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bra윤희 Apr 09. 2024

싫으면 싫다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기도 하지만 주기도 한다. 나는 그때 미움을 주는 걸 피하고 싶어서,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도망 다니고 숨어 다녔다. 누구나 나와 맞을 수는 없는 일이고, 나도 누군가가 꼴 보기 싫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 마음을 들어다보고 솔직하게 끄집어내는 것이 힘들었다. 

 



 대학원 시절에 열심히 했던 것 중 하나가 그룹 스터디였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그룹을 만들어서 각자 공부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뽑아오고, 그 중국 신문을 발표자가 낭독하면 듣고 바로 통역하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때문에 낭독문장의 질은 전적으로 발표자의 역량에 달려있었다. 


 나는 같은 학원을 다녔던 두 명의 친구와 5개월 동안 열심히 스터디에 매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한 친구가 발표할 때는 집중이 잘 안 되고 중국어도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처음엔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여름의 기운에 짙어진 어느 날 윤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소정이랑 스터디하는 거 괜찮아? 너한테는 솔직하고 싶은데 난 이제 걔랑 그만하고 싶다.”


 윤지의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마음이 투명해지고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난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근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하고 있었어.”


 우리는 솔직하고 쿨하게 소정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 결성된 스터디그룹을 끝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기에, 소정이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소정이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우리는 그 부분을 정리해서 소정이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어 발음이 안 좋다?’, ‘찾아오는 자료가 마음에 안 든다?’, ‘우리랑 공부방식이 다르다?’ 윤지와의 이야기의 끝에 우리는 소정이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정이가 스터디 그룹을 대하는 태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불쾌했다. 대화도 통하지 않고 생각도 통하지 않고, 소정이와 우리는 주파수가 전혀 맞지 않는 사이였다.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자 소정이에게 더 이상 솔직하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소정이를 밀어내는 것은 쿨하지 못한 태도였다. 그렇다고 ‘너 자체가 싫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더 이상 소정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난 한 동안 스터디 그룹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채 2주를 보냈다. 불필요한 핑곗거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느라 학교가 가기 싫고 공부가 하기 싫었다.    

  



 수업이 끝나고 특강이 있던 날 갑자기 윤지는 나와 소정이에게 쪽지를 보냈다. 


 “미안, 나 더 이상 너희랑 스터디가 힘들 것 같아. 여러 친구들이랑 스터디해 보는 것도 서로에게 좋은 일이니 우리 스터디는 이렇게 마무리하는 거 어때?”


 미안할 것도, 나쁠 것도 없고 주렁주렁 핑계도 붙어있지 않은 담백 솔직한 윤지의 쪽지를 보고 전신에 힘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간단하면서도 성숙해 보이는 윤지의 쪽지가 부러우면서도 미웠다.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윤지의 용기가 부럽고 미웠다.  

 몇 주간 계속된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 우리의 스터디는 그렇게 간단하게 종료되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간단한 일이었다.    




  우린 누군가가 싫을 수도 있고 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솔직하게 모두 드러내야만 올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금만 나쁜 사람이 되어도 된다. 그 ‘조금만’도 힘들고 싫어서 피하려다 보니 복잡하고 치사해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불편한 사람과는 거리두리를 하고, 필요하다면 확실하게 선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아마 참고 넘어가는 편이 나에게 더 편안함을 줘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나도 이해해주려 한다. 싫으면 싫다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조금씩 표현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표현하는 게 편안할 날이 오겠지. 나를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기에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 06화 So Kiss m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