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방송중입니다.
두 달 전쯤 있었던 일이에요. 출근하는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어요. 기분이 조금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어요. 일을 하면서도 괜찮았다 아팠다 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화장실을 갔는데, 아랫배에서 갑자기 무언가 와르르 쏟아지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놀라고 무서웠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침착하자, 괜찮을 거야.’를 되뇌었어요. 꼭 괜찮아야 했어요. 아무 일이 아니길 바랐어요.
저는 임신 26주였거든요. 기적적으로 생긴 아이가 제 뱃속에 있었는데...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어요. 응급실에 걸어 들어오는 저를 보고 놀란 의료진들, 응급실에 갑자기 울리던 비상 벨소리, 여러 검사를 하며 분주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당장이라도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모든 것이 현실 같지 않았던 순간, 남편이 도착했어요. 상황 설명을 들은 남편은 저의 손을 꼭 잡으며, “참 쉽지 않다.” 했어요.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는데, 한 번의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쉽지 않은 임신으로 3년 동안 병원을 다녔어요. 인공수정도 하고 시험관 시술도 하고. 병원에서도 어려울 것 같다 했지만, 운이 좋게도 아이는 저희에게 왔어요. 그런 아이를 10개월을 채우지 못한 채, 응급실에 와 있다니요. 그 소중한 아이를.
수술 이후의 상황을 남편과 저는 열심히 들었어요. ‘비록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있겠지만,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좋은 예후도 많았고, 의료진들은 자신 있다. 다 괜찮아질 거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위험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그 말을 정말 믿고 싶었고,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수술 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점검을 위해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것저것을 체크하셨어요. 그때, 작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비교적 아이의 소리가 안정적인 것 같아요. 오늘 하룻밤을 넘겨 보는 게 어떨까요. 수축만 되지 않으면, 버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엄마 뱃속이 더 안정적이지 않겠어요.” “네? 수술 안 하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어요.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어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 상황을 최대한 유지시키기 위해 버텨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다음날. 밤사이 자궁 수축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이의 소리는 ‘콩 콩 콩’. 박자를 맞추듯 소리 내어 주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그렇게 두 달이 되었어요. 매일 밤 자궁 수축이 일어나 응급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불안했지만, 저는 꽤 잘 버텼고 저를 도와주는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이 계셔서 든든했어요. 물론 자궁수축억제제를 8번이나 맞았지만요.
이제 내일이면 아이를 볼 수 있어요. 더 이상 버티면 양수 하나 없는 뱃속 아이에게는 감염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요. 다른 아이들보다는 일찍 세상으로 나오지만, 그것에도 다 의미가 있겠죠.
제가 사연을 보낸 이유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중환자실에 있는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면회를 와 준 남편.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한결같이 말해주던 남편. 우리는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든든함을 보여준 남편. 오늘밤도 잘 넘길 거라고 안심을 주던 남편. 침대에 누워 꼼짝 못 하는 내가 지루할까 봐 이벤트를 해주던 남편. 고마움이 끝이 없네요.
남편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평생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일 만날 우리 아이를 큰 사랑으로 키우자.’ 고도 말하고 싶고요. 김동률의 ‘감사’ 신청합니다.
https://youtu.be/F9XtgD5vpfE?si=4n4UtSyTwhAbJH4o
<사진출처 : 픽사베이>
#슬초2 #브런치 #스머프 #엄마작가 #라디오 #대본 #사랑 #출산 #중환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