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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May 24. 2024

한 박자 느린 로나, 그러나

결국 해내는 아이

"까르르르, 까르르"


"로나, 시원하나? 요거 보래이. 할아버지가 또 부채질해 보께."


(한 박자 쉬고) 눈 끔~뻑, "깔깔깔, 까르르"


"헤헤헤, 로나 웃기네. 이거 봐라 Julia야, 내가 부채질을 요래 하니까, 로나가 눈을 끔~뻑하는데, 한 템포 늦다. 하하하. 지도 웃기다고 웃는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던 한국인 로나가 돌이 지나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았다. 하나밖에 없는, 예쁜 이모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난생처음 엄마랑 비행기를 탔던 여름이다. 아빠는 미국에서 학위 논문을 시작하기 전 중요한 시험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다. 돌이 지났지만 아직 걷지 못했고, 흔들흔들 조금은 불안하게 붙잡고 서기만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로나가 드디어 고국에 온다고 잔뜩 설레며 기다렸다.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늘 지켜봐 주셨지만, 직접 대면을 앞두고 가족들도 얼마나 긴장이 되었을까. 로나가 더 큰 가족의 존재를 낯설어하면 어쩌나, 로나의 장애가 생각보다 걱정스러우면 어쩌나.


처음으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고모, 삼촌, 이모. 사촌 언니, 오빠. 가족이라는 거룩한 이름은 그 안에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만리를 날아온 고국, 로나 아빠의 고향에 도착해 얼굴을 보는 순간, '그래, 우리는 가족이지' 이미 한 마음임이 전해져 왔다. 로나도 그걸 알았을까. 하나 같이 로나를 바라보며 웃어 주고, 두 팔을 벌려 반기는 가족을 보자, 어린 로나는 마치 금의환향이라도 한 국가대표처럼 우쭐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도착한 첫날부터 엉덩방아를 수 없이 찧어 가며 걸음마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옳지, 옳지" 추임새를 넣어 주시니 주저앉았다가도 얼른 또 일어난다.



내 눈에는 로나가 마치 '이래 봬도 나, 미국에서 과외받고 왔어요' 하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으면 (주마다 그 이름이 다르지만) 정해진 기관을 통해 조기중재 치료를 받는다. 물론 무료로. 부모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교육 기관으로 가지 않도록, 세 살 미만까지는 치료사들이 친히 집으로 방문한다. 로나는 대근육 발달을 위한 운동치료와, 소근육 발달을 위한 작업치료를 병행했고, 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 수업 시간을 피해 로나의 치료 시간을 잡았다. 운동치료를 해주시던 릴리 선생님의 칭찬을 들으며 열심히 과외 수업을 받았던 것이 빛을 발하듯, 마치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빙판 위의 연아 언니처럼 로나는 가족의 눈길을 놓치지 않으려 참으로 열심히, 자발적인 걸음마 맹훈련에 들어갔다.


서해안에 있는 아름다운 수목원의 숙소에서 (친) 할머니, 할아버지와 첫날 함께 1박을 하고, 다음 날 (외)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다. 로나는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보러 오자 알 수 없는 기쁨과 자신감으로 가슴이 빵빵하게 차오르는 것 같았다. 전날부터 시작한 걸음마 연습은 그칠 줄을 몰랐고, (외) 할아버지는 특유의 장난기로 로나에게 동기 부여를 했다. 어, 그러더니 이제 한 발짝씩 더 내딛고 넘어진다. 곧 흔들흔들하면서도 한 발, 두 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로나가 느린 것을 받아들이며 미국에서 우리 초짜 부부는 걸음마를 서두르지 않았다. 않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 이틀 만에 로나는 '걸음마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요'라고 인터뷰를 할 것만 같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걸음마 교육을 보며 역시 한국의 교육열에 감탄하기도 했다.  




외가에서 보낸 그 해 여름 두 달은 로나에게 여러모로 인생의 전환기가 되었다. 모유에 상당히 집착을 하고 있던 터라 모유수유를 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역시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또 한국에서 한창 유행했던 단유 마사지로 장장 16개월간 이어진 모유수유를 끊을 수 있었다. 한국의 세련된 유아동복을 입으며 미국의 촌티도 벗었다. 걷기, 다양한 음식 먹어보기, 말하기를 포함해 모든 발달이 더뎠고, 심지어 (외) 할아버지의 부채질에 끔~뻑, 까르르르 하는 반응도 느렸지만, 로나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었다. 자신만의 속도로 로나는 천천히 꼭꼭 씹으며, 하나하나 소화를 해나가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되어 줄넘기를 처음 배우던 때, 로나는 쿵. 쿵. 거리며 무겁게 뛰어 금세 지치곤 했다. 두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니 오래 뛸 수가 없었다. 로나에게 정말 어려울까, 줄넘기는 안 되는 것일까, 한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줄넘기로 뛰게 했다. 물론 용기를 북돋는 칭찬과 사랑의 언어는 필수이다. 그 이후로 내가 지속하진 못했지만, 로나는 학교 체육 시간에 계속 줄넘기를 했고, 어느 날 보니 가벼운 사슴처럼 사뿐사뿐 뛰고 있었다.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뭐 하나 제대로 봐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인데, 로나는 꾸준함이라는 강력한 특기를 타고 난 듯했다. 무려 중2가 된 지금의 로나는 어떨까? 현재 로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키가 더 크는 것이다. 6학년 때부터 시작한 매일 줄넘기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지붕이 있는 곳을 찾아 줄넘기를 꼭 하고 들어온다. 내 딸이지만 참 신기할 만큼 지속력과 실행력이 대단한 아이다. 아니, 이 엄마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참 많이 한다.




다운증후군을 지닌 아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수줍어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관심을 받으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하며 주변을 밝힌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그런 감정에 아주 섬세하게 반응을 한다. 타고나기를 밝고, 긍정적이고, 익살스럽기도 하다고 한다.


난생처음 만나는 그 큰 가족의 울타리에서 로나가 느꼈을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어리고 여러모로 미숙한 아이가 몸을 불살라 걸음마를 해냈다. 미국으로 돌아가던 날 인천 공항에서 로나를 쫓아다니느라 온 가족이 진을 뺐다. 14시간을 다시 날아 시카고 공항에 내리니 직립 보행을 하는 딸내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빠가 있었다. 두 달을 넘게 떨어져 있다 만나니 어린 로나에게 아빠는 잠시 낯선 존재가 되었다. 로나가 데면데면하게 구니 애가 타는 아빠가, "로나야, 아빠야. 아빠 해 봐, 로나야" 한다. 나는 뭘 또 그렇게 애를 태우나 하며 피식 웃었는데, 저만치 다른 한국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도 아빠가 아이를 따라다니며, "OO야, 아빠야, 아빠!" 한다. 그 댁도 아빠만 미국에 남고, 아이와 엄마가 한국에 다녀왔다 보다. 낯설다 생각했던 공항의 풍경이 참으로 정겨웠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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