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다하우 강제수용소 - Ambersee - 안덱스 수도원
뮌헨이 좋은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주변에 매력 있는 마을들이 많이 위치해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들 중 다하우와 안덱스도 뮌헨에서 1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마을들이다. 단순히 차로 1시간이 아니라, 중앙역에서 S반으로 한 번에 갈 수 있어 접근성까지 좋다. 10시쯤 중앙역에서 JH과 만나 S2를 타고 다하우로 먼저 갔다. 다하우 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는데, 과반수가 다하우 수용소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치 관련 시설이기 때문에 입장료는 당연히 무료였다. 지도만 하나 쓱 챙겨서 수용소로 들어갔다. 수용소 건물 안에 정말 많은 설명문과 사진이 있었다. 당시 나치가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지, 어떻게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았는지, 정말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고 사진들과 통계들이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당시 시설을 일부 재현해 놓았다. 논산 훈련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협소한 곳에서 생활했고, 위생시설마저도 수용자들을 동물 취급하는 듯한 배치를 보였다. 길을 따라 걸어갈수록 점점 이입이 되었다. 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범죄행위를 보며 독일을 원망한 한편, 그 부끄러운 행위들을 이제라도 반성하는 독일이 참 성숙해 보였다. 9월 초에 갔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비교했을 때 규모도 퀄리티도 밀리지 않았다. 다만 딱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분위기나 전시된 것들은 조금은 달랐다. 이미 아우슈비츠를 가봤다 하더라도, 다하우에도 가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길 바란다.
2시간 넘게 엄숙한 분위기에 눌려 있어서 그런지 엄청 배고팠다. 안덱스에 가려면 뮌헨으로 돌아가서 S8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뮌헨에서—다하우에는 식당이 별로 없다—점심을 해결할까 했지만, 위는 지금 당장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나를 겁박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하우 역에 가는 길에 보인 케밥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국 사람들은 급하게 끼니를 해결하고플 때 햄버거를 찾는다면, 독일 사람들은 케밥을 찾는다. 그만큼 케밥은 파는 식당도 많고 질도 괜찮다. 독일에 와서 독일인 흉내를 내고 싶다면 길거리를 걷다가 아무 케밥 집에 들어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S2와 S8을 타고 Herrsching에 도착하니 벌써 16시가 되어 있었다. 이전부터 계속 한탄했다시피, 벌서 해가 슬슬 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안덱스로 가려면 또 버스를 타야 했는데, 배차 간격이 대전 못지않았다. 곧 오는 버스를 타기는 시간이 애매해 다음 것을 타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Ambersee로 갔다. 전날 갔던 슐리어제와 테게른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광활했다. 반대편에 육지가 아주 아스라이 보이는 것이 자다르에서 보였던 우글랸 섬이 생각났다. 부실해 보이는 나무 부두들까지 있었으니 바다로 착각할 만도 하다. 호수 너머로 지는 태양을 감상하다 버스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정류장으로 갔다.
맥주를 마시러 가기 직전, 안덱스 수도원이 있는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았다. 해는 이제 막 졌지만 아직 여운이 남아 하늘은 살짝 분홍빛을 띠었다. 언덕 아래로는 작은 마을과 푸른 들판이 보였다. 하늘이 완전히 어둑해지기 전까지 이 평화로운 마을을 잠깐 구경했다. 매일매일 맛있는 맥주와 함께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안덱스 주민들이 참 부러웠다.
한적했던 수도원과는 다르게 술집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시끌벅적했다. 자리를 잡고 주방 쪽으로 가서 슈바인학센과 맥주 한 잔을 각자 주문했다. 나는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을 마셔보고 싶어서 겨울철에만 나오는 Winterbier를 선택했다. Winterbier란 아무리 추워도 시원한 맥주는 참지 못하는 독일 사람들을 위한 맥주로, 도수가 평범한 라거나 밀맥주보다 조금 높다. JH과 "Prost!"를 외치며 건배하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평소보다 특히나 더 맛있게 느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과하지 않은 커피 향과 알코올의 달달함이 느껴졌다. Bockbier만큼 알코올 타격감이 있지는 않은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슈바인학센도 정말 맛있었다. 영국정원에서 먹었던 푸석한 슈바인학센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다. 프라하에서 극찬을 하며 먹었던 콜레뇨와 비견될 정도였다.
맛있게 음식과 맥주를 즐기던 도중,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독일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는지 등등 평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우리가 마시고 있는 맥주잔을 보더니 500mL짜리는 어린이 전용이라며 우리를 놀렸다. 실제로 그의 일행은 전부 1L짜리 Maß를 한 잔씩 손에 들고 있었다. Winterbier는 500mL짜리밖에 안 팔아 어쩔 수 없었다고 애써 해명하며 한 잔 더 마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먹고 마시다 보니 배가 일찍 불러왔다. 맥주는 다 마셨지만 슈바인학센은 절반 가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맥주를 한 잔만 마시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배가 터지는 한이 있어도 궁금한 맥주는 마셔보자는 마음으로 주방으로 가 Weizenbock을 한 잔 주문했다. 그런데 직원이 실수로 Doppelbock을 주었다. 영수증을 보여주니 그는 실수를 인정하고 Weizenbock을 주었다. 어쩌다 두 배가 된 맥주를 양손에 들고 금의환향했다. Weizenbock은 딱 내 취향이었다. 매우 진하게 바나나와 빵의 향이 느껴지면서도 살짝 시트러스 한 느낌도 났다. 맛도 매우 진했고 알코올의 단 맛도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Doppelbock도 만족스러웠으나 Weizenbock이 워낙 압도적이었다. 집 앞 REWE나 Lidl에는 Andechser Hell과 Weissbier Hell, Alkoholfrei밖에 팔지 않아 무척 아쉬울 따름이었다—여담이지만 필자는 무알콜 맥주를 맥주 코너에 두는 것 자체에 매우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실컷 맥주를 마시고 난 뒤,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로 나왔다. 하늘은 별들이 선명히 보일 정도로 깜깜해져 있었다. 몹시 차가운 공기가 술을 금방 깨게 해 주었다. 버스와 S8을 타고 뮌헨으로 돌아왔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연휴인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건가 싶어 독일인들에게 살짝 실망했다. 며칠 동안 혼자 다니고 혼자 먹고 혼자 술을 마셔서 심심했는데, 마음 맞는 친구와 맛있는 맥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어서 더욱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튿날도 JH과 같이 밤베르크에 가기로 해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짐을 싸고 바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