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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딩

독일

뮌헨 북동쪽에는 S2로 1시간이면 가는 에르딩이라는 아담한 마을이 있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딱 2개 있다: Erdinger Weißbräu와 Therme Erding. 두 곳을 단 하루에 갈 수도 있지만, 굳이 하루에 욱여넣지 않고 따로 다녀오기로 했다. 난 자랑스러운 Münchener이니까.


Erdinger Weißbräu

뮌헨 주변에는 S반만을 타고도 바로 갈 수 있는 예쁜 마을들이 많이 있고, 각 마을은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프라이징은 Weihenstephan, 안덱스는 Kloster Andechs, 그리고 에르딩에는 Erdinger가 있다. 앞에 두 곳은 식사를 할 겸 가보았지만 투어까지는 하지 않았었다. 뮌헨까지 왔는데 Weißbier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Erdinger에는 양조장 투어(영어)를 신청했다. 뮌헨에서 멀지 않은 만큼 열심히 교환학생 친구들을 구슬려, 3명을 더 꼬시는 데에 성공했다.

에르딩 역에서 30여 분을 걸어 양조장에 도착했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긴 배차 간격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해서 아기자기한 마을을 구경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투어는 기념품점에서 시작되었다. 각자 사고 싶은 기념품들을 찜하던 차에—나는 밀맥주잔과 나무 코스터에 눈독 들였다—직원이 출석을 부르고 양조장으로 인도했다. Erdinger가 수출하는 각 나라의 깃발들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펍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투어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단 맛을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냅다 맥주를 한 병씩 가져다주었다. 밀맥주를 따르는 방법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해 보았다. 우선 잔을 기울여 천천히 따르고, 80% 정도를 따르면 멈춘다. 이후 효모가 잘 섞이게 병을 흔든 뒤 똑바로 세운 잔에 천천히 따르면 된다. 가이드가 따른 것처럼 적절한 두께의 거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얼추 모양은 내는 데에 성공했다. 양조장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홀짝홀짝 마셨다. 이전까지 다녔었던 증류소나 양조장 투어에서는 역사 설명 시간이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맥주를 마시면서 들으니 고리타분한 설명도 관심 갖고 듣게 되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설명에는 맥주 시장의 성장률이 있다. 맥주 시장은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는 문화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알콜 맥주이다. 짙은 파란색 라벨의 무알콜 맥주. 내가 Radler 다음으로 싫어하는 맥주 종류이다. 색깔도 튀어서 슈퍼에 갔을 때 눈에 띄면 언짢기도 하다. 하지만 요 근래에는 무알콜 맥주가 양조장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으니, 더 이상 탓할 수는 없게 되었다.

국내 인지도 치고는 상당히 이른 연도에 수출을 시작했다 | Willkommen Bier로 제공된 Erdinger Weißbier

투어는 막걸리 냄새가 은은히 나는 매쉬 툰부터 시작하여 발효실과 병입 공장, 병을 보관하는 창고까지 이어졌다. 매쉬 툰 이후로는 필스너 우르켈이랑 꽤 큰 차이가 있었다. 설탕이 알코올과 탄산으로 바뀌는 발효실은 마치 하얀 연구실 같이 생겨 아주 치밀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그래서 문에 달린 작은 창문을 통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병입 공장이었다. 이 공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Pfand 시스템부터 이해해야 한다. 독일의 대부분의 맥주 회사는 모두 똑같은 모양의 갈색 병을 사용한다. 이를 온전한 상태로 Pfand 기계에 넣으면 한 병당 0.08유로씩 돌려준다. 이렇게 들어온 병들을 각 맥주 공장들이 다시 사용한다. 우선 깨지거나 불순물이 들어간 불량품들을 거른 뒤—병 안에 병뚜껑을 넣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고 한다—기존 라벨을 벗긴다. 그다음 병 내외부를 아주 깨끗이 세척한 뒤 다시 새로운 라벨을 붙인다. 그리고 90% 완성된 맥주를 병에 담아 뚜껑으로 닫는다. 잘 만들어진 맥주 한 병이 2천 원도 안 하는 이유에는 저렴한 재료값과 주세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체계적이고 자동화된 병입 시스템도 필시 한몫할 것이다.

윗 문단에서 '90% 완성된 맥주'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에딩거는 맥주가 병입된 이후 일정한 온도가 유지된 창고에서 약 3주간 보관된다. 사실 단순한 보관이 아니라 나름의 숙성 과정이다. 병입 공장과 마찬가지로 창고도 완전히 자동화되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렇게 에딩거 맥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양조장 안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다만 캔 포장에 한해서 외부 공장에서 진행된다). 스카치위스키 못지않게 From Barley to Bottle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줄을 선 맥주병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 가운데 빨간 로봇이 맥주 박스를 실어 알맞은 위치에 둔다

다시 바에 돌아오니 험난한 과정을 거친 맥주들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각 맥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시음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냥 시음이 아니었다. 딱 어울리는 안주가 제공되는 '무제한' 시음이었다. 먼저 안주로는 굵은소금으로 간을 한 브레첼에 더불어—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음식인—바이스부어스트가 나왔다. 여기서 먹은 바이스부어스트는 내가 독일에서 먹었던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전혀 짜지 않았으며 부들부들한 속살은 입안에 살살 녹았다. 유일하기 아쉬웠던 점이라면, 인당 2개로 제한되었던 점이다.

대신 맥주는 무제한으로 제공되었다. 투어에 앞서 Original을 마셨기 때문에 일단 Kristal을 먼저 마셨다. Kristal은 Original에서 효모를 걸러 조금 더 깔끔하게 만든 밀맥주이다. 확실히 향에서부터 더 밝은 느낌이 났고 맛은 더 가볍고 청량했다. 그렇다고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일반 Weißbier는 효모 때문에 가끔은 부담스럽지만, Kristal은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Dunkel을 마셨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흑밀맥주이다. 스타우트와 다크 라거와 달리 흑맥주만의 커피 향이 강하진 않았다. 본체가 밀맥주이다 보니 Original에 흑맥주 향을 가미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Schneeweiße를 마셨다. 이는 주로 겨울에 마시는 Winterbier로 Original보다 도수가 조금 높다—그렇다고 Bockbier만큼 높진 않다. 또한 몰트의 향과 맛이 강한 반면 탄산은 더욱 적었던 것 같다. 겨울에도 어떻게든 맥주를 맛있게 마셔보겠다는 독일인들의 노력만큼은 가상하다.

석 잔이나 마시니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마침 직원들도 슬슬 정리하는 분위기라 우리도 일어났다. 뮌헨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음속으로 찜해두었던 기념품들을 사려고 했으나, 기념품점은 벌써 닫혀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에르딩역까지—활발한 이뇨작용에 의해—경보하듯 빠르게 걸어갔다. 마치 미리 짠 듯 S반을 타자마자 우리 모두 스르륵 잠에 들었다. 그만큼 각자 만족스럽게 맥주를 마셨다는 뜻이겠지. 여태 6번의 증류소 투어와 2번의 양조장 투어를 가보았었다. 사실 설명은 다 비슷비슷했다. 그래도 이곳은 설명이 자세하고 양조 과정도 특이한 편이라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투어의 꽃인 시음 자리는 보통 인당 할당량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아쉬움을 남기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무제한이었다. 배가 터질 때까지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이야 말로 옳게 된 양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이 이 모습을 보고 반성했으면 좋겠다.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는 Erdinger의 모든 맥주들 | Erdinger Schneeweiße와 브레첼


Therme Erding

일주일 뒤, 다시 한번 에르딩에 갔다. 새벽 3시까지 놀다가 친구 방에서 자고 7시에 일어나 Therme Erding으로 오픈런을 갔다. 10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벌써 사람들은 많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Early Swimmer 표를 끊은 것 같다. 정오 전에 도착한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저렴한 옵션으로, 기본 시간 2시간에 30분이 초과될 때마다 2.5유로씩 할증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각자의 표는 전자팔찌로 받고 옷을 갈아입은 뒤 사우나에 들어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들 중, 공개적으로 올리기에 적합한 것이 이 지도밖에 없었다

먼저 야외 유수풀로 갔다. 날씨는 아주 쌀쌀했지만, 물은 따뜻해서 얼굴만 물밖으로 내놓고 다녔다. 물 마사지도 받고 수영을 못하는 친구들에게 물에 뜨는 법도 알려주며 수다도 떨었다. 슬슬 지루해져 다시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 물밖으로 나오니 너무 추워 가장 가까웠던 풀인 파도풀에 들어갔다. 별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파도가 세서 놀랐다. 각자 스펀지 튜브를 하나씩만 들고 갔었지만, 파도를 몇 번 맞아보고는 얼른 한 개씩 더 챙겼다.

점심은 피자로 해결했다. 풀 사이사이에 점포들이 하나씩 있었는데, 유독 피자 냄새에 계속 유혹되었기 때문이다. 결제는 카드가 아닌 전자팔찌로 했다. 기계에 전자팔찌를 찍으면 납부해야 할 금액이 저장되고, 나올 때 그 금액을 추가로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휴대전화와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는 이 시스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그래서 사진을 거의 못 찍었다.

이후 각자 얼굴에 머드팩을 발랐다. 특정 시간에 운영되는 이벤트로, 3가지 머드팩 중 하나를 골라 얼굴에 바를 수 있었다. 나는 세정력이 강한 것을 골라 얼굴에 꼼꼼히 바른 뒤, 완전히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 씻어냈다. 그다음 드디어 워터파크 구역에 갔다. 슬라이드 10종류가 넘게 있었다. 우리는 난이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6가지 정도를 탔다. 맨몸으로 타는 깔때기에 빨려 들어가는 Space Bowl과 두 사람이 동시에 타서 누가 빨리 도착하는지 경쟁하는 Speed Racer도 탔다. 그리고 기울기가 무려 60도나 되는 Kamikaze라는 슬라이드도 탔다. 10월 말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기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 코스로는 실내 유수풀에서 피로를 풀었다. 에딩거 맥주를 한 잔 사들고 풀 안에 들어가 흘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마셨다. 물은 따뜻한데 시원한 맥주가 들어가 알딸딸해졌다. 딱 기분이 좋은 상태로 풀에서 나왔다. 아직 해가 안 져 에딩거 기념품점에 다시 가보았다. 저번에 사지 못한 밀맥주잔을 정말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문이 닫혀있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일을 조금 하는지, 원망 반 부러움 반이었다. 결국 빈손으로 뮌헨으로 돌아왔다.

거주증을 발급받고 한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로 오랜만에 근교 여행을 다녀오면서 역시 독일만큼 편한 나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도시든 작은 마을이든 독일만의 정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뮌헨에 조금 더 오래 남아있을 수 있다면, 가보지 못한 여러 마을들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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