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맞을까? 작은 우산으로 막을 수 있는 비가 아니다. 비를 피해 들어간 안내소에서 알려준 방향에는 기와로 만들어진 큼지막한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푸르름 속 연갈색이 살짝 숨어든 초가을 담쟁이넝쿨은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했는지 높다란 담벼락 끝까지 올라서 있다. 저 높은 담 너머에 있는 걸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이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꽤 사는 집처럼 보이는 대문이 나온다. 검은 철문을 금박 문양으로 장식한 대문, 그 오른편에 세로 방향으로 써 내려간 팻말이 있다. 인천시민愛집. 찾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산 중턱 그늘진 곳에서 지나가는 이에 쉴 자리 하나 내주었을 법한, 바위와 조각들이 옹벽과 돌계단으로 쓰임새가 바뀌어 이곳에 눌러앉아 있다. 돌계단 위는 푸른 잎이 떨어져 나간 한겨울에도 햇볕을 가릴듯한 빽빽한 잔가지가 아치형 터널을 만든다. 가지 끝에 달린 진녹색 잎새가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물방울을 툭툭 떨어낸다. 우산 위로 느껴지는 무게가 묵직하다. 이런 무게감은 옹벽 한편이 아름드리나무뿌리에 밀려 기울어져 있는 것에서도 풍긴다. 세월의 무게, 인고의 무게다.
이 터의 변화는 우리네 근대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개항 이후 각국 조계지 지역으로 독일과 일본인 소유 주택이었고 해방 후 인천 예술인들의 모임터를 거처, 60년대 중반에 인천시장 관사로 사용하기 위해 지금 형태로 지어졌다. 이 공간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내준 지 사 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돌계단 위 한옥 건물은 내부가 훤히 보인다. 외부와 소통하고픈 의지를 보여 주는 걸까? 사각 패턴 나무 창살에 한지 대신 유리를 덧댔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자, 왼편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사랑채쉼터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인천 역사와 관련된 강의가 진행 중이다. 그냥 쉬고 싶다. 빗방울이 만드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반대편으로 방향을 돌린다. 벽면에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홍보 자료가 붙어 있다. 방문객을 오랫동안 붙잡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강의 소리가 벽면에 막혀 들릴 듯 말 듯 한 공간을 찾았다. 시장 관사로 사용될 때 안채였던 랜디스다원이다. 유리 창가에 방석을 깔고 앉는다.
건너편 처마 밑으로 보이는 대청마루쉼터에 한 여성이 앉아있다. 책이 어울리는 공간에서 휴대전화를 끊임없이 누른다. 누군가에게 지금 감성을 전하고 싶은가 보다. 같이 오지. 창밖을 바라보며 가지고 온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낸다.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한 무리 사람들이 창밖 한쪽을 지나간다. 강의가 끝났나 보다. 그녀도 무리에 섞여 있다. 이제 이 넓은 공간의 주인은 빗소리와 나뿐이다.
대청마루쉼터는 ㄷ자로 튀어나온 삼면이 한옥 창호 문양으로 된 통유리로 되어있다. 비 오는 날에도 채광이 좋다. 소파 밑에 놓여있는 인천역사 관련된 책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이란 책 때문이다. 이곳과 어울리는 제목이다. 한두 페이지 넘기는데 저자는 내가 꽂힌 모던걸, 모던보이보다는 근대에 꽂혀 있는 듯하다. 근대공원과 관련된 흥미로운 책이지만 지금 읽고 싶지는 않다.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는다.
빗소리와 나만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정중앙에 앉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정원과 멀리 보이는 바다를 투명한 세로줄로 나누는 빗방울 궤적에 집중한다. 물기 머금은 기와지붕과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집중한다. 어느 순간 사소한 걱정들이 유리 창밖 너머에 서 있다. 이내 그것들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하나둘 뛰어들어 녹아난다. 무거워진 빗방울은 바닥을 내려치며 녹아든 걱정과 함께 땅속으로 사라진다.
저벅저벅 발소리 주인에게 공간을 양보하고, 걱정이 녹아든 땅 위에 우산을 들고 서 있다. 눈에 보이는 빗줄기는 전과 같았지만, 우산 위에 툭툭 떨어지는 비의 무게는 한결 가볍다. 걱정 녹은 빗물은 이제 다 땅속으로 스며들었나 보다. 다시 무거운 비가 내리는 날, 작은 우산을 들고 뚜벅뚜벅 이곳으로 걸어와 유리창에 비친 나를 만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