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고 싶다. 바꾸면 되지. 바꿀 수 있을까? 머리색 하나 바꾸는데 뭘 고민해.
탈색하고 출근을 할 수 있을까. 군수님 결재는 들어갈 수 있을까?
신규공무원도 아닌데 설마 누가 뭐라 하겠어?
어떤 색으로 할까?
미용실은 회사 근처 뿌염하러 자주 갔던 곳.
"사장님 저 탈색하려고요~" 사장님은 "괜찮겠어요?"라고 묻지만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안될 거 뭐 있어요.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라고 아직 갈팡질팡했던 마음을 100%로 꽉 채워주셨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당해졌고 탈색약이 정수리까지 묻히면서 나의 고민도 끝이 났다. 첫 번째 탈색이 끝나고 노랑머리가 되었다가 두 번째 약을 바르고 베이지색이 되었다. 그래 이거지.
덮일 색은 애쉬핑크. 보랏빛과 핑크빛이 도는, 잿빛이 섞인 오묘한 색으로 골랐다.
월요일 아침 남편의 잔소리를 들으며 출근준비 중. 같은 회사인 남편은 와이프가 한소리 들을까 걱정된다.
'남편 너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었어?' 주차장에서 나와 회사 현관문까지 가는데, 매일 걷는 길이지만 오늘은 당연히 낯설다. 새로 산 옷을 입었는데 하루종일 불편한 것처럼, 즐겁지만 불편한 마음. 우리 과 자동문이 열리고 핑크머리 공무원 등장등장. 벽을 깨부수자.
이른 시간이라 직원들은 없고 팀장들 뿐이다. "안녕하세요" 목례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아직 아무도 나의 변화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8시 40분이 넘자 하나 둘 출근하는 직원들이 핑크머리 곁으로 모여든다.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제1조의3(복장 및 복제 등) ① 공무원은 근무 중 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단정한 복장을 착용하여야 한다.②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제1조의2에 따른 근무기강을 해치는 정치적 주장을 표시 또는 상징하는 복장을 하거나 관련 물품을 착용해서는 아니 된다.
공무원은 품위유지는 어디까지일까?
관리(전문용어로 '고나리')당한 직원들의 말을 빌리면 사례는 다양하다.
민소매 - 여름에 민소매를 입은 여직원이 의자 위에 올라가 손 안 닿는 곳의 서류를 정리하는데 그 모습이 부끄러웠다는 같은 과 남자직원이 있었다. 여러분, 겨드랑이는 보여주면 안 되는 곳인가요?
여름에 미니스커트는 되면서 왜 무릎까지 오는 정장 반바지는 안되는 거죠?
점프슈트나 멜빵 원피스 - 우리 과 서무는 점프슈트를 좋아했는데.. 그날 이후 입지 못했어요.
화려한 네일이나 패디큐어, 그리고 맨발에 샌들 - 네일 은 취향 아닐지, 한여름, 맨발에 샌들신고 결재 가면 예의가 아닌 건가요? 여름인데, 안.... 될까요?
5년 전쯤 복장에 대한 품위유지 기준은 위에 나열한 것과 같았고 코로나를 거쳐 2024년인 지금, 네일까지는 이제 허용된 것 같은데 민소매나 맨발에 샌들, 알록달록한 발가락을 내놓고 다니는 사람은 아직 없다.
거울 속 모습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3일이면 충분했다. 핑크머리는 열흘 만에 색이 빠졌고 노란 베이지색이 되었는데 머리색에 적응은 되었지만 (아니, 남이 나를 적응했겠지만) 아이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만큼은 시선을 의식하고야 마는. 나의 다른 이름은 "ㅇㅇ엄마"였다. 혼자였을 때 괜찮았던 것이 'ㅇㅇ엄마'로 불릴 때에는 달랐다. 아이들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날 때, 학원상담 갔을 때, 소아과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날 때, 최대한 단정하게 머리색을 눌러주는 옷을 고르는 나는 탈색머리를 했지만 그리 힙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험치는 상승했다. 처음만 어려운 거 아니던가?
챗GPT에게 일탈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일탈"은 일상적인 규칙이나 관습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가리키는 한국어 표현입니다. 이는 종종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를 나타내거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성격에 따라서 일탈에 대한 태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창의성을 향상하기 위해 일탈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선호할 수 있으며, 일탈을 피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탈이 필요한지 여부는 상황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옳거나 그름을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성장을 즐기면서도 책임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신규가 들어왔다. 수염을 안 민다. 사극을 찍어도 될 만큼.
2024년에 살고 있는 공무원의 품위유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 봐야겠다.
덥수룩. 말 그대로 덥수룩한 수염은 관리대상일까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