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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서를 쓰지 않았다

by 루비하루

죽고 싶었던 날.

나는 죽는 대신 글을 택했다.

말없이 사라지지 않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흩어지듯 없어지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인권위에는 직장 안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 보냈다.

책상 앞에 앉아 그날들을 다시 떠올리는 건,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손끝이 떨렸다.

때로는 화면이 뿌옇게 번져, 글자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인사혁신처에는 공상자 제도를 바꿔 달라 건의했다.

아픈 몸으로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누군가는 제도 안에서 말해줘야 했다.


대통령실에는 전했다. 공무상 재해자가 어떤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지

그 냉정한 현실을.

내가 쓴 문장들이 누군가의 눈에 닿기를,

단 한 사람이라도 읽고 멈춰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시,

공무상 재해 신청서를 썼다.

그 신청서의 마지막 줄을 꾹 눌러 적을 때,

나는 내 이름보다 먼저 숨을 내쉬었다.


아마 유서를 쓰지 못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썼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 글들이 조용히 내 삶을 붙잡고 있다는 걸.


이건 한 개인의 불운으로 끝낼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에만 기대면 하소연이 된다.

하지만 법의 언어로 옮기면, 그건 권리가 된다.


그래서 나는 글로 나를 지켜냈다.

그리고 오늘도.

아주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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