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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들 Dec 08. 2024

엄마, 이사 안가면 안돼?

아들의 향수(鄕愁)가 심각하다.

아들의 향수(鄕愁)



새 집, 다시 나의 고향으로 가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거실 반까지 들어와 화사한 주말 아침이다. 새 집에서 맞는 아침의 공기가 행복하고 따뜻하다. 세탁기에서 한 품에 가득 안고 온 빨래를 바닥에 던져놓고 하나씩 툭툭 털어 건조대에 널었다. 두 칸 걸러 하나씩 널려있는 아들의 맨투맨들도 따뜻한 햇볕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하다. 

 거실 바닥에 베란다 울타리 그림자가 진하게 그려졌고 그 울타리에 순돌이가(둘째, 11세) 대짜로 누워있다. 이사 온 뒤로 밖을 나가지 않는 아들은 책을 보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누나와 놀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군민에서 시민으로


 이사 전 살았던 곳은 우리 부부의 회사가 있고 시댁도 있는 작은 읍내인데 길 가다 뒷 차가 쿵 박혀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고 소문도 빠른 곳이다. 답답할 수 있는 곳에서 일과 육아로 지루할 틈 없이 13년을 보냈다. 아파트 같은 라인에 직원이 다섯 집이나 있었는데 오가며 인사하는 게 전부였지만 기분상 직장과 집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직장이 5분 거리인 탓에 워킹맘이지만 일과 동시에 육아에도 전념할 수 있었고 어렵지는 않았다. 야근해야 하는 날은 아이 둘을 데려와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색칠공부를 하게 해 주었고 그림 그리는 게 지겨운 날에는 아이 둘이서 바퀴 달린 의자로 잡기놀이를 하며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게 했다. 회식하고 늦게 오는 날은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을 케어해 주셨다. 육아시절을 되돌아보니 그런대로 잘 지냈나 싶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휘발된 것 같기도 하다. 유아기와 초등 저학년 시기까지 13년을 채우고 이사 간 곳에서는 자칭 신도시 워킹맘이 되었다. 택지개발지구로 오니 젊은 엄마들도 많고 거리도 깨끗하다.

 신도시 워킹맘은 매일 퇴근하면서 반찬주문을 한다. 반찬가게를 고를 수 있어서 참 좋다. 이렇게 나는 고향을 찾았고 아들은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출처 @pixabay




아들의 공허한 마음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되어간다. 아이는 한동안 새 집의 설렘을 만끽하는 듯하더니 거실창 너머 밖을 자주 바라본다. 이사오기 전 아이는 좋으면서도 아쉬운 기분을 살짝 내비쳤었다.


 - 엄마 나 이제 어디서 물놀이해?

 - 이사 가면 수영장도 많고 3학년이 10반이나 있데, 친구도 금방 사귈 수 있을 거야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지만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는 못했다. 아이가 말하는 물놀이는 수영복을 입고 튜브 타는 것이 아니었는데. 알면서도 아이가 이해해 주길 바랐다. 여름이면 놀이터에서 땀나게 놀다 아파트 근처 하천에서 형들과 해질 때까지 물놀이를 하고, 몸에 딱 달라붙은 젖은 옷을 쥐어짜며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어느 날은 형들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읍내까지 나와 방방을 타러 가기도 했는데 노는 게 젤 좋은 신난 초딩이는 놀이터에 나가면 언제든 놀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놀 것이 천지였던 곳을 떠나려니 얼마나 아쉬웠을까. 이사 날짜를 세며 나름 설레 보이기도 했는데 아쉬움을 외면하려고 현실과 타협했던 게 아닐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


 집 계약 후 미리 정해놓은 축구 교실을 이사 간 첫 주부터 다니게 되었는데 축구하면서 단지 내 축구장에서 노는 무리들이 생겨 몇 달은 걱정을 덜게 됐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왜 때문인지 축구가 싫어졌다며 어느 날부턴가 야구가 좋다고 거실에서 양말을 돌돌감아 투구 연습을 땀이 나도록 했다. 좋아하는 것이 생겨 다행인데 그래도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의 일상이 이토록 단조로울 수 있나, 학교와 집 중간에 영어학원 가는 것 말고는 나가는 일이 없다. 큰아이(파워인싸)가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거나 놀이동산을 가거나 놀러 나갈 때에는 집에 남겨진 둘째를 더 많이 안아주게 된다.


  

2021년 6월 냇가에서



명절에 다시 찾은 아들의 고향

 

 남편의 고향이자 아이들의 고향인 이곳은 나에게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 출퇴근으로 가는 것 말고는 이사 후에 아이와 따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사 후 첫 명절을 이사 간 집에서 집들이와 함께 지내게 됐고 아이는 그렇게 이사한 지 1년 만에 예전집에 가게 됐다. 누구라도 놀러 나온 아이가 있길 바라며 아이와 명절상을 먹고 산책 겸 살던 아파트 놀이터에 갔다. 시댁에서 우리가 살던 아파트까지는 걸어서 15분, 가는 길에 물놀이하던 냇가를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아차 싶었던 게 지난겨울 우리가 이사할 때쯤부터 몇 개월간 하천 제방공사 중이었던 게 기억났다. 아, 오지 말걸.



이제 추억으로만



 다 바뀌어있었다. 아이는 우와 우와 냇가가 좋아졌다며 연신 신기한 표정이었지만 새로 만든 다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나 보다. 오래 걸릴 것 같으니 엄마는 먼저 할머니댁에 가있으라며 놀이터와 관리사무소 뒤 언덕, 우리가 살던 106동 7층, 경찰놀이할 때 숨었던 지하주차장 계단, 아파트상가에 있는 편의점까지 시찰하듯 둘러보았다. 가는척하며 차를 가지고 다시 아파트로 와 아이를 찾았는데, 아파트 맨 끝동에 있는 들고양이가 모여있는 곳에 쭈그려 앉아 야옹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다. 108동 아주머니가 고양이 집을 여러 개 만들어놓고 간식도 주었던 곳이라고 했다.

 아파트에서 나와 읍내를 둘러보면서 아이들은 한 명도 보지 못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방 타는 곳도 찾았는데 위치상 방방이 있어야 할 곳에 우리 과장님 자취방이 있다. 주변을 빙빙 돌아도 안 보여서 지나가는 중딩이에게 물었더니 원룸이 그 자리가 맞다고 한다. 이렇게 빨리 원룸을 짓는다고?  2차 좌절을 하고 어머니댁으로 가는 길에 학교 운동장을 지났다. 혹시나 하는 맘에 울타리 틈으로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에 집중했다. 어? 아이들이 여기 다 모여있네? 태성이, 상정이, 우진이호준이 쌍둥이형아들, 아이들 이름은 안 잊어버린다. 아이들도 이제 고학년이라 놀이터보다 학교 운동장에서 공차며 노는가 보다. 아, 이제 됐다. 아이들 만나고 가면 이번 명절은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하며 차를 세웠다.


 - 순돌아 내리자!


 꿈쩍을 안 한다. 오랜만이라 쑥스럽고 떨리는 마음일 테지. 운동장 가면 엄마가 먼저 불러줄 테니 인사하고 놀다 오라고 타이르는데도 끝내 못 내리겠다고 울기까지 한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인데, 방금 전까지 눈 크게 뜨고 찾았던 형아들인데 아이는 갑자기 벽을 만났다. 속상한 엄마는 몇 번을 타이르다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형아들에게 다가가니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한다.


 - 순돌이도 같이 왔어


 몇몇은 반가워하지만 축구하던 중이라 정신없다. 몇 분 지나 아이와 얼마 전까지 연락했던 쌍둥이 형아가 다가왔다. 아들도 같이 왔다고 알려줬지만 형아들이 다가오자 창문을 올리고 내리지 못한다. 엄마가 왜 이리 오버를 하는지 더 숨고 싶다. 그렇게 만남은 가지질 못했고 엄마는 차에 타자마자 아들의 원망을 들었다.


- 미안해 아들!


아들의 시간과 형아들의 시간은 각자 다른 곳에서 흘렀다. 추억의 힘으로 더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




전학 가는 날






 이사한 지 3년, 올해 여름 드디어 형아들과 다시 만났다. 형아들은 중학생이 되었고 중저음 목소리와 큰 키가 낯설었지만 웃음소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형아들 앞에서 예전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쫓아다 다니는 아들을 보니 묵혔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이사 이후 3년 동안, 아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성장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품고 있었다. 형아들과 웃으며 뛰노는 아들을 보니 그동안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무언가를 다시 찾은 듯했다. 마치 아들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묵었던 시간이 풀려나는 것 같았다.

 순돌이가 축구를 하다가 잠시 뛰어와 말했다.


- 엄마, 나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아.


 아들의 발걸음이 더 가볍고 당당해 보였다. 장소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소중한 순간과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과거의 소중한 순간들은 늘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 같다.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마음의 자리, 그것이 사람들일 수도, 장소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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