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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Apr 02. 2024

So Kiss me

 최근 한민 작가의 <심리학의 쓸모>라는 책을 읽다가, 심리학 쓸모의 결정체처럼 느껴지는 문구가 보였다.      

정서는 생리적 흥분과 이에 대한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내가 누굴 좋아한다는 확신이 없을 때는 주변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두근거리고 가슴이 뛰는 곳에 있으면 그것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쉽게 착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작가는 그래서 썸남, 썸녀에게는 적당한 몰입과 흥분을 일으키는 영화와 게임카페를,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고요한 풍경이 있는 호숫가, 강변을 추천한다. 영화라면 지루한 예술영화. 길고 지루한 영화는 심장박동수를 줄여 주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에 나에게 이런 심리 이론에 대해 알려준 친구가 있었다. 나의 대학생 시절을 함께 했던 나의 친구 효민이.      


1학년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난 효민이는 깡마른 체구에 작은 키, 염색하지 않은 갈색 머리카락, 화장기가 전혀 없는 살짝 어두운 피부, 크지는 않지만 묘하게 느낌 있는 눈매, 다크서클이 다소 깊어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접점이 없어 보이는 우리는 이상하게 서로 끌렸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같은 수업을 여러 개 수강하게 되었다. 급속도로 친해진 우리는 설렘과 낯섦이 공존하는 대학 교정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매일을 지내갔다.


 효민이는 뭐든지 쿨한 친구였다. 규범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패션, 필요할 때만 툭툭 던지는 수준 높은 유머감각, 누구보다 솔직한 자기표현, 이 모든 것이 하모니를 이뤄 나에겐 더없이 신비로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효민이는 어느 날 곱게 화장을 하고 등장하더니 쉬는 시간에는 수정화장을 하며 립스틱을 발랐다. 수업이 끝나면 체육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윤희야, 너 요즘 바빠? 안 바쁘면 너도 화장 좀 해. 얼굴 아껴서 뭐 해? 화장도 하고, 남자 친구도 사귀고 그렇게 살아야지. 그래야 대학 생활이 재밌지.

 그리고 체육관 앞에 앉아있으면, 남자 친구 사귈 확률이 높데. 왜 그런지 알아? 운동하고 심박수가 올라간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그때 눈앞에 있는 사람 때문에 심장이 뛰는 줄 알고 자기도 모르게 반하게 된대. 어때? 설득력 있지 않아?


 그렇게 매일 점심시간마다 체육관 앞에 앉아있던 효민이보다 내게 먼저 고백남이 생겼고 그때도 효민이는 쿨했다.

“너 요즘 바빠? 안 바쁘면 그냥 사귀어. 지금 이 시간 아껴서 뭐 할 건데. 공부하며 시간 보내는 것도 이제 지겹지 않아? 사귀다 아니면 헤어지면 되지 누가 결혼하래??”     


 얼마 후 효민이는 갑자기 학교 밴드부에 보컬로 합격했다며 소식을 전했다. 내가 보기에 당시 밴드부 선배들은 우리보다는 조금 방탕해 보였고 과하게 자유로워 보였다. 걱정하는 내게 효민이는 간단하게 말했다.

“그냥,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신청했고, 합격했으니 할 거야. 가수 할 거 아닌데 뭐 어때?”


이미지출처: Canva

 모든 게 쿨하고 쉬웠던 친구를 남겨두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던 날도 효민이는 심플하게 말했다.

“어, 윤희 잘 다녀와. 근데 난 중국에 놀러는 못 간다. 난 이제 결혼할 남자 찾을 거거든. 아주 바쁠 예정이야. 너도 중국 가서 내 생각 너무 하지 마. 거기서 새로운 친구 많이 사귀어.”     


 그렇게 늘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나에게 다소 황당하지만 확실한 방향키가 되어준 친구는 본인의 희망대로 졸업하기 전에 남편을 찾아 당당하게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외국으로 떠났다. 그때 효민이가 나에게 한 말은 딱 한마디였다.

 “나 이제야 나의 주인을 찾은 것 같아.” 행복하게 웃던 나의 친구 효민이.

 후회 없이 그냥 다 진행시키라고 등 두드려주던 친구 덕분에 나의 대학 생활은 심플하게 행복했고, 원하는 바가 생각보다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요즘 들어 지금 내가 누구와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40 중반이 되는 내 인생을 돌아다보면 결국 인생의 전환점에 누군가가 있어줬고, 싫든 좋든 그 전환점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함께 도전했던 작가님들과의 인연이 깊어지면서 내 인생은 전환점에 서있다. 어디서 꺾여 어디로 갈지는 나도 모르지만, 내 주변에 도전을 좋아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작가님들이 함께하고 있음에 든든하고 행복하다. 대단한 일을 하면서도 본인이 대단한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들, 그분들 사이에 내가 있고, 어느새 나도 그냥 그들과 함께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내 주변 다섯 명의 평균이 내 미래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주변인의 영향을 많이 주고받으며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평균을 깎아 먹는 일만큼은 하지 말자.”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읽고, 쓰고 조금 더 성장하자 다짐한다.      




밴드부 효민이의 공연 전날, 본인이 제일 잘 부르는 노래를 할 것이라고 나에게 문자가 왔고,

공연장에서 효민이는 커다란 스피커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Sixpence None The Richer의 <Kiss me>.

오랜만에 플레이해 보았고, 나도 모를 눈물이 흘렀다.

  

인생이여, So Kiss Me!            


https://youtu.be/CAC-onWPMB0?si=eR_OJ52JJwR3bu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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