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오늘은 너희가 보여준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마치 작은 새싹이 돌밭 사이를 뚫고 나와, 꿋꿋이 싹을 트며 자라나듯, 낯선 땅에서 너희가 보여준 놀라운 힘 말이야.
언어라는 건 참 신기한 다리 같은 거야. 서로 다른,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다리.
하. 지. 만. 그 다리가 없다면?
사람은 마치 섬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막막한 외로움을 느끼게 되지. 너희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마주한 건 바로 그런 막막함이었을 거야.
현지 아이들과 처음 마주했을 때를 기억하니?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데도, 마치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을 만난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던 순간 말이야. 너희는 평소처럼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돌아온 건 낯선 억양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었지. 그 순간 당황한 너희가 슬쩍 엄마 아빠 뒤로 몸을 숨기도 했었잖아.
또 처음 학교에 가는 날,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이렇게 말하면 돼."라고 아빠가 문장 하나를 알려줬더니,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되뇌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짠하던지... 그렇게 하루 종일 어색한 환경에서 긴장한 채로 교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었을 너희를 생각하니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을까 싶더라.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마음은 다가가고 싶은데 손을 내밀 방법을 알지 못하는 답답함. 마치 투명한 유리벽이 눈앞에 가로막고 있는 듯한 거리감을 너희는 느꼈을 거야. 아빠도 충분히 이해해. 언어의 장벽 앞에서는 아빠도 그렇거든.
친구를 사귄다는 건 사실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야.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게 늘 조심스럽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 하물며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어린 너희에게는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까. 함께 놀고 싶어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그 모든 시도가 높디높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벅차게 느껴졌을 거야.
그런데 신기한 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너희의 모습이었어. 마치 오랫동안 날개를 접고 있던 나비가 서서히 날갯짓을 시작하듯, 너희 안에서 작은 변화가 움트기 시작했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다른 길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기 시작한 거야.
손짓과 발짓으로 뜻을 전하고, 함께 웃고 함께 뛰놀면서, 언어가 없어도 마음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워갔지. 또 너희가 동네 아이들과 축구공을 차며 뛰어놀 때, 시골 마을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며 웃을 때, 그 순간만큼은 언어의 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어.
아빠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어. 사실 어른이 되어 살아가다 보면, 우리 역시 수없이 많은 벽 앞에 서게 되거든.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서거나, 때로는 스스로의 두려움 때문에 발걸음을 떼지 못할 때도 있지.
그럴 때마다 우리는 괜히 더 움츠러들기도 하고, 스스로를 가두며 기회를 놓치곤 해.
하지만 너희는 낯선 땅,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그 어려운 자리에서 한 발을 내디뎠잖아. 주저앉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가가고 부딪히며 방법을 찾아냈지. 그건 단순히 친구를 사귀는 일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넓혀 가는 큰 용기의 훈련이 되었던 거 같아.
흔히 용기를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빠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아빠가 생각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한 발을 내딛는 힘이야.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끝이 떨리는데도 끝까지 시도해 보는 것, 넘어질 걸 알면서도 다시 일어나 보는 것, 그 순간마다 느껴지는 두려움과 망설임 속에서도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일 때, 우리는 그것을 용기라 부르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너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 낯선 땅, 낯선 얼굴, 낯선 말이라는 벽 앞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달려왔잖아. 그 어떤 장벽도 너희를 꺾을 수 없다는 걸, 너희 스스로가 몸으로 증명해 낸 거야.
이렇게 얻어낸 값진 용기는 앞으로 살아가는 길 위에서 언제나 등불처럼 너희를 비춰줄 거야. 그러니 혹시 언젠가 다시 눈앞에 높다란 벽이 나타나더라도 겁먹지 마. 너희 안엔 이미 용기의 빛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으니까.
낯선 말과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용기를 낸 너희가,
아빠 눈엔 그 누구보다도 멋지고 빛나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