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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겔다 Mar 18. 2024

7. 이혼서류를 작성하다

협의이혼절차.     

인터넷 검색을 해서 절차를 알아보았다.      

서류부터 작성을 해야 한다.      

서류가 참 간단하다.      

15년 결혼생활의 마침표를 찍어줄 서류인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작성이 완료되었다.      

문자로 이혼을 요구했을 때 재산분할 양육비 등을 대충 얘기하니 알아서 하란다.      

대충 알아서 기입을 하고 사인을 했다.      

         

어쩌면 난 이번에도 사과해 주길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잘못했다고 앞으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확신에 찬 제안을 해주길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침묵으로 일관한다.     

          

우린 대화가 많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퍼붓고 그는 회피하고.     

내가 내 감정 내 상처를 분노에 담아 모진 말을 내뱉어도 반응이 없다.     

언제나 무심한 듯 간결하게 '미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상처를 받고 있는지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냉전이 시작되었을 때 남편은 한 번도 먼저 대화요청을 한 적이 없다.     

언제나 답답한 것을 못 견디고 성격 급한 내가 대화 요청을 하고 퍼붓듯 한탄을 하고 난 다음에 그의 건조한 사과가 이어졌었다.     

           

사실 이혼서류를 작성해 놓고 남편이 써야 하는 부분을 작성하라고 서류를 내밀 때 대화라는 걸 해볼까도 생각했었고      

마침 그가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 오고 아이들은 학원을 가고      

집에 단둘이 남을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마저 그는 골프연습장에 가버렸다.      

아마도 둘만 남아 있는 상황을 회피하거나 대화를 하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그럼 나도 이제 더 이상은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지.      

어쩌면 이번엔 남편도 이혼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궁금했었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대화보단 침묵을 선택하는 그였기에 그 침묵 저편에 있는 그의 속 마음이 너무나도 궁금했었다. 

어느 날은 애들을 재워놓고 거실에 나가 조용히 물어보기도 했었는데 

그의 답은 항상 간결했다. 

미안해. 내입장은 이러저러해.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라는 답..

한번도 '미안해'라는 말 뒤에 네가 이러저러해서 실망했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내 입장에서 생각해 준 적이 없었다. 

미안해라는 말 뒤엔 언제나 변명과 자긴 최선을 다 했다는 당당함만 있을 뿐이다. 





이혼서류를 내민 지 며칠이 흘렀다.     

아직도 그는 자신의 분량을 작성하지 않고 있다.      

냉전이 이어지고 있고, 문자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만 서류 작성을 마무리해 달라는 내 요구는 무시하고 있다.      

여전히 혼자 밤에 티브이 보며 술을 마시고, 주말 아침엔 골프를 치러 간다.


난 매 순간 이것이 그와 마지막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마지막 설을 보냈고, 마지막 국수를 해 먹었고, 마지막 지인 모임을 가졌었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설명절과 국수와 지인 모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의미를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것이다.      

또 흔들려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또 실망하고 또 분노하고 또 슬퍼하지 않으리라      

이번엔 이 지긋지긋한 도돌이표를 마침표로 꼭 바꾸겠노라 하는 내 자신의 의지를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이제 슬쩍 내 눈치를 보기도 하고      

자신의 상사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문자로 얘기해 준다.      

이쯤 되면 내가 화가 풀렸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진지한 대화를 할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또 시간이 좀 지났으니 지금껏 그래왔듯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그의 속내가 보이는 듯하다.     


그런 얼렁 뚱땅이 싫다.     

서로 안 맞는 부분은 맞춰가고 변화해 갈려고 노력을 해야 백년해로가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상대가 극도로 싫어하는 행동을 습관처럼 하고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있는 그가 한심스럽고 원망스럽다.         


이 어색하고 불편한 냉전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란 없는 것 같다.      

순간의 아픔을 감수하면 조금은 더 마음 편하고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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