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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Jul 31. 2024

관상에서 주근깨란?

feat.  편성준 작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난생처음 관상을 보러 갔던 날을 기억한다. 엄마, 여동생과 함께 갔었고, 대학교 때였던 것 같다. 관상 보는 아저씨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몇 초를 버티기 힘들었다. 이마를 덮고 있던 앞머리를 치워보라고 했다. 나는 마치 알몸 공개하듯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갑자기 내 인생의 솜털 하나하나까지 모두 필터 없이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매서운 눈으로 몇 초간 바라보던 아저씨가 뭔가 알았다는 듯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한 마디를 던진다.


 “얼굴에 있는 주근깨 다 빼세요! 주근깨 하나하나가 다~ 남자라고요. 그래서 여배우들 중에 주근깨 많은 사람이 많은 거야. 그 사람들은 만인의 연인이니까 걔들한테는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데, 여기 윤희 씨는 그런 게 아니니까 다 빼버리는 게 좋겠지?” 그 말을 듣고, 잠깐이었지만 화가 났다. 얼굴에 있는 점의 수를 세면 점이 점점 늘어난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주근깨가 남자를 의미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정말 주근깨 때문에 맘에 안 드는 남자까지 내 인생에 먹구름 끼듯 낀다면 어쩌나, 당장이라도 지우고 싶었다.


 고지식하고 말을 잘 들었던 그때의 나는, 그다음 날로 피부과를 예약하고 주근깨를 모두 제거했다. 남자에 큰 관심도 없는데 주근깨, 걔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면 내 인생이 참 복잡하게 돌아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흥미진진하고 추억거리 가득 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전혀 하지 못했을까) ‘나는 관심도 없는데 주근깨를 보고 남자들이 달려들면 어쩌지?’이런 말도 안 되는 우려도 가능했던 나이었다. 사주팔자보다 관상이 더 정확하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젊은 시절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기억에 남은 남자는 몇 없다. 소심하고 표현력 부족한 성격 때문에 주근깨 제거 전에도 연애는 거의 없었지만, 주근깨 제거한 후에 연애가 거의 없던 채로 결혼에 이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달달한 주제의 사랑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가 참 힘들다. 경험하지 않은 부분도 글로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일방적이기도, 무모하기도, 사소하기도 한 사랑의 디테일한 감정을 표현하려면 다양한 사랑의 경험이 많은 편이 훨씬 유리하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조차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 힘든데, 경험 적은 사람이, 그것도 기억에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감정을 꺼내어 손끝으로 뽑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근깨 몇 개는 남겨둘걸. 그걸 또 모조리 깨끗하게 제거해 버리다니. 생긴 대로 살라는 조언도 있건 만, 나란 사람은 정말 발 빠르게 무책임했다.




 지금 내 얼굴에 남아있는 잡티는 주근깨가 아니라 '기미'라는 새로운 아이다. 주근깨와는 다르게 웬만한 방법으로는 쉽게 제거가 힘들다. 주근깨처럼 특별한 저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도 지우고 싶다. 점은 ‘복점’도 있고, ‘이성을 부르는 점’도 있다던데, 기미가 인생에, 아니 운명에 도움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기미 잡티는 그저 나를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칙칙하게 만드는 성실한 자외선의 흔적일 뿐이다. 검색해 보니, 피코토닝이나 IPL이라는 시술이 도움 된다고 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피부과에 찾아가 봐야겠다. 이번엔 발 빠르게 내 얼굴을 책임 질 시간이다.




장담하건대, 지금 밖으로 나가 뭘 써야 하느냐고 붙잡고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써보기 전엔 어떤 글이 나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니 역설적으로 당신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게 상책이다. 좀 들쑥날쑥해도 된다. 글쓰기가 다른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정답 비슷한 것은 많아도 진짜 정답을 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찬실이의 충고대로 '아무거나 쓰자. 아무렇게나 쓰진 말고'. 엎치락뒤치락, 이게 중요하다.   P138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고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써보았습니다. 무작정 기억나는 추억의 한 챕터를 붙들고 써 내려가는 글쓰기도 참 재밌네요. 특별한 고찰이 없더라도 내 인생의 추억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도 글쓰기에 도움 되지 않을까요? 아무거나 썼지만 아무렇게나 쓰는 글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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