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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May 31. 2024

헬렌켈러에게
설리반 선생님이 있었다면

우리의 은인, 마가렛 선생님

돌도 지났겠다, 한국도 다녀왔겠다, 이제 걸을 수 있는 로나! 어린이집을 다니기로 했다.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로나도 기관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시행착오 끝에 우연히 찾게 된 어린이집에 덜컥 등록을 하곤 다음날 아침부터 등원을 하기로 했다. 뒤늦게, 우연히 알게 된 곳이었지만 한국인 선생님이 두 분이나 계시다는 얘기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던 동네였지만, 어린이집에서 동족의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은 한참을 바라보던 밤하늘에서 긴 꼬리를 가진 아름다운 별똥별을 놓치지 않은 기쁨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 부족한 어미, 로나의 장애에 대한 어떤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로나가 좋아하는 간식과 여벌옷만 딸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 놓았다. 요즘의 한국 어린이집에서 하는 체계적이고 친절한 적응기간은 생각지도 못했다. 로나는 첫날부터 하루종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언어를 들으며 기관 생활을 시작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좋을지 떠오르지 않았고, '어차피 다 어린아이들이라 비슷하지 않을까, 굳이 장애를 얘기해야 할까'하는 의뭉스러운 질문들이 마음속에 맴돌기만 했다. 어쩌면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부끄럽게 남아 있었던 것이었을까. 로나를 사랑하는 서투른 마음만 가득했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진정 로나를 위하는 일인지 몰랐다.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 더디더라도 '외국 아이니까 그럴 수 있지, ' 눈이 작고 코가 납작해도 '동양 아기들은 어릴 때 그렇더라' 하며 대충 넘어가주길 바라는 부끄럽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등원 첫날을 무사히 보냈기를 바라며 로나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로나의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저 안에서 밝은 미소로 일어나 다가오는 한국인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로나의 선생님이시구나.' 한국에 계시던 엄마의 머리 스타일처럼 구르프(헤어롤)를 말아 둥글둥글 웨이브가 들어간 짧은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아 멋진 회색이 된 머리카락을 가지신 것도 엄마와 참 비슷했다. 처음 뵙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친정 엄마 생각에 눈물이 차 올랐다. '여기서 울면 오버다'를 되뇌며 애써 눈웃음을 지어 인사를 드렸다. 



"아, 로나 엄마구나. 정말 반가워요. 나는 로나반 교사, 마가렛이에요. 잠깐 얘기 나누고 갈 시간 되세요?"

연세도 딱 엄마 또래신 것 같았고, 잠시 한국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만 같은 편안함을 전해주시는 분이었다. 우리는 로나를 안고 교실을 나와 넓은 홀로 자리를 옮겼다. 선생님이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기다리셨던 눈치다. 그리고 곧, 온 마음을 다 해 나를 배려하시며 이야기를 꺼내신다.


"로나 엄마, 오늘 로나 잘 지냈어요. 음식이 낯설어서 안 먹길래 로나 엄마가 갖다 준 간식을 줬더니 잘 먹더라고요.... [중략]... 로나 엄마, 로나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죠? 나는 잘 몰랐는데, 옆반 한국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예전에 다운을 가진 아이를 케어하신 적이 있으시대요. 그래서 로나를 보시더니 그렇다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아이를 돌봐야겠다고 하셨어요.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로나만 생각하세요. 우리가 알면 로나를 더 잘 보살필 수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꼭 얘기를 해야 돼요. 미국 사람들은 특히, 청하지 않는 도움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 원장님에게도 얘기를 했어요. 원장님이 얼른 알아들으시고, 우리가 함께 로나를 잘 돌보자고, 어려움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이미 수도꼭지가 되어 두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부끄러웠던 마음도 이미 다 용서를 받은 것만 같은 그분의 따뜻함에 마음이 온기로 가득 찼다. '아, 그저 미리 설명을 하면 되는 거였구나. 있는 그대로 설명이 필요한 일이었구나.' 




그 후로 로나는 마가렛 선생님과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본인의 속도대로 성장을 했다. 우리 부부가 알기 전에 선생님은 로나가 잔디밭을 걷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으셨다. 바깥 놀이를 하는 쉬는 시간에 로나가 딱딱한 바닥에서는 곧잘 걷다가도 잔디밭에 다가서면 걸음을 멈추고 들어가기를 두려워한다고 하셨다. 딱딱해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포장된 도로와 달리 밟으면 부드럽게 살짝 내려앉는 흙바닥, 그리고 다리에 스치는 잔디풀에서 로나는 불안감을 느꼈나 보다. 마가렛 선생님은 하루에 한 걸음씩 로나가 잔디를 밟고 흙바닥도 걸을만한 곳이라는 것을 몸으로 이해하게 기다려 주셨다. 오늘은 한 걸음만, 내일은 두 걸음, 모레는 조금 더. 그러다 어느새 로나는 잔디밭에 있는 유아용 미끄럼틀에서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사랑과 정성으로 로나를 키운다 해도,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내가 로나와 24시간 함께 해줄 수 없는 것처럼. 미국에서 살았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로나가 가는 곳곳에서 만났던 고마운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분들 덕분에 외롭고 고단한 유학생 부부의 삶이 굴러갈 수 있었고, 졸업과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육아도 해낼 수 있었다. 마가렛 선생님은 늘 말씀하신다. 모든 아이는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자란다고. 로나의 발달에 가장 중요한 영유아 시기에 선생님이 함께 해주시고, 미숙한 이 엄마에게도 늘 용기를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금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계셔서 또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가까이 계신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되는 선생님과의 인연에, 이 글을 쓰는 지금 또 주책스럽게 울컥해본다. 





 


사진 출처: Pixaba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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