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룸메이트이자 소울메이트이자 아들이란 역할을 맡고 있는 2013년생 홍순돌씨의 아침을 들여다본다.
2024년 11월 26일 7시, 룸메이트는 기상알람이 울리자 재빠르게 침대를 빠져나갔다. 난 더 자야한다. 살금살금 조용히 방문이 닫힌다. 아들의 온기가 거실로 옮겨가는 걸 느끼는 중에 방문이 닫히고 우리는 잠시 단절되었다. 그런데 문이 닫히자 정신은 명확해진다. 아니 뭐 하려고 문을 닫는 건데? 20분 뒤 겨우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아들을 원격으로 조정해 본다.'옷 입었어? 먹고 있는 거지? 씻었어? 로션 발랐어?'묻고는 원격조정이 잘 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시간이 없으므로 아들을 믿기로 한다. 아침을 재빠르게 차리던엄마는 누나와 재빠르게 엘베를 잡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차시동을 걸면서도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산챙기기, 밥먹고 치우기, 겨울외투 입고가기, 로션 꼭 바르기 등등 당부사항을 전달했다.집에는 아들 혼자다. 워킹맘 아들이 워킹맘 아들인게 티나지 않기를 늘 바란다.
아들
혼자다. 안마 의자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충전 중인 핸드폰으로 fc풋볼게임 한탕하고나니 8시 20분이다. 큰일 났네 또 지각이다. 엄마가 차리고 간 아침밥은 다 식었고 빵이나 먹고 가야겠다. 카스테라 빵 한입, 우유 한 모금 마시니 부드럽고 달콤하다. 시간이 없으니 컵에 따르고 남은 우유팩은 그대로 식탁에 올려두기로 한다. 이제 옷을 입어볼까? 남자는 블랙이지. 탑텐 1+1으로 엄마가 사준 검정 맨투맨과 검정 바지를 입는다. 비 온다고 우산 꼭 챙기라고 하셨는데 대충 보니까 저 정도면 맞아도 될 것 같다. 우산은 사치다. 들고 가기 귀찮기도 하고 학교에 있는 양심우산 쓰면 된다.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거 아닌가? 후리스를 걸치고 책가방을 등뒤에 찰싹 메고 어제 신고 온 실내화에 발을 구겨넣었다. 운동화는 실내화 가방에 가지고 다니면 된다. 거울을 보니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신발은 이미 신었는데 어떡하지 벗기 귀찮은데! 가방 메고 신발 신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가 빗에 물을 묻혀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그런대로 아까보다는 미남이 된 것 같다. 늦었다. 빨리 나가자.
엄마
비가 와서 누나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회사에는 1시간 연차를 쓰기로 했다. 누나를 데려다주고 놓고온 탭을 가지러 다시 집에 들렀다. 지하주차장에 들어서자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아들 잘 다녀와' 하고 배웅해 본 적이 거의 없으므로 오늘은 기회다. 책가방 메고 아이들 틈에서 터벅터벅 나오는 아들의 걸음을 기다려본다. 5분, 10분이 넘고 아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 오늘은 일찍 갔나 보구나.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내 아들인걸 알았죠
2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들얼굴이 파워포인트 페이드효과처럼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점점 드러난다. 네가 왜 여기에 이시간에. 그런데 이상하다. 얼굴이 때꼰한게 씻은 얼굴이 아니다. 차마 치석확인은 못하겠다. 예전엔 했었다. 참기로하고 한마디 던진다.
"학교 갈 필요 없어. 들어가"
혼나고 또 혼나고 울고 씻고 밥먹고 8시 50분이 되서야 학교에 도착한 아들. 선생님께 연락오면 뭐라고 해야할지 난감했는데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그라데이션 분노를 팡팡 터트리고 출근하니 정신이 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