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능 May 26. 2024

조금 이른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

<이과생 아내에게 들려주는 미술사> 연재 중인 능작가입니다.

퇴근 후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한 때가 작년 겨울이었는데,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간 계절도 많이 바뀌었는데요. 

제가 키우던 칼라디움도 어느새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짝 피어나 요즘엔 아침마다 새로 난 잎사귀를 보며 봄을 만끽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저를 작가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직 어색합니다.

글을 많이 써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독서광이라 할 만큼 다른 사람의 글이나 이야기를 자주 찾아본 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과생 아내를 위한 미술사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지만 저 또한 이공계열을 졸업한 공대생입니다.

작품 속에서는 미술사를 들려주는 사람이지만 말이죠. (하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정말 알 수 없는 우연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미술사를 우연히 접하게 된 일.

우연히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미술'하면 떠오르는 파리로 떠났던 신혼여행.

제가 해주는 작품 설명을 재밌어하는 아내를 보며 "책을 한 번 써볼까?" 생각하게 된 것.

이런 얘기를 듣던 직장 동료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려준 것도 말이죠.

그리고 최근에 또 한 번의 우연이 일어났습니다.

별생각 없이 클릭했던 메일함에 한 출판사의 편집자분께서 보내주신 메일이 도착해 있던 거였죠.


음... 정말 바라던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작가님'이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호칭.

게다가 제가 쓴 글들을 도서로 집필해보고 싶으시다 제안해 주시다니!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출판사에 몸을 담고 계신 분들을 만났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계신 분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모처럼 긴장이 되더군요.

그런데 저로선 되게 놀라운 일이 펼쳐졌습니다.

도서 출판에 대한 설명과 제 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죠.

순간적으로 편집자님의 한 마디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작가님이 글을 되게 잘 쓰셔서..."

최대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려 했지만... 약간 어디론가 숨고 싶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30년 넘게 살아온지라 무언가를 잘한다는 말이나 칭찬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중에 '글 쓰기'가 포함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거든요.

게다가 누군가의 글을 보는 게 일상이실 것 같은 편집자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시다니!

말씀을 전해드리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 순간은 저에게 오래도록 간직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출판사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었죠.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지만, 전 아무 이력이 없는 신참이었기에 출판사에서 제 글을 선택할 확률이 높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몰아치는 회사 일을 해치우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을 반복.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 신경이 꽤나 쓰였습니다.

"언제쯤 연락이 오려나...?"

마치 대학 입시 발표나 취업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듯한 애간장이 타는 시간이었습니다.

미팅 후 1~2주쯤 지났을 때였을까요?

제 글이 아마 선택받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쯤... 연락이 왔습니다.

편집자님께서 계약을 위해 회사로 방문해 달라 말씀해 주셨죠.

그리고 마침내 제 손에 출판계약서가 쥐어졌습니다!




이제 막 이곳에 연재를 시작한 작가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댓글과 응원하기로 잘 보고 계시다며 인사말을 전해주신 분들 덕분에 반쯤 감긴 눈으로 계속해서 공부하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혹시나 다음 연재를 기다리고 계신 분들께는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편집자님과 그동안 써왔던 원고의 수정 작업, 책의 제목, 레이아웃 등을 고민하며 이 우연을 끝맺어보려고 합니다.

미술사와 엮인 제 우연의 끝은, 결국 책이라는 결말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두서없는 에필로그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에필로그를 쓰고 있지만 사실 프롤로그의 첫 문장도 쓰지 못했습니다.

다른 작가분들은 이렇게 작업하시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 마저도 확인해 볼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 맞고 틀렸는지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겨울 시작한 이 연재작은 저에게 이정표 하나 없는 초행길과 같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당장 눈앞에 놓인 길이 아닌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 할까요? 아니면 운이 나빴다고 말해야 할까요?

멋진 경치만 바라보며 나아갔던 시간이 길지는 않았습니다.

출판계약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제가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송고 날짜, 원고의 분량, 목차, 본문 구성, 심지어는 책의 제목과 같이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제 눈앞에 놓여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 이 세계가 어느 정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 있을까요?

구태여 아내와의 추억을 꺼내 다가가기도 힘든 미술사를 주제로 책을 써보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우연히 미술사를 마주쳤듯, 제 글이 독자분에게도 또 하나의 소중한 우연, 그리고 미지의 세계가 되기를 희망하며 조금 이른 에필로그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능작가 드림.


PS. 미술사가 아닌 제 이야기를 쓰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다른 책들에서 보았던 멋들어진 에필로그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함께 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저의 책이 첫 발을 내딛게 되었을 때 다시 만날 근사한 에필로그를 기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이전 20화 그들이 '인상파'라 불리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