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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 Jan 11. 2024

승진? 난 관심 없는데?

라고 9급 공무원이 말했다.


01화 스물셋, 공무원이 되다. (brunch.co.kr)

02화 "네가 친절하면 다른 공무원이 불편해져" (brunch.co.kr)



 03화

 신규임용식이 끝났다. 두 손 공손히 임용장을 들고 서무 주사님을 따라 내가 일하게 될 곳으로 가는 길이다. 6층에서 5층으로, 5층에서 4층으로, 3층으로. 엘리베이터 숫자가 바뀌는 동안 층별 안내도에 시선을 고정하고 우리 과를 찾아본다. 우리 과에 입장했다. 내 자리에 점점 가까워지자 벌써 사회적 미소가 장착되었고 반겨주는 분위기에 마음이 편해진다. 곧 티타임 자리에서는 집이 어딘지, 자차로 다니는지,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등등 호기심 어린 눈빛들을 마주하며 취조에 응했다.  

"김주사는 좋겠어. 앞길이 창창해"

 일반직 공무원은 직렬별로 승진이 되던 때라 16년 전에 들어온 윗선배는 막 들어온 신규가 부러운 듯, 까마득한 후배의 '막힘없을 미래'를 거하게 환영해 주었다. 2005년 가을이었다.


 맡게 된 업무는 개인 토지의 개별가격을 산정하고 공시하는 일인데, 매년 5월 말이 되면 조용했던 사무실이 이의신청하는 민원인들로 소란스럽다. 이의신청 상담을 하고 틈틈이 당면업무를 해치워가며 출근과 퇴근이 점점 가까워졌고, 어느 날은 출근하고 시계를 보니 퇴근시간이기도 했다. 그 하루들이 모여 9급 공무원의 짬은 점점 단단해졌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게 익숙해질 때 즈음 인사시즌이 되었다. 매년 1월과 7월 정기인사 시즌이 있지만 부서이동이 없는 직렬이고 승진대상도 아니어서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2년 반이 지나 계급 업그레이드할 때가 되니 마음가짐이 다르다. 모두가 예상한 시간이 지나고 6시가 되자 인사발표 방송이 나온다.

 귀를 열고 방송을 들었다.

 "ㅇㅇ과 김ㅇㅇ! 8급 승진"

  승진자를 호명하는 방송을 타고 2년 6개월을 채운 동기들의 이름이 나란히 줄을 섰다.

 그런데 좀 서늘하다. 동기들 중 한 명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윗 선배와 근무년수 차이가 커 최소년수만 채우면 초고속 승진일 거란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그때마다 관운 있는 사람이 된 나는 "승진? 크게 신경 안 써요"라고 이 세계에서만큼은 자유인간이 되기로 했다. 인사 때마다 누가 승진 대상인데 누가 할 것 같은지, 그런데 누가 미끄러졌다든지 하는 얘기를 마주하면 승진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보였고 공감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9급이라서, 미끄러져본 적 없어서, 8급 승진은 순서대로라고 알고 있어서, 승진에 에너지를 뺏길 필요가 없었으니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다시 말해 9급공무원 김주사는 승진에 관심 없는 자유인간이 아니라 경험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열두 명 동기들 중 승진자 명단에 이름이 없는 동기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미안한 마음, 불편한 마음이 앞섰지만 내 안에서 작은 소리로나마 나도 있다고 소리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안도감'이었다. 불편한 마음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고 자유인간은 이제 없다. 승진, 빨리하고 싶진 않지만 낙오되는 건 싫다.


<올라가자> 출처 @unsplash


 

 자유인간 해제, 두 번째 관문은 7급 승진이다. 승진으로 인해 씁쓸한 사람이 변방에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내가 될 수는 없다. 8급공무원 김주사는 결혼을 했고 첫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꼭 내 품에서 키우고 싶었지만 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신다고 하니 휴직은 없던 일이 되었고, 휴직하지 않은 데에는 곧 7급 승진 대상인 이유도 있었다. 가족이라 해도 아이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출근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지만 아침마다 눈물을 꾹꾹 누르고 워킹맘의 일상에 적응했다. 그동안 동기 여직원들은 1~2년씩 휴직을 했고 7급 대상이 되는 해에 복직해서 우리는 다 같이 워킹맘이 되어있었다.

 

드디어 인사발표 방송 딩동 울린다. 승진자 발표가 되고 있다. 남편은 동기이다. 남편 이름이 들렸다. 그런데 다음은 없다. 축하해, 축하는 하겠는데. 난 왜 안된 거지? 직류를 통합해서 승진후보를 선정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직렬 안에서 늘 관운 좋다는 말을 듣고 살았는데 직류가 통합이 된다니 관운 좋은 김주사는 이제 없다.


1년뒤,

 다음 해 1월 정기인사. 올해부터 승진자 발표는 방송이 아닌 인터넷게시판에 올리기로 했나 보다. 새 글이 뜨기가 무섭게 파일을 열었다. 동기언니들의 이름이 하나 보인다. 내가 없다. 왜일까? 이유인즉, 시설직 보다 행정직을 우선 승진시킨 듯했다. 동기 시설직은 모두 안 됐으니 어쩔 수 없지. 사업부서가 얼마나 힘든데 시설직의 수고를 몰라주는 사장님이 미웠지만 그날만 미워하기로 했다.


 이제 두 아이의 워킹맘이 되었고 새로 맡은 일은 익숙해지는데 왜인지 일은 자꾸만 쌓인다. 애초에 업무량이 과했는데 말했어야 했나. 일복 터진 엄마는 둘째를 시댁에 맡기고 주 4회는 첫째를 데리고 야근을 한다.

 바탕화면 색칠공부 폴더에는 신비아파트, 뽀로로, 헬로카봇, 초식공룡, 잡식공룡, 육식공룡 등등의 색칠놀이 파일이 다운되어 있고 책상서랍에는 12색 색연필과 색종이, 돗자리가 항상 아이들을 대비하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누구보다 많이 일하고 있는 '승진 기다리는 8급 공무원이 여기 있어요.'  


딸이 갖고 놀던 몇 개 남은 색연필, 이제는 중학생이 되었다.



 7월 정기인사 날이다. 이번에는 되겠지. 인사내용을 확인하려고 게시판에 들어갔다. 서버가 폭주한다. 하얀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저쪽 팀에서 먼저 접속했다고 파일을 열었다. 직원들은 먼저 열린 자리의 모니터로 모여든다. 5페이지나 되는 인사내용을 실눈으로 스크롤한다. 이런. 이번에도 없다. 2년 휴직하고 돌아온 동기는 승진을 했다.

 오줌이 마렵다. 화장실로 간다. 오줌은 안 나오고 눈에서 콸콸 눈물이 쏟아진다. 인사철에 화장실에서 우는 직원을 봤었는데, 이번엔 그게 나라니. 1월 인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낼 수는 없다. 두 번 다시는..



 6개월뒤,

 12월 셋째 주부터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대대적으로 조직개편이 있었기 때문에 승진자가 많아질 거라고 했다. 토지분할을 하러 온 민원인과 분할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게시판에 '그것'이 올라왔다. 민원인은 갔고 파일을 아직 열진 않았지만 나에게 어떤 소식을 전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므로 나는 명단에 없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없고 모니터 앞에만 있다. 따질 힘도 없고 눈물도 안 나지만 분노가 치민다. 같은 직렬인 나보다 늦게 8급을 달았던 직원이 둘이나 올라가 있다. 뭘까.


 나이 때문이라고 했다. 누가 어디서 개풀을 뜯나. 퇴직 앞둔 5급 승진도 아니고 7급 승진을 나이로 할리가. 알 수 없지만 알 것 같았다. 내가 8급에 멈춰있는 동안 남편은 전보가 멈춰있었다. 검은색 노트에 우리의 이름이 적혀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퉤.


 우리 동기 열두 명은 승진명단에서 혼자 없어지거나 혼자 나타나거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조금씩 이 세계를 알아갔다. 내 업무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지역사회인 것을 간과했다. 그러면서 씁쓸하다가 기뻤다가 미안했다가 불편했다가를 반복하다가 나를 포함한 우리 동기들은 비슷하게 6급을 달고 팀장이 되었다.


 승진은 봉급 인상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성과는 어떻게 인정받아야 할까, 많이 일하는 것이 열심히 일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군민이 환영하는 업무를 해야 인정받는 것일까, 묵묵히 일하면 바보가 되는 것인가.

 보직은 또 무엇인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버리는가.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 뿐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승진? 난 관심 없는데?

라고 9급 공무원이 말했듯이 나의 승진은 목적이 없다. 하지만 딸린 식구들이 생겼다.

후배들만큼은 일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 많이 나간다던데..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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