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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Feb 08. 2024

운전을 잘했었는데요, 안 합니다.

 남자의 자동차는 오래된 세단이었다. 어머니가 새 차를 뽑으시면서 쓰시던 자동차를 물려받았고 기름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회사가 멀어서 꼭 운전해서 출근을 한다고 했다. 주로 남자가 퇴근하는 길에 만나서 데이트를 했기에 우리는 어디로 가든 검은색 세단과 함께였다.


 나는 남자가 운전을 하면서  맡겨달라는 듯 능숙하게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듬직했다. 남자의 머리에는 나에게 없는 한 가지가 분명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태생이 길치라 한 두 번 가본 장소도 다시 가보면 새롭다. 주된 생활 반경에서 벗어난 모든 길은 항상 도전이자 시험이다. 평생 지도 없이 운전하시는 아빠의 차를 탈 때는 명절 때마다 가던 지방 친가도 여행 떠나는 것처럼 그렇게 매번 새롭고 즐거웠던 기억이다.


 길치라는 건, 나에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어릴 때부터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나에게는 남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제1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있었다.


 반드시 머릿속에 맵(Map)을 장착하고 있을 것


 아무리 외모가 준수하고 혹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유머 감각을 비롯한 각종 센스를 뽐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길치라면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는 어딜 가든 모르는 길이 없어 보였다. 당시 면허증이 없었던 내가 느끼기엔 운전실력도 대단했고, 출발에서 도착까지 마치 미리 길을 검색하고 가는 것 마냥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그 머릿속의 맵이 너무도 든든했다. 처음 가보는 꼬불꼬불 골목 어딘가에 있는 음식점도 남자와 함께라면 아무런 걱정 없이 갈 수 있었다. 구닥다리 세단일지라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와 함께 드라이브를 떠날 줄 아는 멋진 남자였다.

     

 당시 어리바리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자동차를 모는 남자를 따라, 가 본 적 없는 시외곽으로 음식을 먹으러, 커피를 마시러 다녔고, 피곤한 그룹스터디가 끝나면 자동차와 함께 기다리는 남자를 만나 편안하게 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거침없는 주행, 부드러운 핸들링, 들춰볼 필요도 없는 생체 내비게이션. 아마도 한동안은 그런 모습에 푹 빠져서 달콤한 연애를 즐겼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남자의 길 찾기 능력을 생체 내비게이션이라고 과대평가한 건 나의 잘못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남편은 남성들의 평균치 그 어디쯤의 길 찾기 능력을 지닌 사람인 것 같다. 연애 시절엔 아마 본인이 가본 적 있거나 익숙한 장소를 데이트 장소로 선택했었겠지.


 요즘은 운전을 할 때, 남편은 웬만하면 내비게이션부터 켠다. 심지어 내비게이션 인터페이스 적응에도 매번 십분 이상을 소요해야 해서 내가 꼭 옆에서 내비게이션의 통역사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외출의 시작부터 잡음이 생기고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다툼이 되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난 이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매일 운전을 하던 남편은 이제 운전을 안 하려 한다. 그건 분명 나의 착각과는 무관한 이상현상이다.


 매일매일 자동차로 출근하던 남편은 결혼을 한 후 생활비 절감 차원이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남편은 점점 운전과 멀어지는 것 같이 보였다. 결혼 전 급하게 면허증만 취득했던 나는 면허만 있었지 운전연수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답답했던 나는 운전 연수를 신청해 혼자라도 차를 몰아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의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쉽게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초보시절이 꽤 길었던 나는 운전 전날만 되면 긴장감이 몰려와 잠을 설치기도 하고 남몰래 지도 따라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차에 시동걸 용기를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살던 빌라의 주차장 상황도 상당히 좁고 열악하여 집 주차장에서 나가려면 손과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머리가 아득해졌던 기억이다. 지금도 초행길은 너무 두렵다.


 확실히 남편은 운전을 싫어한다. 3주에 한 번 시댁에 가면 어머님은 사랑이 담긴 먹거리와 손자들 주려고 조금씩 사둔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신다. 시댁에서 오는 길은 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가끔 남편은 시댁 갈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한다. 시댁에 자동차로 가면 20분이면 갈 거리를 대중교통에서 40분 넘게 허비하며 초등학생 아이들 손 잡고 무거운 짐에 치이며 그렇게 다녀올 필요가 있을까?      




 검은색 세단의 그 멋진 남자는 추억으로 박재되었다. 나는 아직 길치인데 남편은 이제 운전이 싫다고 한다. 나는 영원히 길치지만 자동차로 가고 싶은 길이 많고, 자동차를 타면 펼쳐지는 늘 새로웠던 나만의 여행이 참 좋았다. 날 데리고 어디든 가 줄 것 같았던 부드러운 핸들링의 그 남자, 든든한 나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었던, 내가 참 사랑했던 그 남자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오늘도 나는 운전을 하며
짧게 내 곁에 머물렀던 그 남자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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