.'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 활용하고, 토지 거래의 기준이 되며,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의 기준이 되는 등 국민 생활의 기초자료이다.'


 우리나라 지적도는 일제강점기에 세금 부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 현황을 종이에 축척 1200, 6000등으로 축소해 그려놓은 것이 '지적도'이다. 1910년부터 2004년까지 100여 년간 종이 지적도 낱장에 존재하던 토지경계는 전산화하여 현재 시군구청에서 전산지적도로 발급되고 있다. 내 땅의 모양을 알고 싶으면 지적도를 확인하고, 경계가 궁금하면 경계측량을 통해 알 수 있다. 경계측량은 어느 기준점을 사용하여 측량을 하는지, 토지현황 중 어느 고정물을 기준으로 과거에 측량을 해왔는지에 따라 지금의 경계점 위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경계를 표시할 수 없는 토지가 있다. 도면을 낱장으로 관리하던 시기의 측량기술과 전산도면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측량성과를 결정할 수 있는 지금의 기술은 시간이 말해주듯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지역의 측량기준이 일관되지 않고 각각 다른 측량성과가 존재한다면, 어느 기준을 따라갈지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토지의 경계를 측량할 수 없는 상태, 이를 '지적불부합지'라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2013년부터 지적불부합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적재조사사업>을 추진했다. 시행은 시군구이고 측량은 한국국토정보공사에 위탁하여 수행하고 있다.


지적재조사사업이란? https://www.newjijuk.go.kr/




 일제강점기 이후 100여 년 만에 새 지적도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일제잔재 청산, 토지이용가치 상승 및 지역경제 발전, 정확한 토지정보 제공 및 행정 간소화, 다른 공간정보와의 융합과 활용 등이다. 이외에도 미래지향적이고 글로벌한 의미가 더 있지만 이 사업은 무엇보다 당면업무를 소란 없이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기에 토지소유자가 느끼기에 뜬구름 잡는 말은 생략하겠다.




 '현황을 반영하여 경계를 정하고, 소유자에게 알리고 의견을 검토하고, 법적 기한을 지켜 경계를 확정하고 등록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깔끔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토지소유자의 이해관계를 조사하고(누가 갑인지, 누가 을인지) 양쪽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민원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해 내 감정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싸움을 말리는 일도 포함된다.


 토지 경계를 만드는 일은 개인 재산권을 조정하는 일이다. 부담스럽다. 하지만 한다. 사명감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힘들게 했던 상황 몇 가지가 기억난다.



  <지적재조사사업>은 측량비 전액을 국비 보조받아 시행하는데 5천필지를 추진할 경우 10억의 측량비를 보조받지만 면적증감에 따른 조정금은 40억이다. 조정금은 전액 시군예산으로 집행된다. 국비사업이지만 측량비만 국비일 뿐 조정금은 시군비로 충당해야 한다. 평균적으로 도시지역을 추진하면 시군 입장에서 예산이 (+)이고 농촌지역을 추진할 경우 (-)이다. 토지 경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사업이지만 땅장사하냐며 비아냥대는 분들도 더러 있다.


토지분쟁이 되는 대표 사례는 새마을사업 도로의 현실화이다. 토지소유자는 모두가 좋아지고 내 땅도 좋아지는 조정안을 웬일인지 거부한다. 왜? 인근토지가 좋아지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 내 땅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고 옆토지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내 땅을 밟고 다닐 거면 내가 손해 보는 만큼 네 땅을 나에게 X5배로 떼줘', '내 땅을 반듯하게 조정하면서 네 땅도 좋아질 수 있다니, 모두가 좋은 것은 거부한다.'는 욕심꾸러기 소유자. 어떻게 해결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화에서 얘기하겠다.


 담당자와 얘기하면 될 일을 군의원을 통해, 도청 과장님을 통해, 군수실을 통해 이야기하는 민원인. 담당자와 말이 안 통했던 것이 아닌데 사소한 일이라도 꼭 윗선을 통해 전달하는 건 그야말로 행정력 낭비이다.


80대, 90대 토지 소유자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직접 경계협의를 하러 오신다. 산 넘고 물 건너 덥거나 추울 때에 상담을 위해 찾아오시는 수고로움이 안쓰러워 상담이 끝나면 직접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그 수고로움에 보답하고자 최대한 자세히 경계를 설명하지만 보통 잘 안 들리는 경우가 많다. 큰 소리로 또박또박 전달하면 목소리가 커서 사무실 전 직원이 대화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을 정도다. 최대한 설명을 드리고 공문에도 자세히 경계설명이 되어있지만 사업이 끝나고 뒤늦게 소유자의 자제분들에게 연락이 온다. '어르신이 뭘 안다고 마음대로 경계를 조정했습니까?'라고.


측량을 하기 전에는 평화로웠던 마을, 옆집에 내 경계가 저촉된 걸 모르고 살았다가 이번 측량으로 알게 된 경우라면 이제 전쟁은 시작된 것. 토지 분쟁을 해결하러 왔는데 긁어 부스럼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잠재되었던 다툼이므로 이 사업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해야만 한다. 사례는 다음화에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힘든 얘기만 했네요. 하지만 오해 마세요. 토지소유자 입장에서는 좋은 사업입니다.


다음화에서는,

어쩌다 이 블랙홀 업무에 갇혔는지, 어쩌다 9년이나 헤어 나오지 못한 건지 생각해 보며 실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