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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Jul 24. 2024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방이 있다

feat. 편성준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심각한 길치라 음식점에서 방을 잡고 식사를 할 때 종종 방을 헷갈린다. 화장실이라도 한 번 갔다 오면 그 방이 그 방 같다. 모든 방문이 내가 있다 나온 방의 문인 것만 같아서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다시 들어가기 전에 이 방이 그 방인지 몇 번을 확인한다. 방문을 열었을 때 다른 가족들이 정겹게 담소를 나누고 있을까 봐 긴장한다. ‘혹시라도 남부끄러운 상황이면 어쩌지?’ 음식점 방이 들어찬 복도는 왜 그렇게 늘 어두운 건지. 그래서 난 방문 위에 쓰여 있는 방의 이름을 꼭 외우려 한다.


'흠.. 나는 매화방에서 먹고 있었군…….'    


 이런 방은 사실 실수로 들어간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혹여 진짜 잘못 들어가게 되면 부끄러움만 나의 몫일뿐 “앗, 죄송합니다.”라고 공손하게 사과하면 이해받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매일 들락날락하는 방은 따로 있다. 온종일 새롭고 재밌고 놀랄만한 이야기들이 생산되는 그곳은 바로,


“톡방”


 이 방에 실수로 잘못 찾아 들어갔다가는 생각보다 큰 후폭풍에 휩싸일 수 있다.      




 ‘라인(Line)’이라는 메신저에 친정 식구들과 가족 단톡방이 있다. 아침에 손이 부은 것 같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잠들기 전에 에어컨을 켜고 자는 게 맞냐는 질문까지 시시콜콜 말이 많은 단톡방이었다. 한동네에 살고 있는 친정 식구들에게 동네 정보도 꽤 중요하다. 나와보니 너무 추우니 옷을 두껍게 입어야 하는 날이라는 걱정에서, 장터에 돈가스집만 오늘 오지 않았다거나 OO 커피숍이 망한 것 같다는 정보까지 넘쳐났다.


 2년 전만 해도 단톡방 바로 아래 여동생과의 개톡방도 있었다. 그때 우린 매일매일 단톡방과 개톡방을 오가며 수다를 떨었다. 단톡방에서 나눌 이야기가 따로 있었고, 개톡방에서 나눌 뒷담화가 따로 있었다.


 사건이 있던 날은 엄마의 건강염려증이 최고조에 달했던 어느 날이었다. 손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손이 떨려오기 시작해서 신경과에 가봐야겠다는 말씀, 변이 안 좋은데 대장암도 의심된다는 말씀에서 시작되어 이렇게 엄마가 힘든데 딸들이 관심을 안 둔다는 불평의 소리까지 톡방은 터져나갔다. 결국, 나와 동생은 조심스럽게 우리만의 방으로 결집했다.


“엄마 왜 저래? 그 손가락 떨린단 소리는 지금 몇 년째야?? 변은 오늘 나도 안 좋다고. 대장암 같은 소리....”


 동생과 나는 참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우리 둘의 개톡방에 쏟아냈다. 그렇게 서로의 황당하고 화나고 어이없는 감정을 나누고 나서야 조금은 엄마에게 친절해질 수 있는 우리였다.

 문제는 단톡방과 개톡방을 신나게 오가던 내가 개톡방에 쓸 내용을 단톡방에 올리면서 발발되었다.


“엄마가 저렇게 온종일 자기 건강 걱정만 하니 아빠가 얼마나 힘들까? 아빠가 너무 딱하다...”


 그 밑에 달린 엄마의 ‘저주의 톡’은 여기 소개하지 않으려 한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서운함을 달래주는데 몇 날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이야기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대급 후폭풍 사건’으로 우리 가족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때 마음속으로 꿇은 나의 무릎은 아직도 다 펴지지 않았다. 난 그 후로 계속 엄마의 건강염려증 상담사로 일하며 죗값을 치르고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조용히 동생에게 개톡을 보냈다.

 “미니야, 우리 둘은 카톡으로 이사하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톡은 ‘라인’에서 개톡은 ‘카카오톡’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세상의 방은, 혼동해도 별 탈 없는 방과,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되는 방, 이 두 종류로 나뉜다.

 현재 내가 속해있는 오픈 단톡방은 5개가량 되는 것 같다. 새벽 글쓰기가 끝나는 7시 정도가 되면 새로운 톡이 700개를 넘어선다. 벽 타기라는 말을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스파이더맨 마냥 꼼꼼한 벽 타기는 포기한 지 오래다. 난 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느낌으로 '톡의 탑'에서 다이빙한다. 그러면서도 어떤 톡방인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확인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뼈아픈 실수를 통해 새겼다. 그날 이후 난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없으니, 그 실수에 감사한다. 더불어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한다. 더 심한 이야기도 동생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정도 수위의 톡이야 뭐... 그만했으니 됐다.        

 

  

 나는 작가의 진면목은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독자들도 성공담만 늘어놓는 작가들에게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아주 뛰어난 사람이 뭐든지 척척 하는 것보다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온갖 고생과 시행착오를 겼은 뒤 겨우 성공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재밌는 것이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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