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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Feb 22. 2024

기타히어로의 최후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들을 보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끝없이 솟아나는지, 어쩔 때는 궁금해서 몰래 들어본다. 별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 사소한 이야기들, 손톱 깎다 강아지가 손톱 물고 가버린 이야기, 카페라테를 먹고 싶었지만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 영화 보는데 뒷사람이 거슬렸던 이야기, 지하철 덩치남과의 대치 끝에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뒷 끝.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가 나는 좋다.


 이 남자와는 가끔 대화가 툭툭 끊긴다. 툭툭 끊기는 대화를 이어 붙이려면 두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 상대가 궁금한 호기심, 침묵도 약이 되는 끈끈함. 그 남자에게는 오가는 대화의 내면에 숨어있는 이런 마음 재료가 부족한 순간이 종종 있다.


 연애가 시작된 지 6개월 정도 되어가는 시점, 대화가 좀 심드렁해지면 남자는 가방에서 살짝 수줍게 뭔가를 꺼낸다. 늘 가지고 다니는 그 검은색 물건을 켜면 그때부터 그와 나는 다른 세상에 놓이게 된다.



 

 믿기 힘들지만 2006년에는 휴대폰이 2G였다. 핸드폰은 전화와 문자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휴대하며 게임을 하기엔 닌텐도 DS나 PSP(Playstation Portable)가 적합했다.


남자가 늘 가지고 다니던 게임기는 PSP였다. 즐겨하던 게임은 ‘기타루맨’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선율에 맞춰서 손톱만 한 조그셔틀을 움직여 기타를 쳐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었다. 적당히 작은 크기에 두 손에 쏙 들어오는 게임기를 손에 쥐고 몸까지 써가며 꽤나 진지하게 게임을 하는 남자는 이미 나와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 버린 듯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대화가 아니라면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임이 시작되면 나의 시간은 느리고 느려져 멈춰버린 듯했고 어느 순간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게임은 우리 사이에서 조금씩 문제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게임은 안 하면 그만이고 제든 멈추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그 남자는 결혼 후에도 노골적으로 게임을 즐겼다. 친정아빠에게 무슨 말을 건넨 건지, 결혼 선물이라며 플레이스테이션3를 장인어른에게 선물 받았던 남편. 시간이 날 때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업데이트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팬티와 런닝만 입고 안 쓰던 근육을 움찔거리며 티브이화면을 마주한 채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모습을 소파에 앉아 바라보고 있자면, 둘이어서 더 외로운 그 시간이 오래 계속될까 봐 불안했다. 서로의 눈과 얼굴을 마주하고, 자잘하고 쓸데없지만 왠지 쏟아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게임에게 밀릴까 봐 조바심이 생겼다.


그때부터 우리는 ‘게임을 즐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어 열변을 토하며 상대를 비난하고, 결혼을 후회하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했다.   

   



 올빼미 스타일 남편과 다르게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었고, 그날도 우리는 각자의 수면 패턴에 맞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한동안 자다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방문 밑으로 반짝이는 불빛이 들어온다. 거실에 나가보니 남편은 기타리스트로 변신해 있다. 복장은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 실제 기타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기타를 메고 정열적으로 기타 위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남편이 즐기는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3에 있던 ‘기타 히어로’라는 게임이었고, 본체와 연동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별매하는 기타가 있었다. 남편이 매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기타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깊은 밤에 혼자 오랫동안 목놓아 울었다.


‘좀 더 신중했어야 하나, 비슷한 취미를 공유하는 것은 부부관계에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기타 매고 저러는 모습을 얼마나 더 봐야 하나. 하루도 견디기 힘든 저 모습을...’

이 결혼을 선택한 나 자신을 많이 미워했다.


‘혹시 이 남자, 매력 없는 결혼 생활이라 점점 더 게임에 빠져드는 건 아닐까?’

 허탈감과 두려움에 빠지게 되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문제의 기타


 남편 절친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부부동반으로 모임을 함께했던 날이었다. 어쩌다 나온 게임 이야기에 남편의 절친인 오빠가 배를 잡고 웃는다.


“야, 너 아직도 그러고 사냐?

미국에서 같이 살 때 얘가 밤새 뿅뿅거리고 게임 틀어 놔서 잠 좀 자자고 소리치고 그랬었는데.

너 나이가 몇 갠데, 게임 좀 그만해~!!”


 언제든 그만하면 되는 것이 게임이라고, 대화할 때는 게임 안 한 다던 그 남자가 어릴 때부터 전적이 화려한 게임광이었던 사실을, 나는 1년 6개월 동안 눈치채지 못하고 결혼을 했던 것이었다.

남편이 버리지 못하는 게임기와 그 친구들.


 본인은 컴퓨터 게임은 절대 안 하니 걱정 말라며 핸드폰 게임을 주로 즐기는 ‘왕년의 기타리스트’는 이제 중년이 되어 눈이 침침해져 간다. 게임도 체력이 돼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고소한 요즘, 남편은 특히 화장실에서 게임하는 걸 몹시 즐긴다.

 

 남편은 내가 게임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몹시 미워하고, 그 모습이 쉽게 분노게이지를 최고단계로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좋은 취미가 아니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는 남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추억의 게임이라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난 사실 남편이 화장실 게임장에 들어가면 오랜 시간 나오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고, 게임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좋다. 어차피 함께 있어도 남편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있을 테니...


 결혼 15년 차, 우리 집에는 그 흔한 닌텐도 스위치도 없고,
아들만 둘이지만 둘 다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만하면 그때 흘린 눈물의 진심은 충분이 전달되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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