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츰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 ‘결혼’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우리’와 연결시켜 대화가 가능한 시기가 되었다. 서로의 친구나 형제, 자매에게도 실물을 공개하고 ‘내가 지금 이런 사람과 결혼을 생각한다.’는 암묵적인 시그널과 언어적인 표현을 뿜뿜 하며 다녔던 것 같다. 나도 슬슬 ‘이 남자가 나의 남편이 된다면’이라는 관점에서 남자의 행동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어설프고 꼼꼼하지 못한 나였지만, 그때는 내 미래와 연관된 부분이라는 생각에 꽤나 유심히 살펴보았던 것 같다.
“자기(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호칭을 ‘자기’로 바꿨다.), 혹시 다음 주 화요일 저녁에 시간 괜찮아? 미국에서 일하던 스티브가 한국에 직장을 잡아서 가족들이랑 다 같이 들어왔다네. 집들이에 나랑 친구들 초대했는데, 자기도 보고 싶대. 같이 갈래? 난 같이 가고 싶어.”
상당히 내향적인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대화를 주도할 수도 있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뽐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상황에서는 한없이 쭈그러지게 된다. 하지만 남자가 마지막에 덧붙인 ‘난 같이 가고 싶어’란 말에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스티브라는 친구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부인은 교포출신으로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고 둘 사이에는 돌이 안된 아들이 있었다. 집에 가보니 아기는 점퍼루에서 발끝을 잔뜩 뻗은 채 마룻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한 스릴을 즐기고 있었다.
걷기 전의 아기들에게 걷고 뛰는 느낌은 선물하는 점퍼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먹는 도중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건지 바라는 바가 따로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를 여기서 꺼내라’라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남자는 능숙하게 아이를 들어 올려 꺼낸 후 칭얼대는 아이를 웃겨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쇼를 보여줬다. 비행기를 태워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까꿍놀이도 해주고. 분명 남자는 아기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기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존재감을 뽐냈다. 여자인 내가 봐도 부담스러운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남자는 눈으로 좇으며 돌보고 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마다한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나는 결심했던 것 같다.
‘그래, 저 남자랑 결혼해야겠다. 저렇게 다정하게 아이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겠다. 내가 도움을 청할 때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이다.’
결혼 후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기대했던 ‘다정한 아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가 원하는 바를 잘 모르는 건 아빠가 처음이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은 거기 없었다.
초보 엄마로서 가장 힘들었던 건 야간수유였다. 툭하면 깨어나서 먹을 것을 찾는 작은 먹깨비는 나에게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모유수유가 순조롭지 못했던 나는 아이가 5개월을 넘기면서 분유수유로 노선을 변경했다.
남편은 아이가 밤에 일어나서 칭얼댈 때 단 한 번도 그 소리에 깨어 분유를 탄 적이 없다. 훤한 낮에도 남편은 온도와 용량을 잘 맞춰야 하는 분유 타기를 제대로 성공시킨 적이 한 번도 없다. 매번 물이 많거나 뜨거워서 애를 먹였다.
기저귀 갈아주기, 이유식 먹이기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은 건 둘째치고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책 읽어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기, 아이와 눈 마주치며 쓸데없는 이야기 하기 등 그 어떤 교감도 서툴기 짝이 없었다. 아니, 진심이 담겨있지 않아 보였다.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는 꿀팁에 관한 책도 몇 권 선물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아기들은 성인인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민하게 판단한다.
'누가 나를 즐겁게 해 줄 것인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가 나를 구해줄 것인가?
누가 나의 대변인인가?
누가 나의 수족인가?'
남편의 개선 없는 시간들이 계속되면서 슬슬 아이도 아빠의 손길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육아의 모든 것은 내 차지가 되었다. 상황이 그리되자 남편도 차츰 포기하는 눈치였다. 남편은 위기가 닥치면 엄청난 자존감을 바탕으로 초긍정의 마인드를 장착하고 본인이 극복하기 힘든 부분은 깨끗하게 포기하고 전진하는 사람이다. 역시 아이의 거부에도, 하루 종일 함께하는 엄마의 손길을 아이가 더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초긍정적으로’ 상황을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14년이 흘렀다.
다정했던 아들과 아빠, 그리운 장면
2024년 지금, 남편과 아이들은 역시나 잘 통하지 않는다. 아들이지만 남자끼리만 나눌 수 있는 교감이나 비밀도 없는 것 같다. 스스로 외톨이를 선택한 남편은 우리 셋 사이에 스며들고 싶어도 이제 그럴 수가 없다. 14년 동안 한 땀 한 땀 일궈온 우리 셋의 교감은 생각보다 견고한 것이어서 내가 남편을 껴주고 싶어도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큰아들은 이미 탄탄하게 외벽을 치고 아빠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작은 아들과의 관계도 이대로라면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자기에게 기회가 많을 수 있다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가 결혼 전에 만났던 그 다정한 남자의 모습은 아마도, 아니 확실히 연기였었나보다. 한껏 기울었던 사랑의 감정으로 결혼을 꿈꾸고 있었던 나는, 감쪽같은 그 남자의 메서드 연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내 미래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와 결혼하고 싶었던 간절한 진심이 담겨서 가능한 혼신의 연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남자를 이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