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들의 신생아 시절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과거의 기억이 증발해 버린 탓이다.
그럼에도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분들이 있으니, 바로 산후도우미 분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산후조리원에서의 생활이 불편했다. 밥과 간식이 때마다 나오는 데다가 신생아를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몸 회복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심적으로 편안하지가 않았다. 낯선 건물에 낯선 사람들, '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안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는 아이들까지도. 출산 후 혼란스러운 감정이 갈무리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산후조리원으로부터 퇴소한 날, 준비했던 아기 침대에 우리 아이들을 나란히 눕히고 나서야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와 함께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였다는 실감이 났다.
나는 처음에는 정부 지원을 얼마간 받아 산후도우미 분을 4주간 고용했고, 이후에는 100% 자비로 다른 업체에서 또 다른 산후도우미 분을 4주 고용했다.
두 분 다 아주 좋은 분이셨는데, 성향이나 스타일은 몹시 달랐다.
처음 오신 산후도우미 분께서는 오십 대 중반의 여성분이셨다. 결혼 후 내내 가정주부로 사시다가 첫 아이와 둘째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이 일을 시작하셨다고 하셨다.
이 분은 깜짝 놀랄 정도로 요리를 빠르게 잘하셨다. 매일 새 국과 새 반찬이 아니면 밥을 먹지 않는다는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매일 저녁 한 상을 차리는 것이 몸에 배셨다고 하셨다.
정작 가족들은 엄마의 이러한 능력이 익숙해서 무슨 반찬을 해도 감흥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엄마가 매일 이런 음식을 해 주었다면 어렸을 때의 몸무게가 지금보다 10kg은 족히 더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임신성 당뇨로 의도치 않은 금식 기간을 거쳤던 나는 먹고 싶은 게 잔뜩 쌓여있었고, 내가 메뉴를 주문하면 남편이 재료를 구입하고, 산후도우미 분께서 요리를 해 주시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모유 수유 중이라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내게 궁중떡볶이는 환상 그 자체였다...
아이는 눕혀서 재워야 한다는 철칙 하에 애들을 되도록이면 아기 침대에 눕혀 재우려고 하셨고, 그래서인지 첫째 소망이를 아주 예뻐하셨다.
(소망이는 졸릴 때 안겨 있으면 눕혀달라고 성을 내는 아이였다. 지금도 잘 때 옆에 사람이 붙어있으면 멀찍이 굴러서 벽에 붙어서 잔다.)
다음으로 오신 산후도우미 분께서는 일흔에 가까운 할머니셨다. 다만 젊은 나이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각종 일을 해 오신 데다가 체력도 좋으셔서 아이 하나를 업고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시는 둥 굉장히 부지런하셨다.
이분께서는 아이를 업어서 재우는 걸 선호하셨다. 그래서 품에 안기면 몸부림치며 징징거리는 소망이보다는 안기만 하면 잘 잠드는 희망이를 더 예뻐하셨다.
(희망이는 사람의 체온이 있어야만 잠드는 아이였다. 지금도 희망이는 밤마다 내 배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아이를 재울 때는 "우리 00이, 잘 잔다~ 우리 00이, 코 잔다~"라며 반복되는 멜로디를 읊조리며 몸을 흔드셨는데 희망이의 이름은 정확하게 부르신 데 반해 소망이의 이름은 그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은 "우리 진호 잘 잔다~"라며 소망이의 이름이 진호가 되어있을 때도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우리 규호 잘 잔다~"라며 규호가 되는 날도 있었다. 나는 두어 번 소망이의 이름을 말씀드렸으나 그럼에도 진호, 규호, 준호, 정호 등... 소망이의 이름을 제외한 '호'자로 끝나는 각종 이름들이 나오는 것을 듣고는 말씀드리기를 포기했다.
뭐, 어린아이에게 진호든 규호든 준호든 뭐가 대수랴. 어차피 소망이는 산후도우미 분의 품에서 잠들다가 졸리면 성을 내어 침대에 눕혀지는 게 일상이었으니 더더욱 상관이 없었을 테다.
우리 집에 오셨던 도우미 두 분은 모두 다 성실하셨고, 몹시도 부지런하셨다. 산후도우미 일이 그렇지만 특히나 쌍둥이 산후도우미라는 건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다. 끊임없이 분유를 타고 젖병을 닦고 아이를 재우고 아이를 먹이는 둥 쉴 틈이란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나마 틈이라고 할 만한 시간은 나란히 아이들을 한 명씩 먹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자녀에 대해, 그간 돌봐왔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가 참 듣기 좋았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내게, 도란도란 흘러나오는 삶의 혼적들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외로움이 파고 들 틈이 없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