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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보다 먼저 무너진 마음

by 루비하루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세상을 멈춰 세웠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며 집에 머물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코로나19 최전선에 있었다.

5개월 동안 하루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주말도, 연휴도 없었다.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혀 숨죽일 때,

나는 구급차 안에서 환자를 이송하고 있었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났다.

차는 크게 휘청였고, 나는 벽에 부딪혔다.

그런데도 사무실로 복귀했다.

코로나 대응팀 야간근무 명단, 맨 위에 내 이름이 있었다.

‘지금 빠지면, 동료들이 더 힘들어질 거야.’

그 말을 꾹 삼키고,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또 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2020년 5월.

몸이 이상했다.

한쪽 다리가 자꾸 휘청이고, 잠도 잘 수 없었다.

귀 안에서는 ‘삐—’하는 이명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MRI 결과, 뇌종양.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피로나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망가질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나조차도 몰랐다.’


의사는 말했다.

“지금 당장은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자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감마나이프를 지금 해야합니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말했다.

“일단은 경과를 관찰하죠.”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나였다.

머릿속은 매일 지끈거렸고, 귀는 먹먹했다.

계단을 오르다 벽에 기대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결국 나는 휴직을 결심했다.

몸이 먼저 멈췄지만, 사실은 마음이 더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MRI를 찍던 날,

기계 소리 속에서 나는 혼자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몸은 버티지 못하고, 마음은 더 먼저 흔들리고 있었다.

잠들어도 깊이 잠들 수 없었고, 깨어나도 하루가 두려웠다.

회복보다 절실했던 건 ‘살아낼 힘’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멈춰 선 동안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집값은 오르고, 시간은 흘렀다.

아픈 몸을 눕히고도 세상이 나를 완전히 버린 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조용히 위로받았다.

‘그래도 내가 한 선택은 틀리지 않았구나.’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했던 모든 결정을 누군가가 조용히 안아준 것 같았다.

고통은 줄지 않았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사람은 아파도,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견딜 수 있다는 걸.


단상 : 돌아서 온 길


나는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크게 성공하지도,

깊이 절망하지도 않은 채

그냥 그렇게,

남들처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가끔 웃고,

더 자주 참으면서.


그런데 삶이 한순간 멈춰 섰다.

몸이 망가졌고,

세상은 등을 돌렸고,

나는 바닥을 알게 되었다.


그 길은 무너짐 같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돌아서 제자리를 찾는 길이었다.


혹시 이 고통이

인생에 한 번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면

나는 다행히,

감당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겪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나는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완전히 나은 건 아니다.

몸은 여전히 약하고,

사는 일은 버겁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예전보다 훨씬 더 깊게 생각하고,

더 천천히 바라보고,

무언가를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돌아서 온 길이었지만,

그 끝에서 나는 처음의 나를 다시 만났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길을

조금 늦게, 조금 힘들게 찾은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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