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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사랑해, 손 편지가 부끄러운 아빠가

by 나귀

어쩌다 이런 마음이 찾아왔을까. 오래도록 깊이 잠들어 있던 감정이 불현듯 깨어난 것처럼, 평소라면 서랍 속에 차곡차곡 미뤄두었을 마음이 오늘따라 자꾸만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네.


아마도 더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거야. 시간이라는 강물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가고, 아빠의 서툰 마음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옅어질 날이 올 테니까. 그전에, 있는 그대로의 이 마음을 온전히 담아 너희에게 전하고 싶었어.






너희도 잘 알지? 아빠가 ‘악필’이어서 손 편지를 늘 망설이는 거. 그래서 아빠는 편지를 쓸 때마다 어색하고 부끄러워. 생일카드 몇 줄만 적어도 내용보다 이 놈의 글씨체 때문에 더 식은땀을 흘리곤 했잖아.


그런데 이렇게 키보드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한 거 같아. 악필이 아니라 너희가 읽기 편할 거 같아서. 하하;


그래서 손으로는 차마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브런치 덕분에 흘러나올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그리고 덕분에 이제야, 아빠의 삶과 생각, 그리고 너희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볼 수 있게 된 것도 참 고마운 거 같아.




아빠도 한때는 너희처럼 작고 연약한 아이였어.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던 시절이, 아빠에게도 분명히 있었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어느새 부모라는 이름의 무거운 옷을 입고 서 있더라.


아빠도 처음엔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현실은 매일 실수하고, 후회하고, 또 다짐하는 날들의 연속이더라고. 화내지 말아야 할 순간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목소리를 높인 적도 있고, 더 다정해야 할 때 무심히 스쳐 지나간 적도 많았잖아.


그래서 밤늦게 잠든 너희 얼굴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묻곤 했었지. “오늘 하루, 나는 좋은 아빠였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부족함뿐이지만 말이야.


그런데도 참 신기한 건, 너희가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이야. 아빠가 이렇게나 서툴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여전히 아빠를 믿고 따라와 주는 그 눈빛. 거짓 없는 신뢰와 순수한 사랑이 때로는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해. 아마 이 기분은 너희가 언젠가 부모가 되면 조금은 알게 되겠지.


이 편지들을 통해 너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아. 아빠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들, 넘어지면서 배운 것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것들, 그리고 여전히 매일매일 새롭게 배우고 있는 삶의 작은 조각들까지. 인생이라는 게 얼마나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신비롭고, 때로는 잔혹하면서도 또 한없이 아름다운 여행인지, 그 여정을 아빠만의 서툰 언어로 조금씩 풀어내고 싶어.




미리 미안하다고 말해 놓을게.




어쩌면 어떤 이야기는 뻔하고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또 어떤 이야기는 너희가 아직은 다 이해하기 어려운, 아빠만의 철학적인 중얼거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기억해 줬으면 해. 이 서툴고 어색한 문장들 하나하나가 결국은 너희를 향한 아빠의 크고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다만 너희가 이 글들을 읽을 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야.


앞으로 써 내려갈 편지들이 너희가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이 되었으면 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잠시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하는 따뜻하고 고요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완벽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겐 용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제 서툴고 어색한 아빠의 편지를 시작해 볼게. 무엇보다 다행인 건, 이게 손 편지가 아니라는 거지. 덕분에 아빠의 악필을 보며 너희가 “도대체 이게 무슨 글자야?” 하고 머리 싸매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지. 하하;




사랑해, 손 편지가 부끄러운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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