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키우면서 듣는 말들
드디어 열여덟 번의 이야기 끝에 본 브런치북의 제목에 다다랐다.
쌍둥이의 임신과 출산을 다룬 이 이야기에 해당 제목이 붙은 연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현재 아이들이 많은 신도시에서 살고 있다. 하원 시간이 가까워지면 아파트 정문 앞은 각종 노란색 버스들로 넘쳐나고, 우리 집 맞은편에 있는 초등학교는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학급수를 자랑하는 과밀 학급이다.
아이들이 많은 만큼 쌍둥이를 보는 일도 종종 있다. 쌍둥이 유모차를 타고 있어서 눈에 띄는 어린 쌍둥이부터, 같은 옷을 나란히 입은 초등학생 쌍둥이들까지,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도 그냥 아이구나, 또 아이구나, 하고 넘어간다.
반면 구도심에 나갈 때면, 가끔이긴 해도 우리 아이들이 사람들의 관심 아닌 관심을 모을 때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쌍둥이예요?"이다. "네."라고 대답하면 보통 "정말 귀엽네요." 혹은 "키우기 정말 힘드셨겠어요." 둘 중 하나의 대답이 돌아온다. 전자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 많고 후자의 경우는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아주머니나 최근 손주를 보고 계신 할머니가 많다.
어느 쪽이 되었든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심은 부담스럽지 않다. 식당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의 식기와 반찬 같은 것을 말씀드리지 않아도 미리 챙겨주시는 때가 많아 감사할 나름이다.
그러나 세상 일 대부분이 그러하듯, 아이들에게 가져주는 모든 관심이 기꺼운 것은 아니다.
쌍둥이 부모들이 모여있는 카페에는 '쌍둥이인 걸 보니 시술한 모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글이 가끔씩 올라오는데, 나 역시 그런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봤다.
병원 가서 시술하면 쌍둥이가 많이 생긴다면서요.
얘네도 병원에서 얻었어요?
난임 기간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아이는 병원에 간다고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혹자는 시험관 시술 같은 것을 무슨, 임신의 어려움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미래의 기술로 아는 이들도 있으나 결국 아이란 현대 의학의 기술만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난임 병원을 '졸업'한 기쁨을 아는 나는 이 아이들을 갖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그랬기에 누군가 시술을 했냐 물으면 기꺼이 그렇다고, 당당하게 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 나 역시도 말문이 막힌 적이 있었다. 여느 쇼핑몰의 엘리베이터였을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아줌마가 유모차에 탄 우리 아이들을 쓱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얘네, 자연산이에요?
다짜고짜 건네진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연산이라니. 그곳은 수산 시장이 아니었으며 우리 아이들이 매대에 나온 물품은 더더욱 아니었다.
요새 쌍둥이들 다 인공으로 만들잖아.
우리 아이들을 무슨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처럼 대하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임신과 출산을 한 번에 끝내려고, 쌍둥이를 가지기 위해 병원에 간다는 얘기까지 나오자 정신이 다 아득했다.
하지만 무식한 사람과는 싸워봐야 손해였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나는 아이들의 출생을 가지고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자연 임신으로 얻은 쌍둥이예요.
아줌마는 그제야, 그렇다면 신기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내려야 할 층에 내려서 걸어갔다.
그리고 내 가슴을 비수처럼 찌른 말에 대해서 오래간 생각 했다.
나에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것이 편견에 갇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멋대로 재단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