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편성준 작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투명인간으로 죽기 싫어서였다. 결혼한 지 17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린 종종 서로를 악의 없는 무관심으로 대하곤 한다. 이해해 주겠지, 넘어가 주겠지, 용서해 주겠지. 그런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믿음 속에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나날이 참기 힘들었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그것 말고 나를 정의할 단어는 정말 세상에 없는 걸까?
물론 그런 삶에서 철저하게 도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가 마음을 심고 살아가는 바로 이곳에서 다시 나 자신의 색채를 갖추고 살아가고 싶었다. 나란 사람이 지금 여기에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단지 그러한 이유로 시작된 글쓰기였다.
“엄마는 꿈이 뭐야? 꿈이 있었지?”
둘째의 순수한 질문에 끝도 없이 작아졌던 어느 날, 내 마음속의 작은 불씨가 ‘탁’하고 살아났다. 꿈이 있긴 있었으니까.
내가 조금씩 글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과 아이 둘에게만 알렸었다. (지금은 친정 부모님과 여동생도 알게 되었지만) 그때 난 “이렇게 쓰다 보면 책이 나오지 않을까? 책이 나오면 나도 재정적으로 가정에 도움이 될 거야.”라며 남편에게 쓰는 삶의 정당성을 강조했었다. 그런 희망이 있으니 내가 조금 바빠지더라도, 내가 조금 정신없이 살아더라도 눈감아달라고 말했다. ‘투명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라는 이유는 이해받을 수 없고, ‘꿈’이라는 단어는 너무 무책임하다고 느껴질까 봐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글이 쓰기 싫어지던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글을 쓴다며 미뤄두었던 모든 것들이 살아나 아우성치는 기분이 들었다. 집은 엉망이고 아이들은 제멋대로 크고 있었다.
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매일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렇게 몇 달을 지내와도 사실 남아있는 성과는 대단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나만 느끼고 있는 소소한 성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미뤄두었던 것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성과라고 할 만한 것들도 아니다. 투명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글을 썼지만, 난 노트북 앞에서 계속 투명인간으로 남아있었다.
이런 날은 평상시에 나의 글쓰기를 방해했던 일들이 오히려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넓은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듯 아무 생각 없이 그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잡스러운 일들이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오래되어 점화에 긴 시간이 필요한 가스레인지, 참을 수 없이 쏟아져서 이겨내려는 그 마음에만 일념 할 수 있게 해 준 졸음, 둘째 아이의 황당한 난센스 퀴즈, 청소하지 않을 수 없게 구석구석 때 낀 화장실 바닥, 오늘 꼭 반납해야 하는 도서관 책. 이런 것들을 붙들고 하루를 살아내기도 한다.
스스로를 향한 비난과 질타가 끝난 후에도 결국 나는 노트북 앞에 앉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연결이 자꾸 끊어지고 충전기 없이는 30분도 버티지 못하는 노트북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나의 기록은 결코 낡지 않을 거란 어두운 희망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언젠간 나만의 새벽이 찾아오리란 희망. 투명인간이 아니기 위해 시작된 글쓰기를 계속해나간다. 새벽을 기다리고 주시하면서 그냥 꾸준히 쓰다 보면 투명인간에 색이 채워지고 글에도 자국이 생겨 어딘가에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게 될 날이 오겠지.
책이 출판되어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미래를 꿈꾸고 쓰기 시작했던가.. 를 생각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언젠가 내 책이 출판되기를 꿈꾸었었다고 했으나 책이 나와서 재정적으로 가정에 도움을 주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난 계속 쓰고 있을 것 같다. <쓰기의 감각>의 앤 라모트가 쓴 것처럼 “어떤 글을 완성하는 일보다 단지 글쓰기 자체를 원하는 경지로 나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책을 출판하고 혹은 시간이 그냥 지나 누군가 내게 글을 쓰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왜냐하면, 쓰고 싶으니까. 쓸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시 노트북 앞에 앉은 저녁, 언젠가 써두었던 책의 문구를 다시 적어본다.
매일의 작은 목표조차도 이루어내지 못해서 좌절하고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꿈꾸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실패하더라도 치열하게 욕망했던 삶의 태도는 우리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시간이 쌓여서 또 다른 꿈을 꾸게 해주는 거죠.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 - 이선재
소설가 이승우는 메모를 뒤적이는 건 무엇을 쓸지 찾는 과정이고 메모 상태는 부화 전 알과 같다고 말한다. 메모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적어놓기만 하고 다시 펼쳐보지 않는다면 메모가 알아서 부화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P170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다가 끄적여둔 메모앱을 켜보았습니다. 거기엔 짧게 혹은 길게, 내가 일상에서 느낀 내용이 담겨있었고, 책을 읽다 훔치고 싶었던 혹은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들이 적혀있었어요. 부화 전 알들이 많이 산재해 있었지만 부화된 알들은 많지 않았죠. 오늘은 그 알 중 하나를 톡 건드려 글로 부화시켜 보았습니다. 전혀 웃기지 않고 우울한 글이 돼버린 것 같지만 그러한 감정도 나의 것이니 가만히 품었다가 세상으로 내보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