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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 Feb 01. 2024

토지 경계분쟁 최초 목격자의 증언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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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보드한테 하소연하듯 자판을 두들겼다.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날은 성취감 같은 반갑지 않은 감정이 이 자리를 버티게 했다. 도대체 이 일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헷갈린다. 보상에 속아주는 척  꾸역꾸역 내 앞에 놓인 일을 해나간다. 그렇게 8년 반이 흘렀다. 담당자에서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6급 승진 후 2년 만이다. 축하화환에 리본을 떼며 이 팀을 벗어날 수 없음에 절망했지만 절망할 수 없었다.


 새해맞이 서랍정리를 하기로 했다. '소란'이 있던 자료집부터 정리하기로 하고 파쇄기 앞에 앉았다. 8년 반 동안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현장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두꺼운 종이더미를 낱장으로 뜯어 5~6장씩 파쇄기에 넣었다. 넣기 시작하면 5장 10장 15장 돌아가다가 자꾸만 종이를 뱉는다. 안 되겠다. 종이더미를 파쇄기에서 꺼내 반으로 찢고 포개서 다시 반으로 찢고, 한 번 더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종이더미에 메모해 둔 문장이 단어로 쪼개지고 단어는 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자음과 모음의 형태로 뒤죽박죽 조각났다.


 이제 분쟁의 기록은 없지만 기억에서 아직 버려지지 않은 몇 가지 이야기를 남겨놓기로 한다.  



내 땅 밟고 다닌 건 생각 안 하고!
그냥, 원래대로 해주세요, 조정 안해요


 비법정도로. 법정도로가 아닌 마을 안길이나 골목길이 해당된다. 새마을사업 당시, 사유지에 관습상 사용해 오던 도로를 확장하거나 맹지에 길을 내기도 했는데 지적재조사사업은 사유지 경계를 점유한 대로 조정해서 내 땅이지만 재산권 행사를 못하는 땅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새마을사업 도로를 지적도에 반영하고 사유지였던 도로를 공공용으로 만들어 현황에 맞게 지적도상 소유가 명확해질 수 있다.

 사업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계획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측량조사를 끝내고 집집마다 경계를 표시하는데 어제까지 분명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분이 오늘은 안색이 좋지 않다. 웬일인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냥 원래대로 해주세요' 담당자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다.

  땅의 이해관계가 한 개의 땅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터의 도면상 경계가 도로까지 나가있던 A씨는 보상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아쉬운 게 하나 있다. A씨의 옆집은 4년 전 외지에서 이사 왔고 당시 경계측량을 했는데 그 집 경계가 A씨네 텃밭에 표시된 것이다. 마을에서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전주인이었더라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넘어갔을 터인데, 이사 온 집은 울타리를 다시 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시골인심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인정머리 없는 외지인'에게 A 씨는 다니는 길에 내 땅이 있는 걸 모르냐, 남의 땅 밟고 다닌 건 생각 안 하고 텃밭 조금 걸렸다고 땅을 찾아가려 하는 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이라 하소연한다.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삭막 해지는 건 한순간이다. 현황과 도면상 경계가 다르면 갑을관계가 생기고 인접지와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경계조정이 소란하게 진행된다.

 현황(담장이나 구조물)에 따라 경계를 조정하면 된다고 규정에 나와있지만 법조문 몇 줄로 사유 재산의 범위를 간편히 정하기엔 변수가 너무나 많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셔야 후회 안 하신다고 거듭 설득하지만 답은 다른 데에 있었다. 그들만의 역사, 그 안에서 쌓인 감정을 우리는 모른다.

 결국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 먼저 들어줘야 한다. 무한 공감하고 충분히 이해한 다음 공감과 이해의 표현을 확실히 해준 뒤, 우리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더라. 물론 감정소모가 되는 일이다



내 땅을 니들 맘대로 조정했어?


 경계협의는 소유자 연락처가 있어야 날짜 장소를 잡고 개별협의가 가능한데, 연락처 수집이 참 어렵다. 공문을 두 번 세 번 보내도 아무 연락이 없는 사람이 있다. 공문형식이 딱딱해서 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찌라시'처럼 안내문을 만들었다. 빨강글씨로 강조하고 밑줄 긋고 느낌표 붙여가며 경계조정안에 대해 꼭 확인하고 면적증감 토지는 조정금으로 정산되니 현장 확인 안 한 소유자는 꼭 연락 달라고 A4용지에 요란하게 써서 동봉했다. 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안내문 보고 전화문의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500명 중 490명이 긍정적이어도 협의불가한 소유자 10명이 나중에 문제가 된다. 등기우편 보내고 반송되면 일반우편으로도 보내고 공시송달까지 했지만 법적 절차를 이행한 것일 뿐, 나중에 소유자가 찾아와 내 땅을 니들 맘대로 조정했냐며 소리칠 때에는 공시송달이 방어가 되지 못한다. 소송을 하면 방어가 되겠지만 당장 소리치는 민원인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 공문을 보냈어도 소유자와 협의안 된 상황에서 면적이나 경계가 바뀔 수 있을까? 쌉가능. 가능하다. 경계조정안에 대한 이의신청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안 된 토지는 경계와 면적을 되도록 그대로 두지만 인접토지에 따라 변경되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공문을 꼭 보시라.



어르신이 공문을 보고 뭘 알아요?

 

 소유자는 80대 어르신, 혼자 사는 분이고 직접 만나 경계설명도 했던 토지이다. 사업기간 동네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본 할머니는 항상 대문 밖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우리 팀을 구경했다. 계절의 변화 말고는 새로울 게 없는 할머니의 일상에 매일 왔다 갔다 동네방네 움직이는 우리 팀이 볼거리가 된 것 같다. 어느 날은 자식들 얘기를 한참 하며 심심하다고 자주 오라고 하셨다. 시골에 어르신들은 보통 마을회관에서 삼삼오오 모여계시는데 코로나가 청정마을인 이곳까지 들이닥쳐 어르신은 더 외로워야 했다. 수백 명을 만나지만 할머니와 했던 대화는 기억하고 있었다. 경계설명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경계 알림 통지는 세 번이나 발송한다. 별다른 이의신청이 없어 경계조정안대로 사업완료가 되었는데 면적이 줄어 조정금 청구 안내문을 보냈더니 그제야 자제분에게 연락이 왔다. 땅이 줄었다는데 어떻게 상황이냐며 전화기 너머로 당황과 분노가 느껴진다. 본가에 들를 때마다 우편물 못 보셨냐고 물었지만 공문을 봤는데 땅이 줄어드는지는 몰랐다고 한다. 공문 내용이 어려웠을까? 생소한 사업명이고, 어떻게 되겠어?라는 마음으로 대충 보고 버리셨을 것이다. 동네에 들를 때마다 한여름엔 더위걱정, 겨울엔 추위걱정해 주신 할머니에게 미안하다. 더 자세히 설명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자녀분 연락처라도 물었어야 했을까.





 

 파쇄기에 넣었던 이야기를 브런치에 주어 담았다. 다시 주웠는데 후련한 기분은 뭘까?

사실 파쇄한 자료에는 더 예민한 사례가 있지만 적지 않기로 한다.



 작년 사업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 토지 소유자의 80%가 만족했다고 답했고 15%는 보통, 5%는 불만족으로 나왔다. 수치상으로 문제없을 것 같지만 사업이 끝난 뒤에는 5퍼센트의 힘이 커진다. 군수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기자를 만나 팔자에 없는 취조를 받고 행정심판과 소송 답변서를 써야 한다. 모두 다른 사건이다. 95%의 성과보다 5%의 힘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좋은 걸 잘했다고 포장을 더 해야 할까? 일 잘하는 공무원은 포장을 잘해야 한다던데. 포장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일도 잘하고 포장도 잘해야겠지.

 아이고, 그냥 일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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