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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Apr 16. 2024

잡동사니 못 버리는 엄마

 초등학교 때 정말 가지고 싶었던 인형이 있었다. 얼마 전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바비인형’.


 동네 문방구에 있는 건 오리지널 바비인형이 아닌 한국회사에서 만든 바비인형 짝퉁이었지만 어릴 때는 브랜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마냥 그 인형이 탐났었다. 문방구 진열장에 도도하게 서 있는 인형 앞에서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친한 친구네 놀러 가면 바비인형은 물론 ‘인형의 집’이 있었는데, 환상 속의 공주방을 재현해 놓은 듯한 분홍색 집이었다. 지금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인형의 집과 친구의 바비인형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거기 있던 가구마저도...


 엄마는 ‘인형의 집’은 고사하고 바비인형도 사주지 못하셨다. '너무 비싸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열심히 종이 인형을 사서 오리고, 모으고를 반복했다. 3살 아래 여동생과 얼마나 열심히 오렸는지 신발상자 만한 박스 여러 개를 채웠다. 아빠는 물건을 사고 나서 생긴 박스에 전구와 스위치를 달고, 초인종도 붙여서 ‘인형의 집’을 만들어 주셨다. 그 '인형의 집'에서는 종이 인형에 살이 붙고 숨결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매일 동생이랑 방에 앉아 종이인형을 들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린 파티에도 초대받아 왕자님도 만나고 딩동딩동 서로의 집에 들러 차도 마셨다. 아빠가 만들어 주신 초인종을 누르고 싶어서 돌아가면 초대를 하고 초대를 받고, 아주 복잡한 스토리였다. 이야기가 끝나면 한 장의 작은 종이가 되어 박스 안에 고이 누워있을지라도 아빠가 손수 만들어주신 ‘인형의 집’에서만큼은 바비인형 부럽지 않은 화려한 삶을 즐기는 아이들이었다.


 초등 5학년이었던 어느 날 집에 와서 여느 때처럼 종이인형 박스를 열어보려 봤더니 박스 자체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졌다. 아빠가 만들어 주신 박스궁전도 자취를 감췄다. ‘종이인형과 그들의 궁전’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한 마디만 남기였다.


 “그거 엄마가 다 버렸다. 걔네 때문에 집이 너무 지저분해.”


 그 순간의 절망감과 상실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에게 가끔 볼멘소리를 한다.

 “난 그때 우리 엄마가 계모라고 생각했잖아. 어쩜 그럴 수가 있어? 아빠랑 동생이랑 나랑 함께 만들었던 추억의 세상을!!!!”     




 딸만 둘이건 아들만 둘이건 늘어나는 잡동사니에 피곤한 건 엄마뿐이다. 엄마가 내 종이인형을 처분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정리를 마음먹고 잡동사니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평상시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잡동사니 하나하나 모두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다. 그 긴긴 사연 들으며 실랑이를 하느니 어디 창고에 처박아두자는 결심을 하곤 한다.

    

 잡동사니가 가장 많이 생산된 해는 2020년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사실상 문을 닫았고 아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무료함과 노는 시간이었다. 당시 4학년이었던 큰 아들과 유치원 생이었던 둘째는 우연히 ‘컬러비즈’에 빠졌다.


 보통은 비즈를 만들 수 있는 도안이 따로 있고 여아들은 그런 도안을 따라 예쁘게 비즈 만들기를 완성해 티코스터로도 쓰고 열쇠고리로도 만들었다. 우리 집 남자아이들은 도안도 없이 일단 포켓몬 책을 펴고 그대로 따라 비즈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책에 있는 그림이 부족하자 패드를 열고 네이버 이미지를 열어 화면을 보고 비즈를 만들었다.


포켓몬 이름: 레지락 , 오른쪽 그림을 보고 왼쪽 비즈로 완성한다.

 

이브이와 진화형 친구들

 아이들이 만든 비즈 포켓몬들은 아이들에겐 만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비즈포켓몬들은 장난감 버스에도 타고, 레고로 만든 집에 거주도 하고 비비탄 총알받이도 되어준다. 휴대하기도 편해 외출도 함께하고 책갈피로도 사용했다. 그렇게 두 아들의 ‘종이인형’이 되어준 비즈포켓몬은 코로나로 사라진 2년을 꽉꽉 채워주었다.


 비즈는 일단 구성이 되면 다리미의 열기로 한번 눌러줘야 비즈끼리 결착이 되어 하나의 완성품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다림질의 달인인 내가 여기서 꼭 필요하다. 내가 없으면 비즈들은 인형으로 탄생되지 못하고 '무'로 돌아가야 한다. 적당한 압력과 열기, 적당한 시간 그리고 다린 후 구부러지지 않게 적당하게 눌러주기.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뤄지면 아이들의 칭찬과 환호성이 뒤따른다. 놀다가 부러진 아이들, 떨어진 비즈들, 다림질 솜씨만 받쳐준다면 다시 심폐소생이 가능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약간의 성취감을 안겨줬던 비즈포켓몬이었다.   

   

버릴 비즈 포켓몬 고르는 중

 이런저런 이유로 5년간 버리지 못했던 포켓몬을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지난 주말에 창고를 열어보니 비즈박스만 6개가 된다. 주말에 아이들과 상의 끝에 일인당 한 통씩만 남기고 모두 버리기로 결정했다.


“이건 엄마가 처음 만들어 준거야.”

“이건 내가 제일 아끼는 건데?”

“이건 실제 캐릭터랑 너무 똑같잖아?!!”

“이건 색깔 조합이 끝내줘.”

“이 캐릭터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잖아?!”

“얘는 아까 걔랑 세트라 못 버려.”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였지만 우리는 결국 두 박스로 추리는 데 성공했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줬고, 아쉽지만 일부를 버리는데 동의한 아이들의 결심이 기특했다.

우리 집에서 떠난 비즈작품들

 

 커다란 쇼핑백 가득 비즈포켓몬을 넣고 재활용쓰레기장으로 떠나기 전에 여러 장 사진도 찍어본다. 5년 동안 버리지 못했던 건 비즈가 아니라 '아이들과의 추억'이었을까? 다림질에 실패했지만 아이들이 사랑해 준 포켓몬, 다림질이 완벽해서 볼 때마다 엄마 최고라는 칭찬을 유발했던 포켓몬, 상자들 사이에서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버린 포켓몬, 보내려 하니까 왜 이렇게 또 눈물이 날까?      


 마지막 두 박스는 엄마도 못 버리겠다.
너희들이 나중에 놓고 떠나도 엄마가 보관할게!!
2년 동안 만들면서 우리 진짜 즐거웠잖아?!


끝까지 살아남은 비즈포켓몬 두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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