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이 Mar 19. 2024

퇴사 후 첫날

드디어 스벅으로 출근해 본다.

나도 스벅으로 출근을 했다. 노트북을 켜고,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시켰다. 그리고 창가에 앉았다. 중요한 포인트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 앉아야 한다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사람, 거리 구경을 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던 나다.


옛날이야기이긴 하지만, 유럽 미국 일본 대만 등 여기저기 여행할 때도 제일 많이 한 건 거리 구경이었다. 헐렁한 옷차림으로 그 동네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여는 카페에 갔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며 멍 때리곤 했다. 나이도 있어 보이는 동양 여자애가 매일 앉아 있는 게 신기했는지, 카페에 드나들던 할아버지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야. 십 년이 지나고도 지났다. 미친 듯이 여행에 돈을 다 써 버리고, 더 이상 혼자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결혼을 했다. (그때 내 눈앞에 짠 나타난 남편, 잘 걸렸지.)

그리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엄청난 스토리들을 만들어 내며 치열하다 싶을 정도로 살았던 것 같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공부를 위해 대학원을 갔고,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늦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선배나 동기들은 대부분 파트로 일을 했다.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정규직으로 취업을 했다. 주 5일 근무.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루 더 일을 했으니, 주 6일 근무였다. 손 많이 가는 초등학교 2학년을 둔 엄마이기도 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임까지 했으니, 보통 스케줄은 아니었다. 남편의 뒷바라지가 없으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면 더 할 수 있었겠지만,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표면적으로는 아이를 돌보겠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나의 일을 재미있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고민만 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뭐든 하고 싶다는 생각과 잘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마냥 좋다.


퇴사를 한다는 좋은 기분 탓이었을까. 그동안의 회사에 대한 불만도 그렇게 밉던 사람도 다 좋게 보였다. 언제부터 서로에 대해 챙겼다고, 없던 아쉬움까지 다 끌어와 인사를 나눴다. 갑자기 커피를 사 주겠다고 해서, 일주일 먹을 커피를 하루에 다 마셨다. 진작에 잘해주지. 신기한 건 오랜 공고에도 나타나지 않던 후임자가 나의 퇴사 당일에 나타난 것이다. 홀가분하게 인수인계까지 하고, 짐을 쌌다.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들도 인사하러 왔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니 눈물 날 것 같았다. 친했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눌 때는 서로 꼭 안아주며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했다.

마무리가 참 길구나. 하지만 의미 없는 만남과 아쉬움 없는 헤어짐은 없다는데... 이런 마음이 들 줄 알았으면, 나도 있을 때 잘할걸. 후회하지 않게. 생각보다 여기서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네.   


<사진출처 : 카카오톡 선물하기>



띵동!

OOO님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샘~ 퇴사 축하해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띵띵동!

여보, 그동안 애썼어. 입금했다~ 다른데 쓰지 말고 꼭 피부과 가서 등록해~


나의 퇴사가 무슨 큰 일이라고 이리도 많은 인사를 받을까. 다른 사람의 일을 기억해 주고 그에게 마음을 나눠주는 것이 쉽지 않은데, 고맙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때마침, 걸려온 전화.


띠링!

"선생님~ OOO인데요. O월 O일 강의 가능하세요?"

"네! 네!"


역시 받은 사랑은 돈으로 보답해야지. 자~ 이제 백수가 되었으니, 거리 구경은 적당히 하고~ 돈 벌 궁리를 하러 간다!...... 피부과 다녀온 다음에!!!


 


매거진의 이전글 오고야 말았다. 월요일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