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썸네일은 단호하고 희망적이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조직생활 베테랑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조직생활에서 번뇌하는 미생에게 조언이라니, 고맙다.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으며 반성하고 수정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누구에게도 조언받기는 힘든 짬밥을 먹었으니 나를 조련하는 랜선 선생들이 그저 고맙다. 출근길에 듣는 인생조언으로 잠을 깨고 뇌도 깨이고 기분도 그런대로 괜찮은 날이다. 장거리 출퇴근이 힘들지만 좋은 점은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서다. 오늘은 꼰대 되지 않는 법 특강으로 가볍게 출근길을 달린다.
나이 들면 고민의 질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똑같다. 같은 상황, 같은 종류의 고민이다. 다만, '저 사람은 왜 저럴까?'에서 '나는 왜 그럴까?'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떻게 해결을 하든(못하든) 간에 자기 검열로 마무리가 된다. 멋모를 때에는 고민을 세상으로 뱉었지만 오춘기는 그게 부끄럽다. 꼰대 퇴치법을 보는 게 아니고 꼰대 되지 않는 법을 보고 있노라니,차 안의 공기가 어딘가 고독하다.
내가 봐온 꼰대들은 어땠나?
꼰대 선배님을 고발해 보는 시간.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했다.
큰일 났다. 그때 그 시절 크고 작은 이슈들을 떠올려보니 딱히 꼰대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걸 지금 알았다.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은 일들 뿐이다. 오랜 가르침을 '꼰대'라는 단어로 비하하는 후배가 될 뻔했다. 다만 어떤 일은, 꼰대가,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마땅히 그렇게 불려야 할 것들이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회식하다 도망가서 핀잔을 듣던 일이나 주말 일손 돕기에 개인사정으로 못 나가서 또 핀잔을 들었던 일 같은 '단합'과 관련된 일이다. 10여 년 전이지만 조직생활에서 '개인사정'이라 함은 조직을 배신하는 일과 같았다. 풉
그러고 보니 2014년 즈음 우리 팀에 들어온 신규가 생각난다. 팀회식과 과회식, 번개, 점이하들의 회식 등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던 때가 있었다. 아련하다. 코로나 이전은 정말 다른 세상인걸 실감한다. 여느 때와 같이 팀장님은 날짜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본인이 어려운 날을 빼고 어렵게 혼자 힘으로 회식날짜를 잡아 통보하셨고 직원들은 달력에 표시하는 것으로 오케이 싸인을 보냈다. 이번주 목요일 회식. 와중에 달력에 표시도 대답도 않는 옆직원에게 그날 일있냐고 넌지시 물었다.
오호라, 회식을 빠진단다. 이유인즉, 금요일에 학교친구들과 놀기로 해서 전날 무리하면 안 된다고. 지금은 맞고 그때엔 틀렸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인가? 요즈음 젊은 직원들은 생각이 이렇구나, 강요하면 안 되지 하면서도 그깟 이유로 회식을 못 온다고? 어이가 나가서 들어오지 않다가 팀장과 젊은 직원의 중간 세대인 나는 고민한다. '아, 나도 애 봐야 되는데..'
팀장님이 자리에 오셨고 직원은 바로 일어나 불참 사유를 이야기했다.
- 팀장님 저 금요일에 약속이 있어서요~
- 그럼 잘됐네 우리 회식은 목요일이여~
- 아뇨 금요일에 마시려면 목요일은 쉬어야 해서 회식은 안 가려고요.
- ............
아마 난 이때부터 조직과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생각은 내 몸에 밴 생각일 뿐,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팀장님은 그 직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합리화하는 부류가 싫다.
'답정너'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말을 나는 안다. 웃자고 유머로 만든 말에 다큐로 받는 것 같지만 '답을 정해놓고 합리화하는 사람'은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업무면에서는 더 그렇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법령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지만 인생사가 정해진 규칙안에서만 일어날 수 없으므로, 일선행정도 마찬가지다.
머리 맞대고 최선으로 결정을 하기까지 '생각이 다르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그저 고맙다. 그 생각으로 인해 내가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반대로 그 생각을 내가 고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가 아니라 '네 생각이 틀렸어'로 접근하는 대화는 이제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화의 방향이 어느새 그 사람이 정해놓은 답으로 정해지는 일을 한번 두 번, 한 해 두 해 겪으면서 한때 '진리'수준으로 신뢰했던 그 사람의 생각을 언제부턴가 밀어내고 있다. 우리 팀에서 결정한 일을 잘못했다고 지적받는 일, 관심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하며 느꼈지만 인사시즌이 되어 남은 정마저 떨어지던 순간이 왔다. 소내인사가 이렇게 기 빨리는 일이었다니
어느 날, 나에게서 그들의 냄새가 났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내가 팀원일 때 싫었던 것들이다.
첫째, 기한이 있는 일은 기한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재촉금지의 원칙) 하려고 하는데, 하고 있는데 재촉하면 모든 일을 내려놓고 싶어 진다. 묻기 전에 알려주면 고맙지만 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입을 닫고 묵묵히 기다려라. 둘째, 내가 옳다고 해왔던 일을 의심하라. 어느 날 낯선 계획서가 결재에 올라왔다.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직원은 받아들였지만 내 생각이 다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 생각이 낡았던 탓이다. 관습을 되돌아보고 열린 사고를 하자. 셋째, 지적은 조용히 하자. 넷째, 힘들다고 말하는 후배에게 라떼는 어땠는지 내 이야기를 하지 말자. (마지막이 가장 중요★)
네가지만 적어봤는데도 난 이미 틀렸다. 오늘도 재촉했는걸. 큰소리로 지적했는걸? 그리고 일이 많다고 하는 직원에게 라떼의 상황을 설명하며 공감해주지 않았는걸. 이제 내 차례인가? 이제, 내가 꼰대가 되는 건가. 나에게서 그들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꼰대의 정의로는 자기 중심성이 짙은 사람, 남의 인생에 개입하려는 사람, 권위가 너무 심한 사람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꼰대가 많은 집단에서는 꼰대가 주류가 되지만 앞으로는 90년생이나 00년생들이 많아지게 되면 꼰대가 소수가 되면서 조직에서 배척당할 확률이 높다. 꼰대는 예전에는 선생님, 나이 든 사람을 일컫는 귀여운 말이었지만 요즘에는 단어만으로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뿜는다. 꼰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한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꼰대로 치부해 버리는 문화도 있다.
수년 전부터 MZ세대는 그들의 취향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강의도 있을 만큼 조직 안에서 이슈였다. <과장님 점심 모시기> 기사만 봐도 그렇다. 여태껏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들이 MZ를 통해 드러난다. 그들과 나란히 일할 때와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때는 나도 조직 속의 MZ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꼰대가 되려고 하다니 상황 탓을 하고 싶지만 애초부터 그들을 이해했던 게 아니라 이해한다고 믿어버렸던 게 들통난 꼴이다. 이해가지 않는 걸 지적하든지, 내가 틀렸으면 수정하든지, 아니면 방관하든지 셋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늘 첫 번째였고 선택에 따른 책임도 고민도 많았다. 내가 맞는 말을 한 건지, 당당하고 확실한 지적이었는지는 모른다.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을 관찰해 봤다. 보통은 후자다. 너는 너 나는 나, 감정소모하지 않고 방관 혹은 방목한다. 나는 이게 왜 안될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신규 시절, 후배가 하나둘 생기며 자신만만하던 7~8급때, 그리고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지금 중 언제가 제일 어려웠는지 묻는다면 지금이다. 꼰대 선배와 일하는 것보다 내가 꼰대로 보이는 것이 더 두렵다. 부족함을 매일 느끼고 있다. 내가 그리던 리더의 모습은 나는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만히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진짜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인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것인지..
과장님 자리를 바라봤다. 아, 저 자리는 더 고독해 보인다.
지난주 국가직 9급 공채시험 감독을 가게 됐는데 중학교 1학년 교실 칠판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기억에 남는다.나의 장점 찾기. 내 탓만 하지 말고 오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노력해 보자. 애송이가 완벽하려고 하지 말자. 실수도 가끔 하겠지 팀장은 처음이니까, 자리에 무게 두지 말고 그냥 좋은 사람이 되자. 일하는 마음은 예전이나 다를 게 없다.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