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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Sep 21. 2024

밤베르크

독일

밤베르크 대성당 - 장미 정원 - Schlenkerla

 9월 초 크라쿠프에서 동행했던 누나가 독일의 예쁜 소도시 4곳을 추천해 주었다; 뷔르츠부르크, 로텐베르크, 뉘른베르크, 그리고 밤베르크. 당시 구글맵에 깃발을 달아놓고 언젠간 가야지 생각만 하고 일정은 잡지 않았었다. 11월 말 JH와 크리스마스 직후에 같이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미 뷔르츠부르크는 다녀왔고 뉘른베르크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해 크리스마스 전에 갈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래서 나머지 두 도시 중 더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야 했다. 둘 다 골목골목이 예쁘되 엄청 유명한 랜드마크는 없어 막상막하였지만, 밤베르크가 훈연 맥주로 유명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밤베르크행 기차표를 끊었다.

 전날 다하우와 안덱스에 같이 다녀왔던 JH와 아침 일찍 만나 ICE에 탔다. 나는 Yorma's에서 Schnittlauch-Butterbreze를 사 와서 기차에서 아침으로 먹었다. 쪽파가 뿌려져 있는 버터프레첼인데, 식감은 쫄깃하고 쪽파가 버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디테일이 1.8유로짜리 빵에 들어있는 게 놀라웠다. 과감하게 ICE로 현질한 덕에 2시간 만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밤베르크역에서 나와 구시가지 쪽으로 쭉 걸어갔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중세풍 주택들이 가득했다. 빨간 지붕과 파스텔 톤의 외벽은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았다. 다만 이 도시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강 주변 땅이 조금 경사져 있었는데, 그만큼 지붕이 기울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건물들은 심지어 문까지 기울어져 있었다.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안정감은 있어 보였다. 의도하고 지은 것이겠지...?

경사를 힙하게 활용한 건물 | 김치와 치즈가 빵 사이에서 만날 수 있다니 | '기묘한 이야기'가 연상되는 주택

 강 중간 작은 섬 전체를 차지하는 구시청사를 지나 밤베르크 대성당으로 갔다. 무려 11세기에 지어진 거대한 성당으로, 쾰른 대성당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사람들을 압도할 만한 크기를 자랑했다. 뾰쪽뾰쪽한 쾰른 대성당과는 다르게 둥글둥글한 모습을 띠었다. 앉아서 잠시 하느님의 은혜를 받다가—날씨가 너무 추워 함부로 나가기 무서웠다—장미 정원으로 갔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이름이 무색하게 장미는 단 한 송이도 없었다. 으스스하고 징그럽게 뼈대만 남은 검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빨간 장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조차 하기 쉽지 않았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구시가지 전경을 구경하다 내려왔다.

 아직도 12시가 안 되어  강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시내 광장은 크리스마스가 끝나서 정리 중인 점포들만 쓸쓸히 남아있었다. 황금 왕관과 셉터를 들고 있는 쿠니쿤데 황후의 동상이 있는 다리를 건널 때 작은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주위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히잡을 쓴 어떤 젊은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자신과 친구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 친구들이 아닌 JH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JH의 얼떨떨한 표정으로 허락했다. 그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모로코에서 번호를 따인 것도 그렇고 이날 JH가 받은 사진 요청도 그렇고, 한국 남자들이 이슬람권 여자들에게 꽤 먹히나 보다.

보수 공사 중이었던 밤베르크 대성당 | 고독하게 가지치기 중인 정원관리사 | 장미정원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전경

 하여간 드디어 훈연 맥주를 마시러 Schlenkerla 양조장으로 갔다. 정말 온전히 훈연 맥주를 즐기기 위해 프레첼을 먹은 이후 아무것도 입에 대질 않았다. 나는 훈연 밀맥주, JH은 훈연 라거를 주문했다. 물론 음식도 함께 주문했지만 우리의 신경은 온통 맥주에 가있었다. 맥주가 나오자 먼저 향을 맡아보았다. Meikle Toir—스코틀랜드에서 사 온 피티드 위스키로 정말 맛있게 마셨다—에서 느꼈던 구운 베이컨 향이 여기서도 났다. 맥주에서 이런 향이 나는 것이 신기했는데, 이게 왜 다른 지역에서는 시도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만큼 기분이 좋았다. 맛에서는 부드럽고 중후한 밀맥주의 특징을 잃지 않았다. 라거도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훈연 향이 밀맥주보다 약했다. 하지만 밀맥주든 라거든 스모키한 향이 우리가 주문한 찐 고기 음식과 정말 잘 어울렸다.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금세 잔을 다 비워 Doppelbock으로 한 잔 더 시켰다. 아쉽게도 훈연 향은 기대만 못했고, 끝에서는 알코올의 단 맛이 너무 튀어 그와 어울리진 못했다. 요컨대 밀맥주가 훈연 맥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냈고 그만큼 가장 맛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덩그러니 남겨진 크리스마스 피라미드 | Schlenkerla 양조장 입구 | Aecht Schlenkerla Rauchweizen

 맥주를 천천히 음미하다 나와도 아직 14시밖에 안 되었다. 날씨도 흐리고 더 가보고 싶은 곳도 없어서 바로 뮌헨으로 돌아왔다—올 때는 무료인 RE를 타고 왔다. 피곤해서 집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JH가 자기네 기숙사에서 고추바사삭을 하겠다고 해서 그를 따라갔다. 한국식 치킨이 무척 당겼던 터라 휴식을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닭에 빵가루와 직접 만든 양념을 입혀 오븐에 구웠다. 물론 굽네치킨의 것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먹을 만했다. 우리가 처했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결코 나쁘지 않았다.

 나름 기대하고 방문한 밤베르크인데 다소 실망스러웠다. 흐린 하늘과 추운 날씨 때문에 골목골목이 덜 예뻐 보여서 그런 것도 있고 장미 장원이 너무 황량했던 것도 컸다. 그래도 훈연 맥주, 이거 하나만큼은 정말 히트였다. 언제 또 이 독특한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아쉬워하면서 홀짝홀짝 마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귀국하고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즈음, JH가 데일리샷에서 이 훈연 맥주를 공동구매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500mL 한 병에 9000원이나 했지만, 당시의 좋았던 기억이 되살아나 바로 4병을 구매했다. 보통 집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 현지에서 먹었을 때의 맛이 온전히 느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 훈연 맥주는 그때의 그 향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만큼 훈연 맥주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와 JH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광 시간만큼이나 길었던 이동 시간이 용서되었을 만큼, 훈연 맥주가 전부였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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