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뒤로 걷기 Jan 05. 2024

버킷리스트 우선순위 정하기

우물쭈물하지 말기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시험기간 중에는 참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었다. 34년이란 오랜 직장생활, 그것도 엄격한 절제가 요구되는 공직자로서 살아온 세월 동안 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꾹꾹 참고 은퇴를 준비하며 기다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맞이한 1년의 은퇴준비기간에 그동안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았던 버킷리스트를 펼쳐보았다. 마치 남도지방 여행에서 맞이했던 수도 셀 수 없는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한정식 한상차림처럼 무엇을 먼저 선택해야 하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먼저 약 40개의 하고 싶은 일들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보니 테니스 관련, 국내·해외여행 및 귀촌 관련 등 12개 정도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시간과 자원 등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가장 먼저 많은 은퇴자들이 꿈꾸는 것처럼 귀촌이나 세컨드하우스 마련을 실행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여행, 취미생활 및 각종 배움 등을 포기해야 하거나 먼 후일로 미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귀촌을 위한 배움이나 탐색 등으로 만족하고 다른 것들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첫 번째가 해외여행이었다. 해외여행은 나와 와이프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그간 함께 고생한 집사람에게도 보상을 해 줄 수 있어 일석이조로 가장 우선순위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15개월 동안 집사람과 4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도 나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해외여행 하나만 보더라도 시간과 돈만 있다고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건강상태, 가족들의 상황, 더 나아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등 많은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내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실제로 실행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지난 3월 중순에 다녀온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은 4월 초 집사람의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었고 지난 12월 캄보디아 여행도 이번 1월 초 또 다른 수술을 앞두고 다녀왔다.     


그리고 그전에 다녀온 터키여행, 필리핀 가족여행 등도 병환 중이셨던 장모님을 케어해 드리는 문제, 그리고 함께 사는 반려견을 누군가에게 여행기간 동안 맡겨야 되는 문제 등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조건을 갖추어질 때 무언가를 하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혹 상황이 안 좋아질 때의 세컨드 플랜을 염두에 두고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행복한 여행을 다녀왔고 덕분에 집사람의 힘든 항암치료 기간 동안 여행의 즐겁고 소중한 추억들이 작은 힘이 돼 주었고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의 여행도 계획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을 비롯해 우선순위를 정해서 1년 6개월 동안 실행에 옮긴 버킷리스트는 9개 정도이다. 그리고 산티아고순례길 완주처럼 미룬 것도, 테니스 전국대회 우승에서 20번 출전같이 변경한 것도, 또 집수리 봉사처럼 새로 생긴 것들도 있다.     


오랫동안 은퇴를 준비해 왔지만 60세가 넘은 나이에 아직 설레는 마음으로 무언가 하고 싶은 열정이 있고 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체력 등을 가지고 있다는 건 큰 행운이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주변을 돌아보면 은퇴 후 여건이 좀 좋지 않아도 그에 맞춰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행복한 하루들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력 등을 갖추고도 마땅한 취미 등이 없어 무료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음에도 게으름이 만들어낸 각종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건강상태 등이 안 좋아져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골든타임은 60~70세이다. 물론 건강관리를 잘한다면 그 이상도 될 수도 있다. 이 시기가 지나면 할 수 있는 것의 범위와 만족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거나 실행하지 않는 다면 젊은 시절처럼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가능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은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체계적으로 준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은퇴 후 머뭇거리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모든 걸 다 갖추었다고 누구나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조금 덜 갖추었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벌겠다는 욕심, 손주 봐주기, 형식적인 모임 등 장애물이 나타난다 해도 이를 넘어서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만이 인생의 황금기를 즐길 수 있다.     


버킷리스트는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다. 하지 않아도 되고 여건에 맞춰 변경과 연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시도하지 않으면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라고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24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이 글을 쓰는 연초부터  집사람의 예정된 수술로 비록  병원에 머물고 있지만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봄에 가기로 한 동유럽여행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이전 01화 퇴직과 재취업 시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