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하겠지만 나는 못 한다는 점이
누군가 내게 쌍둥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기 전날부터 대략 백일의 나날이라고 대답하겠다.
신생아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몰랐던 겁도 없고 아는 것도 없던 초보 엄마인 나는, 쌍둥이 신생아 육아도 어떻게든 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쌍둥이를 낳은 다른 부부들도 그 시기를 넘겨냈으니 나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는 오래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정확히는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기 전날부터 예견된 바였다.
소망이와 희망이의 산후조리원 퇴소일은 일요일이었다. 보통 신생아들은 산후조리원 퇴소일에 예방 접종을 하고 나가게 되는데, 우리 아이들은 퇴소일이 일요일인지라 그날 예방 접종을 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부부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놓였다.
일요일에 퇴소한 뒤 다음 날에 집 근처에 있는 소아과에 가서 접종을 하거나,
토요일 오후에 미리 예방접종을 한 뒤 조리원 내 방에서 하룻밤 동안 부부가 아이를 돌보고 나가거나. (예방접종을 하고는 신생아실에 다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내 방에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후자를 골랐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따로 병원을 가느니 토요일 밤에 아이들을 데리고 자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분유와 기저귀가 꼬박꼬박 나오는 산후조리원에서 하룻밤 아이들을 데리고 자는 경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결과, 그날 밤 남편과 나는 단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아이들은 밤새 번갈아 깼고 번갈아 먹어야 했다. 한 아이가 잠들면 다른 아이가 애앵 하고 울었다. 새벽녘이 되어서는 방금 우유를 먹인 아이가 소망인지, 희망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조리원 퇴소 후 매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우유를 먹이고 잠을 재웠다.
누군가에게 전에 들었듯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쁜 날들이었다. 일종의 비유인 줄 알았던 그 말은 한 치의 과장도 없는 현실이었다.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 잠잘 시간. 즉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자 극도로 피폐해졌다.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는 것은 예사였으며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혀버린 듯했다.
새벽녘, 나는 아이 둘을 번갈아 먹이며 캄캄한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세상에는 철인삼종경기를 뛰는 사람도 있지.
마라톤을 완주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나는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쌍둥이를 키우니, 나도 어떻게든 키우리라는 생각이란 다른 사람들도 철인삼종경기를 뛰니 나도 어떻게든 완주하리라는 생각과 같았다. 나는 오십 미터만 달려도 헉헉거리는 인간인데 말이다.
뒤늦게야 내 어리석음에 깊이 한탄했지만, 애석하게도 이 경주에 '기권'이란 없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물에 빠져도 다시 일어나 버텨야 했다. 원래의 나라면 절대 못한다고 도망갔을 일을, 골골 앓아가며 도맡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