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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흰돌 Nov 27. 2023

누구에게나 첫인상은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을 처음 품에 안은 날



  우리 아이들을 처음으로 품에 안은 날을 기억한다.


  제왕절개 3일 차가 되던 날이었다. 시간에 맞춰 수유실로 내려가면 아이에게 모유를 물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시원찮은 몸을 끌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시간이 되자 우리 집 거실의 두 배 정도 되는 공간에 병원에서 지급되는 환자복을 입은 산모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산모의 이름과 손목에 묶인 띠를 확인하여 신생아실에 있는 아이를 데려다가 안겨 주셨다.


  나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침을 삼키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먼저 내 품에 안긴 건 첫째 소망이가 아닌 둘째 희망이였다. 첫 아이가 지금 막 잠에 들었다며 간호사 선생님께서 둘째를 먼저 데려와주신 것이었다.


  배경 음악으로 브람스의 자장가가 무한 반복되는 공간에서, 나는 분내가 풀풀 풍기는 아이를 어찌 안아야 할 지조차 몰라 허둥거렸다. 초보 엄마를 위해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편안하게 안는 법부터 시작하여 젖을 물리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첫애이기도 하고, 젖이 늦게 나오기도 해서, 나는 거의 임신 7일 차가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린 날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빈 젖이었는데, 희망이 역시 빈 젖을 빠는 일에 금방 흥미를 잃고 내 품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나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잡아주신 '신생아 안는 자세'를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며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누구를 닮았는지 같은 건 떠올릴 여력도 없었다. 아이는 그저 작고, 작고, 또 작았다. 내가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러질 것처럼 작고 연약한 생명체였다.






  희망이를 신생아실로 돌려보낸 다음에는 소망이가 나왔다. 방금 자고 일어난 탓인지 소망이는 눈을 훨씬 더 크고 또랑또랑하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빈 젖을 쪽쪽쪽 열심히 빨아댔다. 워낙 맛있게 젖을 먹고 있어 순간 나도 '젖이 나오기 시작했나?'라고 의심할 정도였다.


  다음 날도 나는 오전과 오후 시간에 맞춰 수유실에 방문해 서툰 몸짓으로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흉내를 냈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희망이는 젖을 조금 빠는 듯하다가 잠들기 일쑤였고 소망이는 젖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악착같이 빈 젖을 물었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준 채로 부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 보았다면 그 모습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면접장에서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응시생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c)2023. delight.H(https://www.instagram.com/delight.hee/). All rights reserved.




  아이를 다시 낳는다면 그때는, 처음 만난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가 생길까?


  모르겠다. 긴장으로 가득했던 초보엄마였던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의 기억이라고 하면 아이들의 얼굴보다도,


  반복되어 재생되던 브람스의 자장가,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훅 끼치던 분내, 놓치면 날아갈 것처럼 여겨지던 지나치게 가벼운 질량, 허벅지에 올려놓았던 수유 쿠션의 폭신함 같은 것만 떠오른다. 왜인지 약간은 울 것 같은 기분까지도.



  어쩌면 그것은 작지만 분명한 '기적'을 체험한 자와 유사한 기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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