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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Feb 15. 2024

그때 끝장 봤어야 하는 일

이럴 거면 시계 빼라.

 연애가 시작된 지 6개월 정도 지났다. 평범한 연인들이 거쳐가는 과정을 나와 남자도 차근하게 밟아 갔다. 달달했다, 씁쓸했다. 행복했다, 우울했다. 기분에 충실한 조울증 환자처럼 달아올랐다 식었다를 반복하며, 나도 남자도, 남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우린 특별하지 않았지만 조금의 다름에 온갖 의미를 가져다 붙이며 사랑을 확인하고 관계를 이어갔다.      


 남자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해외파였지만 의외로 상당히 보수적이었고, 누구보다 한국의 역사와 관습을 뿌리 깊게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외국물 좀 마셨다고 아는 척하거나 특별한 척하지 않는 남자의 그런 면이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남자가 특별히 굳건하게 지켜 온 한국인의 관습(?)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코리안 타임”이었다.      


코리안 타임(Korean time)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하는 행동이나 그 버릇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한국 전쟁 때 주한 미군이 한국인과 약속을 한 뒤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한국인은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시간관이다.'라고 하여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남자는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딱 맞게 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반면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 본의 아니게 상대를 압박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만남은 늘 남자의 사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5분 10분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나보다 남자의 일정이 바쁘다고 생각했기에 그대로 이해해 버렸다.     




 “오빠 이번주 주말에 시간 어때요? 엄마 아빠가 2박 3일 동안 여행을 가셔서 동생이랑 나만 집에 있는데, 같이 음식 만들어서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럴까요?”      


 난 엄마 아빠가가 안 계신 틈을 타 남자친구를 집에 초대해 놀아보려는 앙큼한 계획을 세웠다. 동생과 남자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여차하면 동생 남자 친구도 불러서 스파게티도 만들어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알찬 주말이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남자도 그날을 기대하는 눈치였고 그렇게 우리의 사이가 깊어지는 시나리오를 쓰며 혼자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동생 입단속에도 정성을 다하고 음식 재료도 조금씩 마련하며 철처하고 완벽하게 그날을 준비했다.

   



 동생과 나는 음식 준비와 집안 청소에 열을 올리며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0시에 오기로 한 남자는 15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늘 조금씩 늦는 사람이기에 좀 느긋하게 기다리자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동생은 언니가 사귀는 그런 남자는 ‘못 쓰는 남자’라는 듯 한심하게 나를 바라봤고, 그 후로도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 결국 2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거나 어디가 심각하게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기준에서 그 정도 사고가 아니라면 2시간 지각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걱정을 해야 하나 화를 내야 하나, 걱정과 폭발 그 중간 어디쯤에서 잔걸음을 옮기며 움직일 수 없었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남자. 아픈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도 아니었다. 남자는 그냥 순수하게 2시간을 지각했다.    

  

 우리의, 아니 나의 계획은 쓰레기가 되었고, 동생의 눈에 꽤 '단호하고 믿음직했던 언니'는 2시간 만에 '불쌍하고 한심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피곤해서 늦잠을 잤다는 남자의 솔직하고 대담한 변명에 분하고 허탈한 마음은 잠재울 수 없을 만큼 커져갔고 남자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말했다.


 난 아직도 그날 공기의 내음, 나와 동생의 옷차림, 남자의 목소리, 분함으로 빨라진 심장 소리까지 기억나는 듯하다.


분명 그날은 우리에게 위기였다.      


 남자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분명 철없던 내가 남자의 사과를 받아주었고, 이별은 없던 일이 되었던 것이겠지. 기억에 남는 건 그날의 분한 감정과 괘씸하게 솔직했던 남자의 태도뿐이다.

 배의 키를 1도만 바꿔도 최종 목적지는 다르다고 했는데, 우리에겐 그 1도가 벌어지지 않았다.

   



 '살면서 이런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선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변명했던 2006년의 남자는 2024년 지금도 한결같은 모습이다.


 남편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늘 느리게 흘러간다. 


 외출하기 전 나의 10분은 엄청난 밀도를 가진다. 집정리하고 ‘5분 화장’하고 애들 옷 입히고 챙길 거 챙기는 10분 동안 남편은 거의 미동이 없다. “자 나가자.”는 일성에 남편의 준비가 시작된다.    

  

“자기야, 난 3분이면 준비 끝나. 걱정 말고 신발 신고 있어. 나 금방 나간다.”     



 

 며칠 전 우리 가족은 설날의 고단함을 해소하기 위해 오랜만에 뮤지컬을 보러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남편은 항상 꼴등이다. 남편을 제외한 셋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 앞에서 남편을 압박한다. 그날도 결국 우리는 한결같은 남편 때문에 나가야 하는 시간에 나가지 못했고, 모처럼 부츠를 신었던 나는 꽤 오래 내리막길을 뛰어야 했다.      


남편의 시간은 늘 느리게 간다.
그래서 나의 시간은 늘 더 빨라야만 한다.
난 오늘도 한결같이 느리게 가는
남자의 시계를
 그날 고쳐 놓았어야 한다는
  후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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