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이면 내려놓을 때가 아닐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삶은 말보다 더 명확한 방식으로 나에게 ‘멈추라’고 속삭였다.
병이 남긴 흔적, 거듭된 좌절, 차갑게 멀어진 관계,
예고 없이 들이닥친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려는 듯했다.
오랜 투병 끝에 어렵게 돌아온 나를,
현실은 다시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일터에서는 내 자리가 한 칸 뒤로 밀렸고,
회의에서도 내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서 점점 나는 이름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집에는 쌓인 서류와 송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여전히 회복 중이었고,
마음은 매일 조금씩 부서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걸음만이라도 내디뎠다.
병상에서는 부동산 계약서를 들여다보았고,
법정에서는 스스로를 변호했다.
하루를 버티는 일이 곧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모은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상실은 배움이 되었고,
패배는 방법이 되었으며,
그 모든 순간이 글이 되었다.
나는 글을 썼다.
병과 싸운 날들,
스스로를 지켜낸 순간들,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온 과정을 천천히 기록했다.
그 기록은 단순한 고통의 나열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명이었고,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이 길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쓸 수 있고,
느리지만 아직 걸을 수 있고,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는다.
묵묵히.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건강도, 삶의 터전도, ‘나’라는 사람도 여전히 만들어지는 중이기에.
나는 지금도,
다시 걸어가는 중이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매일 조금씩 배우면서.
40여 일 만에 다시 재발령이 났고, 나는 예전의 근무지로 돌아왔다.
환영은 없었고, 자리는 더 밀렸고, 일은 더 얹어졌다.
6개월의 휴직을 40일로 갈음한 듯한 기분.
통과의례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러나 이번의 나는 달랐다. 병가 직전,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고 매일 아침 글을 썼다.
웹소설을 연재했고, 공제회 공모전에 응모했다.
몸은 또 다른 통증을 얻었지만, 정신만은 놓지 않았다.
내 인생에 드라마처럼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하루하루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