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했던 하루의 기록
몸살감기 잔뜩 걸린 남편은 아침 눈뜨자마자 병원행이다. 영화시간은 10:20분이고 롯데시네마 무지싸다구 이벤트로 2천원에 예매할 수 있었다. 이벤트 아니었으면 영화 보는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이런 내가 영화 마니아인 남편을 위해 모처럼 주말 아침시간을 내주었다. 10시면 나가야 하는데 아직 진료대기 중인 남편의 톡을 보고 천천히 준비하다가, 갑자기 약국이라는 전화에 허겁지겁 머리 감고 옷을 입고 엘베를 잡았지만 10:20분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탓이다. 남편이 화났다. 변명도 필요 없고 미안하다고 했다. 10:30분 영화관에 도착하고 주차하는 동안 아들과 차에서 먼저 내려 급한 대로 팝콘 작은 사이즈와 제로콜라 한 개를 주문했다. 주말 아침, 가족 영화라니 얼마나 오랜만인가. 남편은 감기에 걸렸고, 나는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들은 살짝 들뜬 것 같다. 제로콜라에 빨대를 꽂고 기다리는 동안 남편이 주차를 하고 내려왔고 콜라를 들고있는 내게 시비를 건다.
- 이게 다야?
- .....?
- 이게 다냐고
- ......?
-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본인 콜라를 주문한다)
- 콜라 먹는다고 나한테 얘기했어? 그렇게 인상 쓰면서 얘기해야 해?
- 나한테 물어봤어?
- ...... 급하게 차에서 내려서 물어볼 시간이 있어? 대충 산 건데 같이 먹으면 되잖아
- 감기 걸렸는데 같이 먹으라고?
- (아 어쩌라고요..) 아이씨. 그럼 사 갖고 와 우리 먼저 갈게
- (남편이 쫓아온다. 언성이 높아졌다.) 아이씨? 나한테 물어봤어? 늦게나온게 누군데?
와 미칠 것 같다. 영화관에서 싸우자는 건가? 그것도 애 앞에서? 언성 높이면서 쫓아올 정도로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늦은건 잘못했어 근데 지금은 콜라때문이잖아? 이제 시선이 느껴진다. 안절부절못하는 아들과 키오스크에 줄서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의식한다. 창피하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아들이다. 아들 앞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화가 치밀어 집으로 가려다가 이게 맞는 행동인가 싶다. 예매표가 폰에 있는 게 생각났고 입장하려면 내가 가야하므로 발길을 돌려 영화관 가는 엘베에 탔다. 어수선한 세 명은 좌석배치도를 보며 G7, G8, G9를 찾았고 어둠 속을 헤매다가 제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10시 40분이다. 화난 감정 정리할 시간도 없이 영화에 집중해야 했다. 앞을 보지 않을 수도 없다. 팝콘을 먹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힐끔 보다가 다시 스크린을 바라본다. 화면 속 가족들이 웃을 때마다 나는 관객이 되어야 할지 아까 전쟁을 치르던 전사가 되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남편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아들의 옆모습이 보인다. 팝콘을 쥔 작은 손,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그 영화를 강제로 봐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다. 분노와 팝콘 냄새 사이에서 내 감정은 오갈 데 없이 길을 잃었고 커다란 스크린에 앞에서 결국 사라진다.
'그래, 영화나 제대로 보자.'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동생을 업고 있다.
영화 중반부가 되어서야 영화와 팝콘에 완전히 집중했다. 그 와중에 아들이 모를 것 같은 내용은 굳이 귓속말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정자기증이라든지.. 정액제출이라든지..
"아들, 저 사람은 517번이나 정자 기증을 했대. 그런데 힘들어서 몰래 다른 사람 정자를 줬다는 거야. 사유리 알지? 그 사람도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았거든." 아들이 잠시 스크린을 보더니 끄덕인다.
방금 전까지 화냈던 사람이라 웃긴 장면에서 제대로 웃을 수 없었지만, 점차 체면을 버리고 나를 찾아갔다. 아들도 웃길 바라면서 소리 내어 웃었더니 이제 이야기가 슬퍼지려고 한다.
- 이순재 대사 中 -
"부모라는 우주"
스크린에서 흘러나온 말 한마디가 가슴을 퍽 치고 지나갔다. 내가 아들의 우주라면, 지금까지 나는 어떤 우주였을까? 따뜻한 태양처럼 항상 빛을 주는 존재였을까? 아니면 폭풍과 어둠이 가득한 불안정한 우주였을까?
아들에게 부모는 전부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과 보호, 안정과 희망을 제공하는 존재. 그런데 바로 몇 시간 전 그 아이의 앞에서 남편과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우주가 흔들리고 별들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여준 건 아닐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내가 아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어떤 우주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 대사였다. 아이들 앞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일때면 뒤늦게 평정심을 찾고 늘 이런 반성을 한다. 늘 그렇다.
앤딩크래딧이 올라가고 주변에 환해졌다. 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앤딩크래딧이 올라가면서 주변이 환해지는 그 시간이 되게 어색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더구나 영화관 오기 전 사건이 있었던 오늘 같은 날에는 더욱 그렇다. 주변이 환해졌는데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영화 보기 전으로 돌아가긴 싫다. 철판을 깔고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재밌었어?" 아들은 옆은 미소로 답했다.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듯 아빠도 같은 질문을 했다. 아들과 남편이 나란히 허리를 감싸고 차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아들에게는 미안함이, 남편에게는 옅게 분노가 아직 남아있었지만 금세 배고픔으로 전락했다. 남편은 맛있는 거 먹자며 아들의 기분을 살폈다. 우리는 봉용불고기로 향했다. 고기를 굽고 셀프볶음밥을 주문했다. 남편이 김치와 파절이를 잘게 잘라 밥위에 얹었고 나는 주걱 두개로 김치 양념과 밥을 볶았다. 참기름을 두르고 한번 더 볶다가 남편은 간을 보더니 맛있다고 내 입에 볶음밥을 구겨넣는다. 맛있다. 그리고 모르겠다. 왜 그랬냐고 따질 기운도 없고 이유도 잊었다.
남편과 가끔 싸울때면 아이들이 상처받을 까봐 조마조마하다. 왜 갈등이 생겼는지 아이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물론 평점심을 찾았을때 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갈등의 시작부터 아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설명이 필요없었다. 감정의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갈등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른의 방법으로 해결해야하는데 분노라는게 어디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던가. 반성문이 되어가는 이 글을 곱씹으며 아이의 우주를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