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내가 사는 곳에 편의점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다.
비록 편의점과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곳을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편의점 하나로 우리 지역의 수준이 격상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은 편의점을 골목마다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여전히 나는 그곳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나와는 달리 편의점을 참새 방앗간 들리듯 가고 그곳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음료수를 사 먹기도 하고 간단히 요기를 때우기도 한다.
편의점 음식에 관한 추억은 나에게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직장을 이직하고 한 달간 경기도에 있는 본사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남직원에 비해 여직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회사이다 보니 여직원을 위한 기숙사가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본사 근처에서 혼자 사는 H라는 여직원의 자취방에서 같이 지내는 것이 어떤지 물었고 나는 H의 배려로 한 달간 그녀와 동거동락했다.
지금 같은 세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회사에선 그런 일들이 관행처럼 이루어졌었고 대전으로 교육받으러 오는 여직원이 있으면 그녀들도 우리 집에서 잠시 머물다가곤 했다.
나와 H는 점심과 저녁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을 하고 아침은 출근 전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이나 우유로 때우곤 했다.
그전까지 삼각김밥을 먹어본 적이 없던 나는 이게 무슨 식사가 되겠나 싶은 마음과 맛은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삼각김밥의 포장지를 완벽하게 뜯어내는 H와 달리 나는 김과 밥이 분리된 채 포장지가 벗겨졌고 삼각김밥을 먹을 때마다 매번 좌절 아닌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삼각김밥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우려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맛이 있었고 든든한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 삼각김밥을 먹을 때가 있지만 포장지를 뜯어내는 건 여전히 서툴다.
몇 년 전 모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삼각김밥을 잔뜩 사서 포장지를 벗겨내는 연습을 얼마나 진지하게 하던지 그 장면에서 나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
내가 처음 삼각김밥에게 가졌던 선입견처럼 그럴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일상에서 다양한 경험이나 기회를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나는 삼각김밥의 포장지를 뜯어내는 것에 미숙하지만 삶은 그런 서툴고 어설픈 순간들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짐을 이제는 안다.