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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겔다 Apr 01. 2024

11. 싸우자는 게 아니었어 난..

남편은 냉전 후 왜 그랬냐 묻는 나의 질문들이 싸우자는 의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서로 언성 높이며 싸우는 게 싫어서 피했다고 했다. 

나는 대화를 원했는데 그는 피하고 있었다. 

그가 피하는 동안 내 마음은 자꾸 지쳐가고 병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싸우자는 줄 알았다는 그 말이 내게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구든 편안함을 선호하지 싸우며 대립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누군가와 대립각을 세우면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을 쓴다. 

그런 내가 남편한테 싸움이나 거는 아내 취급을 받아온 게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한테 조금 긴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항상 내 감정과 내 마음을 당신에게 전달해서 공감을 얻고 위로받고 사과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싸우자는 게 아니라 대화하자는 거였고, 싸우자는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자는 거였다고..   

대화가 말다툼이 되더라도 서로 마음에 있는 얘기를 나누어서 서로의 입장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개선도 있는 거라 생각했었다고..


그 문자 메세지에도 답은 없었다. 

참 허무하기도 하고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많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대시하면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다. 

어느 한 시점의 사건을 계기로 서로 멀어진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조금씩 커져서 한 묶음이던 우리가 벽을 가운데 두고 등 돌린 모양새다. 

이렇게 되어버린 우리가 안타깝고 슬펐다. 


문자를 보내고 집에서도 우리 둘은 대면대면 했다.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남편도 늘 그렇듯 말이 없었다. 

그제서야 이제 정말 끝인가 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진 내가 조금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남편이 다시 손 내밀어주길.. 

내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며 대화를 시도했을 때 나에게 사과하며 다시 한번 잘해보자 말해주길.. 조금은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날 남편의 침묵은 우리 사이에 마침표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아..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설치고 다음날 출근을 해서 업무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난 독립된 업무실이 있는데 누군가 노크를 해서 문쪽을 바라보니 남편이 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무 놀래서 멍하니 바라보니 

남편이 다가와서는 커피 한잔을 내밀었다. 

그러곤 내 자리옆에 쭈그리고 앉아 내 손을 잡고는 정말 미안하다고.. 자기가 어리석었다고 했다. 

우리 이러지 말고 다시 노력하자..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하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남편은 나중에 집에서 다시 얘기하자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남편이 나가고 얼음 가득한 커피잔을 바라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과 어제의 침묵에 대한 원망스러움과 이혼 결심이 마구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한 원망도 밀려왔다. 


잠시 후 남편의 문자도 도착했다. 

나를 많이도 오해하고 있었다고.. 본인은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서 늘 나를 피해왔었다고 했다. 

나의 대화요청을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인 본인이 어리석었다고 

어제 밤새 고민해 보니 자기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나한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고..

그러니 이제 피하지 않고 대화하며 자기도 노력해 보겠다며 다시 시작해 보자는 문자였다. 

그 문자가 반갑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이혼보다는 노력을 통한 관계개선을 더 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장 이혼하겠다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다시 노력해 봐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노력이 수반된다면 이혼보단 노력을 통한 관계개선이 더 나은 선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는 내마음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혼을 결심했으면서도 실제론 여전히 이혼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 내 진심이 아니었을까..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에서 만나 서로 어색한 일상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자고 나서 둘이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바라던 대화의 순간이다. 

남편은 그동안 본인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다 털어놓았고 나도 내가 느낀 감정들을 쏟아내었다. 

둘 다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었고 크고 단단하게 느껴졌던 벽이 실은 얇은 종이 한 장처럼 순식간에 걷어낼 수 있는 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린 다시 손을 잡았고 다시 노력해 보자 결심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얘기하고 글로도 작성해 보았다. 각서 아닌 각서처럼 노력을 위한 다짐을 글로 적어놓았다. 

둘 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조금은 위태롭지만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고 이혼이라는 단어는 다시 묻어 두려고 한다. 


이혼 대신 노력을 택한 우리.

우리 둘은 다시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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